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꽃이야 ― 이주배경아동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향해
[420호 법의 길, 신앙의 길]
“너는 꽃이야, 햇살이야. 그저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야.”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아기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와 생애 첫 예배를 드릴 때, 다 함께 이 노래를 불러줍니다. 가만히 따라 부르면 아이의 웃음이 떠오르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노래입니다. 목사님 품에 안겨 멀뚱멀뚱하는 아기에게 교우들은 노래와 미소로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건넵니다.
“너는 자유해, 널 기대해.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사랑해.”
이 세상 모든 아이 한 명, 한 명이 자유롭고 귀하며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임은 당연합니다. 굳이 유엔 아동권리협약이나 법조문을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이 마땅한 진리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대가 모든 아동에게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일부 아동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이주배경아동도 있습니다.
혼인신고와 출생등록의 어려움
작년 말, 제가 조력하던 난민 가정의 첫째 딸 그린에게서 조심스러운 연락이 왔습니다. 그린은 12살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후 한 번도 출국하지 않고 자라, 이제는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린은 사귀던 한국인 남자친구의 아이가 생겼다고,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과 출산을 준비했지만, 혼인신고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혼인신고를 하려고 보니 본국의 혼인 요건을 구비하였음을 증명해야 했는데, 관련 서류를 준비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현행 대법원 ‘신분관계를 형성하는 국제신분행위를 함에 있어 신분행위의 성립요건구비여부의 증명절차’에 관한 사무 처리 지침인 가족관계등록예규(제590호)에 따르면, 한국인과 외국인이 혼인을 신고하려면 외국인은 본국 관공서나 재외공관이 발급한 ‘혼인요건구비증명서(미혼증명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린의 본국 대사관은 해당 증명서를 발급하지 않았고, 본국 관공서를 직접 방문해야만 발급할 수 있었습니다. 난민신청자인 그린은 본국에 갈 수 없고, 대리 발급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가족관계등록예규에서 예정한 대로 ‘증명서를 첨부할 수 없는 사정과 혼인요건을 충족한다는 내용’을 작성해 공증받은 뒤, 이를 첨부하여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구청은 난민인정자가 아닌 난민신청자는 위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혼인신고를 불수리 처리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은 증명서를 첨부할 수 없는 사정이 인정되지만, 난민신청자의 경우에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법원에 불복신청을 제기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그린이 △국제사법상 본국법의 혼인요건을 충족하고 있는 점, △12세에 떠나온 본국에는 주민등록조차 하지 않아 사실상 미혼 상태임이 인정된다는 점, △가족관계등록예규 역시 특정 서류를 제출할 수 없는 경우 대체 절차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난민신청자 역시 난민인정자와 마찬가지로 강제송환금지 원칙이 적용되어 본국에 갈 수 없다는 점, △혼인신고 불가로 인해 출산 예정 자녀가 혼인 외 출생으로 국적 취득이 지연될 경우 아동의 복리에 중대한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피신청인의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을 취소하고 신청인의 혼인신고를 수리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그린은 8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어렵게 혼인신고를 한 후에도 아이의 출생등록까지는 또 다른 장벽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 민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고(제844조 제1항), 혼인이 성립한 날부터 200일 후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합니다(제2항). 그린은 아이를 자신과 남편의 아이로 출생신고하려 했으나 혼인이 성립한 날부터 200일 후에 출생한 자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습니다. 관할 시청은 혼인신고 일자가 출생 시점에서 불과 한 달 전이라 한국인 아버지의 자녀로 추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국적법에 따르면 출생 당시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는 부모가 법률혼 관계여서 친생추정이 미칠 때에 국한됩니다. 한국인 부의 친생추정을 받지 않는 외국인 모의 자녀는 부가 인지하기 전까지는 한국 국적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한국은 외국인 아동에 대한 출생등록제도가 없으므로 한국에 출생등록을 할 수 없고, 어머니의 본국에 출생신고를 한 후 부의 인지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까지 적어도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린의 아이는 출생 후 바로 퇴원하지 못하고 신생아중환자실에 한동안 있어야 했는데, 출생신고가 되지 못하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가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시청을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처음 혼인신고를 했던 시기는 출생 200일 전이므로 혼인신고 불수리를 취소한 법원의 결정에 따라 해당 시점에 혼인신고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친생추정이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에 제출한 서류 및 결정문을 제출하며 설득한 끝에 다행히 아이의 출생신고를 받아줬고, 한국인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건강보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위 사례는 제가 이주민과 난민 분야의 일을 하면서 접하는 다양한 사례 중 비교적 순조롭게 풀린 경우입니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해결이 어려운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부모가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이 출생 직후 출생등록부터, 보육·체류·건강·사회보장 전반에 걸쳐 제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아동만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위 사례처럼 모는 외국인이고 부는 한국 사람인 경우에도, 부모가 혼인한 관계가 아니었을 때 태어난 아동들이라면 동일하게 겪는 문제입니다.
만약 위 사례에서 끝내 그린이 혼인신고를 못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변호사의 조력을 적절한 시기에 받지 못하였다면, 혹은 법원에서도 난민신청자는 난민인정자와 달리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아니면 애초에 그린이 혼인신고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출생등록제도·사회보장제도 적용 대상 확대해야
한국인 남성과의 관계에서 혼인 외 자녀를 출산한 많은 이주여성이 있습니다. 한국인 부가 혼인신고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기 위한 서류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높은 비용 때문에 포기한 경우도 많습니다. 더러는 부 또는 모에게 다른 법률혼이 있거나 사실상 이혼하였으나 본국의 법체계로 인해 과거의 법률혼을 해소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제도가 법률혼을 중심으로 한 ‘정상가족’ 모델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국민국가 중심의 제도 아래 대부분의 권리는 ‘국민’에게만 보장됩니다. 이로 인해 한국 남성과 결혼하지 않은 관계에서 자녀를 출산한 이주여성과 그 자녀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이러한 실태는 통계에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이들을 위한 정책 마련 역시 미비한 실정입니다.
저는 얼마 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활동가들과 전국의 폭력 피해 이주여성 쉼터, 이주여성 상담소, 이주여성 지원 기관의 협조를 받아 사례 조사와 당사자 및 활동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아래는 실태 조사 사례 중 하나입니다.1)
O는 고용허가제를 통한 이주노동자(E-9)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 남성(이하 ‘P’)을 만나 교제하다 동거하게 되었다. 혼인신고를 하려 했으나 O의 본국법상 본국에 먼저 혼인신고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임신한 상태에 코로나19까지 겹쳐서 하지 못하였다. 첫째 자녀가 태어나자 P는 사랑이법2)으로 생모가 도망갔다고 하고 O의 인적 사항을 숨긴 채 출생신고를 하였다. 둘째 자녀도 가지게 되었으나 O의 미등록 체류가 발각될 것이 두려워, 병원이 아닌 집에서 P와 둘이서 출산하였고 출생신고는 하지 못하였다. P는 혼인신고와 출생신고 모두 나중에 돈을 벌면 해주겠다며 미뤄왔다. P는 첫째 자녀와 2인 가구로 기초생활수급을 비롯하여 주민센터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담당 공무원들이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O는 둘째 자녀를 데리고 옥상 등으로 자신과 아이의 존재를 숨겨야 했다. P의 가정 폭력 및 아동 학대로 O는 자녀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쉼터 입소하게 되었다. 쉼터의 도움을 받아 첫째 자녀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 둘째 자녀에 대해서는 인지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O는 임신으로 퇴사하면서 미등록 체류를 하게 되었는데, 자녀 양육을 근거로 방문동거(F-1) 체류 자격을 받을 수는 있으나 범칙금 1,500만 원을 납부해야 했다. 출입국관청에서 일부 감액해주기는 하였으나, P로부터 양육비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결국 쉼터에서 모금을 통해 납부해줬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모든 문제의 시작은 출생등록입니다. 오랜 시간 문제를 제기해왔고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왔지만, 한국은 여전히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을 위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최근 출생통보제가 시행되어 누락될 수 있는 아동의 출생을 어느 정도 방지했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이주배경아동에 대해서는 출생등록제도가 구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재 국회에 4건의 외국인아동 출생등록법안과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혼인 여부나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에게 출생등록을 부여하는 법안입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법안 마련을 권고해왔고, 2025년 5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한국이 여전히 모든 아동을 위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갖추지 못한 점에 우려를 표했습니다.3)
입법이 지연되자 먼저 나선 지방자치단체도 있습니다. 시흥시는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시흥시 거주 아동들을 적극 발굴해 이들의 존재를 공적으로 확인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연계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회에서도 최근 ‘경기도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법도 조속히 통과되길 기대합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 역시 개편이 필요합니다. 비국적자라는 이유로 개별적 정체성과 그에 따른 필요에도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보육료 지원 등은 보편적 아동의 권리로 접근해야 하나, 아동이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는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 국민인 자녀를 양육하는 결혼 이주민은 대상에 포함되나, 법률혼이 없는 이주여성과 외국 국적인 아동은 배제됩니다. 전반적인 사회보장제도가 국내 장기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확대될 필요가 있으나, 적어도 모든 아동과 혼인 관계와 무관하게 국민인 아동을 양육하는 외국인 부모로 이뤄진 가구를 포섭할 수 있도록 조속히 개정되어야 합니다. 보육이나 기초생활보장 관련 제도는 양육과 경제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한부모에게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더욱 시급한 개선이 촉구됩니다. 기본적으로 혼인 여부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모든 아동이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누구도 잃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Leave no one behind.”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이 말은 교육철학에서 주로 인용되지만, 요한복음 6:39과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우리 사회가 태어난 모든 아동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축복하길 희망합니다. 부모의 혼인 여부나 국적,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 대한 비차별 원칙이 구현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마련되길 바라며, 저 역시 하나님께서 제게 이끌어주신 사람 한 명이라도 소중하게 대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따금 주변에서 “왜 이주민 관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짧게나마 유학생으로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으나, 타국에서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아가는 이주민이 겪는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던 중 저의 삶에 아이들이 생기면서 이주아동을 향한 시선이 한층 더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그저 인권이라는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만 있었다면, 이제는 이주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들의 삶의 맥락과 현재의 얽힌 관계에 대해, 그리고 혼돈 속에서도 자신의 삶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이주아동을 모습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처음 낳고 누워만 있는 아이를 마주하자, 세상 사람들이 다 신비롭게 보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때는 다 이렇게 누워서 철저하게 아무것도 못 하는 시기를 겪었다고?’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단순하고 거룩한 진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경험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라는 존재가 되고 나서야 옆에서 같이 있어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봅니다. 저는 사실 헌신적인 사랑으로 살뜰히 돌봐주는 엄마는 되지 못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로 마음이 분주할 때가 많습니다. 함께 놀자는 요구를 귀찮아하기도 하고 어서 잠들기만을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잠시 맡겨주신 이 귀여운 존재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는 기꺼이 몸과 마음을 내어주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주민과 난민들이 부족한 저에게 도움을 청할 때, 손 내밀고 옆에 서서 함께 걷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모든 아이가 “너는 꽃이야”라는 축복 속에 태어나고, 그 이름이 세상에 당당히 기록되며, 누구도 잃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 권영실 외, 〈보이지 않는 가족, 인정받지 못한 권리: 이주여성과 혼인 외 출생 한국 국적 자녀의 삶을 위한 정책 제안〉(2025)
2) 2015년 11월 시행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으로, 미혼부가 직접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다. 모의 인적 사항 없이 출생신고를 할 방법이 없어 자녀의 출생등록 권리 침해 상태가 유지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3) 위원회는 종전 권고(제27-28항)를 상기하면서, 법률상 국가 출생등록 시스템에 등록을 할 수 없고 부모가 다양한 이유로 출신국 대사관에 자녀의 출생등록을 못 하기 때문에 외국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동이 체계적으로 등록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위원회는 보편적 출생등록을 도입하려는 당사국 의지를 환영하나,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음에도 보편적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이 아직 채택되지 않은 점을 우려한다(CERD/C/KOR/CO/20-22, 39항).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소속 공익전담변호사. 이주민과 난민 분야를 주로 담당한다. 두 어린아이의 엄마로, 일과 육아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종종 “둘 다 벗어날 날만을 꿈꾸고 있다”고 동료들에게는 볼멘소리를 하곤 하지만, 실은 일과 양육 모두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계속 잘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