집과 집을 잇는 교회 이야기
[419호 특집]
집과 집을 잇는 교회 이야기
9월호에 이어 10월호까지, ‘집’을 주제로 연속 기획물을 준비했습니 다. 희년함께 활동가들과 〈복음과상황〉 기자들은 지난여름 두 달 동안 여러 차례 만나 기획 회의를 하고, 인터뷰와 좌담을 진행하며, 원고가 다 모이면 함께 검토도 했습니다. 호흡이 잘 맞았고, 어느새 정도 들었 습니다. 앞으로 또 협업 기회를 만들기로 약속했습니다.
지난 9월호 특집 주제는 ‘홈’이었습니다. 집을 둘러싼 우리들의 현 실 이야기를 폭넓게 다뤘습니다. ‘집이란 무엇인가’ 만화, 전세사기 피해자의 증언,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활동가 이야기, 집값에 포획된 사회 현실을 진단한 전문가 칼럼, 2030 청년 그룹 인터뷰까지. 집에 얽힌 희로애락과 각자의 경험담이 솔직하게 담겼습니다.
10월호를 준비하면서는 현실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기획 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집’이라는 단어 앞에 ‘우리’를 한번 붙여 보 았습니다. ‘우리집’. 혼자 살아도 자연스레 “우리집”이라 말하는 것처 럼, ‘우리’와 ‘집’은 어쩐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 같습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우리집〉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마침 그 영화 포스터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함께여서 매일이 기적인 거야”. ‘집’에 ‘우리’가 붙으면 어떻게 기적이 만들어지는 걸까요?
이번 호에서는 집과 집 사이, 경계와 울타리에서 새로운 관계 맺음을 시도하는 교회들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공동체와 집을 연결하려는 여러 몸짓, 서로의 주거와 일상, 형편을 살피고 챙기려는 노력이 모여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곳곳에서 소식을 모아 담았습니다.
희년함께는 오랫동안 땅과 집으로부터 소외된 이웃이 없는 세상을 꿈꾸어 왔습니다. 이번 기획을 준비하며 복음서의 오병이어 기적을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았을 때, 어디에서 어떻게 모였는지 모를 음식들이 하나둘 나누어져서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이야기.
땅과 집도 그렇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차고 넘치도록 주신 은총의 선물.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도 내어 쫓기지 않는 집. 그것이 우리가 함께 꿈꾸는 ‘우리집’의 비전일 것입니다.
김재광 희년함께 대표
하나님의 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기다립니다
지난 3년간 수많은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 불안 당사자를 만났습니다. 왜 위험한 주택을 계약하게 됐는지 이야기하면 입을 모아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가격대가 싼 곳을 찾으면 시설 상태가 불량하거나, 입지가 안 좋습니다. 건물 상태가 좋거나 입지가 괜찮은 곳을 찾으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권리관계가 위험하기 일쑤입니다. 이 상황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왜 좀 더 꼼꼼히 알아보지 않았느냐고 책임을 돌리는 말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대신, 질문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세입자에게 왜 안전하고, 좋은 집을 주는 데 실패했는가?’
심지어 최근에는 서울시 이름을 내건 청년안심주택에서도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3년간 지속된 전세사기 대란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로 번져,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까지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주거 불안이 보편적 정서가 되고, 집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내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주거 안정 욕구가 사회적으로 비극을 낳기도 합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집을 소유하기 위해 과도한 대출을 받아서 삶을 저당 잡힌 채 살게 되거나, 집값에 혈안이 되어 임대주택이나 돌봄 공간 등 사회에 필요한 장소를 혐오 시설로 낙인찍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주거 안정을 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모델이 아닐까요?
이 지점에서 주거 문제는 그저 사적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나아가 개인과 사회의 평안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영적 문제로 발전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공동체는 주거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일지 고민해보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거할 하나님의 집에 대한 많은 질문과 아이디어를 기다립니다.
이철빈 희년함께 청년활동가
‘함께’의 비전
옛날이야기 중에 이런 교훈담이 있습니다.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를 뭉치면 쉽게 꺾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이가 좋지 않던 형제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혜를 깨달았다고 하지요.
오늘 우리 사회에는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 집 문제입니다.
집은 생존과 삶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집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치솟는 집값은 단순한 근면이나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이고, 불안정한 임대 구조는 청년과 서민의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과도한 대출 의존과 부채가 가정을 옥죄는 상황이 지속됩니다. 주거 문제는 개인의 능력 차원을 넘어선 사회구조와 관련이 깊기에,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교회의 사명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묘사된 초대교회 공동체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누구도 부족함이 없게 했습니다. 교회의 본래 정체성은 나눔과 연대, 곧 ‘함께’에 있습니다. ‘함께’란 단순히 자리를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고, 연약한 이들의 필요를 채우며, 공동의 삶을 지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묻습니다. 과연 오늘날 교회는 이 ‘함께’의 정체성을 충분히 살아내고 있는가? 때로 교회는 주거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아픔을 개인의 것으로만 치부하거나, 세상 영역이라 여기며 거리를 두어왔습니다. 그 결과,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조차 이웃이 고통 속에 방치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교회가 가진 공간을 열어 이웃과 나누고, 청년과 취약한 가정을 위한 주거 대안을 함께 모색하며,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붙들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다시 서야 합니다. 나뭇가지들이 뭉쳐 꺾이지 않듯, 교회가 연대할 때 길이 열릴 것입니다.
혼자서는 버거운 주거 문제도, 교회가 ‘함께’ 힘을 모을 때 새로운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더 많은 이들이 평화로운 집과 안전한 거처를 누리도록 하는 일, 그것이 바로 교회가 회복해야 할 사명이 아닐까요?
김지만 희년함께 사역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