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는 어린이라는 세계

[420호 내가 매월 기쁘게]

2025-10-29     배한나

“엄마, 왜 예수님은 옷이 없대?”

한때 청어람 메일링에도 썼고, 지인들에게 나불나불 말하고 다녀서 민망한 감이 있지만, 우리고 또 우려도 웃음을 짓게 되는 질문을 소개합니다. 엄마를 따라 예배에 참석했던 어린이는 갸우뚱하며 엄마에게 저렇게 물었답니다. 아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던 찰나, 교회 안을 가득히 메운 찬양의 후렴은 이랬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옷이 없어서!’

우리 예수님께 어떤 속사정이 있었길래 옷이 없었을까요!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는 어른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가끔 이 찬양을 접할 때면, 어린이의 복잡했을 심경이 상상되어 광대가 올라갑니다.

 

교회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나이가 한 자릿수였고, 엄마께서 몸살감기로 꼼짝없이 누웠던 어느 날이었어요. 엄마가 가까이 오라 손짓하더니 기도를 부탁하지 뭐예요. ‘예수님이 어린이의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라는 엄마식 믿음을 말하면서 말이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안수기도를 해주시는 아빠를 떠올리며, 일단 엄마 이마에 손을 올렸어요. 그리고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고, 아픈 주님의 요정이 얼른 낫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같이 “아멘”을 한 엄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어요.

“왜 엄마가 ‘요정’이야?”

“엄마가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요정을 불쌍히 여기시고’라고 하잖아!”

사실 의심스럽긴 했습니다. 교회에서 듣기로 ‘천사’나 ‘사탄’은 있었거든요? 그저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선녀처럼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님의 요정’이 아니고, 주님의 ‘여종’이라고 한 거야. ‘종’.”

이럴 수가. 당시에 알던 ‘종’이라곤 텔레비전 마당놀이에서 보았던 마당쇠 정도여서 충격이 컸어요. 나중에 교회학교에서 마리아의 고백을 듣고서야 그 말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성서공회는 ‘여종’ ‘남종’ 말고 다 ‘종’으로 바꿔주시면 어떠실지.)

 

일상에서 만나는 말도 알쏭달쏭한 어린이에게 종교의 언어, 교회의 말은 얼마나 수수께끼 같을까요. 꼭 어려운 말은 아니어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교복을 입을 즈음 알게 된 사실도 있네요. 여러분은 ‘베드로’와 ‘피터’가 같은 이름이라는 걸 언제 아셨나요?

제목에서 크게 공감한 나머지 이삭 토스트에서 웃지를 못했습니다. ‘베’가 같은 ‘배’씨 성이 아니라는 건 일찍이 알았는데요. ‘피터 래빗’의 ‘피터’와 ‘베드로’가 같았다니. 천사장 ‘마이클’ 씨는 왠지 영어만 쓸 것 같지 않나요…. 뭐 요즘 어린이들은 일찍 영어를 접하니 빨리 알 수 있으려나요.

(이건 대한성서공회 말고 교회학교에서 살짝 귀띔해주면 어떨까…. 괜한 생각을 해봅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신앙하는 어린이를 너무나 납작하게 그린 건 아닌가 조심스러워지네요. 어린이를 앞세워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했던 예수, 어린이를 영접하는 일이 바로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했던 예수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특히 ‘나를 믿는 어린이’라는 식의 조건이 없어서 더 좋았어요. 적어도 산타 할아버지의 조건부식 선물 공약보다 훨씬 크고 너른, ‘이것이 바로 세계 4대 성인다운 말’이었으니까요.

한편 육아의 희로애락으로 쓴웃음을 짓는 친구들도 몽글몽글 떠오르네요. 그래도… 어린이 차별과 배제의 ‘죄 사슬을 끊고’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존중과 평화가 가득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어린이 시험 답안 짤로 글을 마칠게요!

배한나
웃긴 사람으로 비춰지고픈 반내향인. 기독교 단체를 맴돌며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다. 현재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