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호 잠깐 독서]
성실하고 올바른 성경 읽기로의 초대
새해맞이 성경 통독을 결심했지만 막막한 이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7가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성실하고 올바른 성경 읽기를 안내한다. 초신자부터 성숙한 그리스도인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잘못된 방식으로 성경을 읽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성경을 의미 있고 현실성 있고 적용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성경은 먼저 우리 자신의 시대로부터 멀어지고 낯설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청중들이 친숙하게 여기도록 만들려고 노력하기 전에, 우리는 성경의 세계가 얼마나 ‘낯선지’ 파악해야 한다. 혹은 성경이 우리 자신의 현대적 상황을 향해 말하도록 허용하기 전에, 성경이 우리 자신의 시대와 얼마나 ‘다른지’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결국 피상적인 성경 읽기에서 끝마치거나, 혹은 결국 우리 자신의 상황과 시대를 성경 속에 투영해 읽는 데서 끝마치는 더 심각한 형편에 처할 것이다. (137쪽)
처음부터 완전한 제자는 없다
왜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인자 자리를 야고보에게 내어줬을까? 유다는 정말 돈만 밝히는 제자였을까? 성경에 잘 드러나지 않는 여성 제자는 누구일까? 저자는 열두 제자의 말과 행동들을 분석하고, 초대교회 전승과 자료를 더해 제자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헌신, 변화의 이야기를 담았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참으로 존재감 없는 주님의 사도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저는 이 존재감 없음이 귀하고 좋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러 다니는 동안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만큼 그들은 복음만을 더 기억하게 될 테니까요. 제가 베드로가 아닌 게 얼마나 복됩니까? 결국 전해지는 것은 제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일 테니까요. 다대오든 유다든 레배오든, 제가 누군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156-157쪽)
‘좋은 삶’으로 안내하는 틀, 신학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오늘날 교회 안팎에 만연한 신학에 대한 회의와 비판에 하나씩 답해주는 책. 무신론자였던 자신의 경험도 이따금 꺼내며 오늘 왜 신학이 필요한지, 그리스도인의 삶에 신학은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탐구한다.
신학은 기독교 관점에서 무엇이 좋고 의미 있는지 우리가 결정할 수 있게 도와준다. ‘좋은’ 삶으로 안내하는 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런데 ‘좋은’ 삶 또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문화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합의된 것이 없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본질과 목표에 대한 이해, 즉 세계관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찰스 테일러가 지적했듯이,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큰 그림이 없으면,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그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115쪽)
독서를 통해 만나는 아름다움, 진리, 선
이 책은 독서가 사라져가는 오늘날 개인과 사회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특히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짚어보고, 개별 문학 장르 특성에 맞는 독법을 제시하여 문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진선미를 추구하라고 권면한다. ‘문학으로서의 성경’이라는 개념을 통해 성경을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성경의 문학적 측면을 고려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갖게 되는 첫 번째 오해는, 이 개념이 근대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관념이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 자체는 근대적인 것이 아니고, 본질상 자유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이 개념은 성경 저자들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들이 문학 기법에 숙달했다는 것은 성경의 거의 매 쪽마다 드러난다. 그들은 연대기, 노래, 비유, 묵시록, 서신 같은 전문 문학 용어들을 종종 사용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 같은 비범한 신학의 대가들은 성경에 문학적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20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