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호 공간 & 공감]
얼마 전 손목 통증이 재발했다. 작년에 치료 후 쓸 만해진 손목이 다시 아파진 것이다. 효과가 가장 빠르다는 유전자 주사를 병원에서 ‘원샷 원킬’도 아니고, 서너 방이나 맞은 후에야 그냥저냥 쓸 만해진 손목이었다. 10년 전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나았는데, 지난해 치료받고도 이렇게 금방 손목이 다시 말썽일 줄은 몰랐다. 올해 무리하게 쓰지도 않았는데, 왠지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 달 정도 버티다가 평일 점심시간에 이용할 만한 정형외과를 검색했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6분도 안 걸리는 그 정형외과 병원은 최근 완공한 새 건물에 있었다. 1층 약국 위치를 미리 확인한 뒤 5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최신 병원으로 올라갔다. 손목은 아프지만 산뜻한 기분으로 신규 접수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즘 병원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널찍하니 쾌적한 느낌을 주는 그곳을 은은한 노란빛 천장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앉아서 한잔할 수 있도록 커피머신도 갖춰져 있고, 갑자기 비라도 오면 병원 이용자에게 빌려줄 일회용 우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전체 공간의 반절은 차지하고 있을 법한 치료실 규모가 꽤 컸다.
내 이름이 불렸고, 엑스레이 촬영을 한 후 진료실 앞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언제나 그렇듯 병원에 오면 이때부터가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인다. 몇 분 안에 의사에게 내 아픔에 대한 이런저런 맥락과 정보를 잘 제공해야, 그에 따라 제대로 전문 소견을 듣고 또 질문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할까, 잊은 것은 없나, 새로 만날 의사는 과연 괜찮을까 궁금해하다가 곧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픔의 재발 이력을 설명했고, 작년과 특별히 다른 소견은 없었다. 다만 같은 일로 두 차례 병원을 찾아, 내 몸에 대해 말하고 그에 따른 의사의 이야기를 복습한 결과로 전보다 내 몸과 이 아픔을 더 잘 알게 되자 억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이런 병은 원래 한번 발생하면 깔끔하게 낫지 않고 재발이 잦고, 아픈 부분은 사용할수록 닳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또 들었고, 작년에도 그랬듯 앞으로는 계획을 세워 관리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변 근육을 단련하는 데 도움 되는 손목 운동도 하고, 손목 지지용 보호대도 잘 착용하고.
의사는 가장 빠르게 회복하려면 (비급여 항목인) 주사 치료가 제일 효과적이라고 했다. 1년 전에도 맞았던 그 주사다. 다른 치료는 없는지 물었다. 어떤 작가 선생님은 요즘 병원들이 비급여 항목 치료부터 제안하는 문화에 끌려가지 않고, 급여 항목 치료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을 알려달라고 조곤조곤 잘 요구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 행동을 본받고 싶으면서도 그와는 다른 이유로 다른 치료 방법을 물어본 것이었다. 일전에 서너 번이나 맞았던 그 주사는 직후에는 약물에 의한 팽창으로 환부가 더 아팠었고, 오후 내내 일을 해야 하는 내 처지에서는 비슷하게 빨리 치료되면서도 덜 아픈 방법이 필요했다. 의사는 또 다른 비급여 항목인 체외충격파 치료를 제안했고, 나는 그걸 받기로 했다.
체외충격파 치료는 꽤 아팠지만, 그럴수록 더 효과가 좋다는 말에 아픈 데를 치고 드는 고통이 싫지 않았다. 판판한 치료 침대에 누워서 놀고 있는 왼손으로는 미간을 누르며, 치료사 선생님께 병에 관해 물을 시간을 확보한 것도 꽤 괜찮았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손목의 이 부분이 상하는지, 왜 그런지, 이것 말고도 어떤 치료를 받거나 물건을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지 등등.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5분이 짧게 느껴졌다. 파라핀 찜질과 레이저 치료까지 받고, 마지막 무료 서비스로 물침대 치료까지 체험하다 보니, 이 병원이라는 장소에 들어선 30여 분 전과는 다른 기분의 내가 되어있었다. 뜨뜻한 물이 대단한 수압을 발휘하며 위아래로 전신 마사지하는 것을 3분간 반복하는 일이 물침대의 기능이었다. 과연, 무료로 한번 체험하고 나면 또 경험하고 싶어지는 그런 기능. 어느새 이 물침대를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나는 기계를 탄 몸이 움직이고 있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 메시지로 보냈다. ‘이 물침대 완전 놀이기구야!’
혼자 킥킥대다가 문득 몇 개월 전에 다녀온 진짜 놀이공원의 경험이 떠올랐다. 동거인과 서울 끝자락에서 볼일을 보고, 갑자기 몇 년 만에 신나게 놀이기구를 타겠다는 마음이 일어나 40분 이상 차로 달려 저녁 시간에 일부러 놀이공원을 찾은 날. 시간 안배를 잘해서 비싼 이용권으로 누릴 수 있는 놀이기구를 최대한으로 섭렵하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겨우 네 개를 타고서 귀가해야 했다. 세 번째로 탑승한 ‘시속 104km의 엄청난 속도, 낙하 각 77도의 세계 최고’의 롤러코스터가 문제였다. 고대하던 그 T익스프레스를 탑승하는 동안 온몸이 쿵쾅댄 통에 내리자마자 목을 비롯한 여기저기에 근육통이 심하게 왔다. 네 번째 공중회전 놀이기구를 탄 후엔 전정기관이 비명을 질러대는 것인지 속이 완전히 뒤집혔다.
중간중간 야간 퍼레이드 쇼를 볼 때도 환상적이라고 느꼈던 전의 기억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퍼레이드 쇼 내내 자기 아이들을 들어 올리거나 목말을 태우느라 부모들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내 시선을 계속 잡았다. 폭죽이 터지고 레이저 불빛이 번쩍이는 공간 속에서 부모와, 그 앞에서 빠른 노래에 맞춰 장단을 맞추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환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힘겨워 보였다.
놀이를 즐긴 게 아니라 공격을 당한 것 같은 몸 상태로 놀이공원을 탈출한 그날의 경험이, 정형외과 병원에서 40분 정도를 머물며 마지막 치료 코스로 3분짜리 물침대 기계를 타며 즐기는 동안에 교차했다. 내 인생에서 놀이공원의 시대는 저물고, 그 자리를 병원이 차지하는 것인가.
언제 또 와서 이 치료 시간을 보낼까 약간 기대하면서 이제는 정말로 모든 서비스를 마치고 물리치료실 앞을 통과하는데, 휠체어를 탄 노령의 환자와 치료사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를 치료하기 직전 치료 처방서에 적힌 코스를 다시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진료실에서 치료 가격을 안내받지 못한 할아버지는 알고 보니 의료실비보험이 없었다. 치료사는 비용에 대한 설명을 반복해주었고, 얼마짜리 치료를 선택할 것인지가 오직 환자의 몫이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이해가 빠르지 않은 환자를 위해 함께 온 아주머니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고, 할아버지 환자는 2분 정도에 2만 원이 넘는 비급여 항목의 냉각 치료는 받지 않기로 하셨다.
내가 이용한 물침대 무료 서비스는 6만 원 이상의 비급여 치료를 받은 이용자에게만 제공되는 것이었다.
오지은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둘 사이를 연결하는 콘텐츠 노동자. 언제나 재미있는 일거리를 기대하고, 빵은 만들어 먹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