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호 월간 에디터의 도전]

이번 에디터의 도전은 ‘매일 기도하기’였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기도 시간을 갖고 소감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특히 평소 하지 않았던 기도의 주제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기도했고, 어떤 느낌을 받았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범진: 기도하는 것은 사실 도전이 아니라 생활이 되어야 하는데, ‘월간 에디터의 도전’ 덕분에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복상을 돕는 후원교회 중 마중물교회, 대광교회 등에서 연락이 올 때가 있는데요. 주기적으로 ‘복상의 기도제목’을 알려달라고 하십니다. 그때그때 기도제목을 드리는데, 한두 분기 뒤에 다시 ‘기도제목을 알려달라’ 연락이 와요. 그때 과거의 기도제목을 읽어보면 이루어진 경우가 많더라고요. 점점 기도제목을 알려드리는 제 마음가짐이 진지해지기 시작하는 거죠.(웃음)

저는 그래서 이번에 후원교회, 후원이사 목록을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후원 관리 업무를 하다 보면, ‘현타’가 올 때가 있어요. ‘왜 이렇게 많이 후원하시지?’ 이해할 수 없는 그 마음 덕분에, 복상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겠지요. 교회 이름, 후원이사님 이름 부르며 기도했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한 정말 이 교회와 후원이사님이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게 되더라고요.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기도만큼 힘이 되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김다혜: 평소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기도하겠다는 말이 가볍게 들리는 순간이 너무 많았고, 곁에 있어주는 일이 하나의 기도로 다가왔던 때가 많아서요. 기도가 부족한, 소망 없는 자의 변명처럼 들리네요.(웃음)

이번 도전을 통해 지인들에게 기도제목이 있는지 물어보게 되었어요.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버티는 삶, 청년들의 노동환경, 그리고 새로운 삶의 단계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계획을 알려준 친구도 있었고, 인격 모독적이거나 물리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잘 버틸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친구도 있었고요. 따로 요청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어려움을 겪다 오랜만에 일을 시작한 친구, 취업에 난항을 겪는 후배를 위한 기도도 이어졌어요.

그런데 한번 기도를 시작하니 이상하게 제게 상처를 주거나 멀어진 지인들을 위해서도, 저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가 나오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 보이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어쨌든 기도는 직간접적으로 ‘소망’의 표현일 텐데, 우리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망’하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기도하고 싶어요.

정민호: 솔직히 저는 이번 도전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고민만 하다가 매일 기도는커녕 마감 주까지도 기도를 못 했어요. 그래도 전략은 그럴듯했어요. (누구나 다 그럴싸한 계획은….) 가까운 이웃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해서, 점점 넓은 단위의 대상을 향한 기도로 이어지고, 마침내 전에는 몰랐던, 기도가 필요한 영역들을 찾아내 기도하면서 응답(?)을 받을 예정이었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기도의 자리로 가지 못했습니다. (핑계입니다.) 그래서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그냥 하자. 깊이 있는 기도는 아니더라도, 주절주절 뭔가를 언급하는 식으로라도 하자.

연락처 주소록에 있는 이름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던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SNS 앱을 열고, 화면에 뜬 인친(인스타그램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싶은 마음은 잠시, 의외로 인친들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감정이 들었어요. 저와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구분 없이 보이는 대로 기도했습니다.

처음엔 아이디만 보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던 분들도 있었어요. 한 번 더 보니까 그때부터 바로바로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이 신앙생활했던 친구들 소식을 보면 이들의 기도제목이 궁금해집니다. 만나면 물어 봐야겠습니다.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제게 기도제목을 물어봐주었던 친구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주변인들 말을 잘 듣고, 기도제목을 물어봐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계획했던 목표는 실패했지만, 잠깐 시간 내어 매일 기도하는 일은 이어가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그 시간이 꽤 좋았습니다.

강동석: 기도에 대해 생각하다가, 1월 5일 신년 특별새벽기도회 때 들었던 담임목사님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창세기 21장을 본문 삼은 말씀이었는데요. 아브라함과 사라가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낳고 기뻐하고 잔치를 벌이는데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려서 결국 하갈과 함께 쫓겨나게 되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어가는 이스마엘의 “우는 소리”를 들으시고 눈물을 흘리는 하갈을 위로하십니다. ‘이삭’의 뜻이 ‘웃음’인지라, 그전에 노쇠한 사라가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루어지겠어?’ 속으로 웃고 마는 모습을 비롯해 창세기 속 여러 장면이 대조되는 해학이 있죠. 목사님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그런 냉소가 기쁨의 웃음으로 바뀌더라도, 웃음을 너그러이 공유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내쫓거나 배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언급하시더군요. 하나님께서 ‘웃음’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 주변의 하갈·이스마엘‘들’과 나누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요.

우리 시대 하갈과 이스마엘을 볼 줄 아는 눈을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번 커버스토리 주제인 ‘이주민과 함께’에 시선이 닿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이주해왔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내쫓겼든 그들의 생활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마감 기간 들어온 글을 읽으며 해당 호 필자나 인터뷰이, 언급되는 인물 혹은 사건을 놓고 때때로 기도합니다만, 붙잡고 늘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 도전을 기회 삼아 커버스토리 인물들과 관련해서 더 진득하게 기도해 보았습니다. 기도가 단지 기도로만 그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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