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호 커버스토리]

&nbsp;ⓒ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지난해 여름, 여러 통의 문자를 받았다. 발신인은 이덕주 송곡여자고등학교 사서교사. 그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도서관협회의 ‘도서관에 대한 일체의 검열 반대와 지적 자유 수호를 위한 성명서’(2023. 7. 31.) 관련 기사였다.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들이 충남 일대 공공도서관에 성교육, 성평등을 주제로 한 어린이책을 폐기해달라는 민원을 넣었고, 몇몇 도서관들이 서가에서 해당 도서들을 뺐다는 내용이었다. “겉으론 학부모, 시민단체이지만 배후엔 대전지역 대형교회라는 보도가 있었다”는 것이 이 교사의 설명.

1991년 〈복음과상황〉의 창간 멤버였던 그는 약 2년간 영업부장으로 근무했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서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가 31년을 근무한, 서울시 중랑구에 있는 송곡여고 도서관을 1월 31일 찾았다. 학교 도서관이라는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한 그의 노력들과 함께 복상의 초기 비화를 들었다.

- 지난해 충남 일대 도서관에서 일부 성교육 도서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제게 관련 문자메시지를 보내셨지요.

이슈를 일으킨 사람들이 주로 보수적인 기독교권이니까, 복상도 주목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죠. 이 학부모 단체들은 양성애를 부추기고 교과 범위를 벗어난 성교육을 하는 책들을 걸러내자며 회원들을 각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라고 독려하고 있어요. 이에 동조하는 시의원들도 학교를 계속 점검하고 있고요. 저희 학교도 옛날에 〈이프〉라는 페미니즘 잡지를 비치한 적이 있는데, 어떤 교사가 ‘이런 걸 학교에 놔도 되냐’고 묻더군요.

그런데 학교 도서관 책들은 제 가치관이 반영된 것도 있지만, 불교나 이슬람 등 이웃 종교를 다루거나 저와 정치적 생각이 다른 서적도 있거든요. 학교 도서관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게 우선이지만,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도 다루는 것이 사서교사의 권한이고, 제 교육관이자 책임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교과서에 갇혀있지 않다는 자유는, 사서교사가 직업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보람이기도 하죠. 저는 지적 자유와 다양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인데, 보수 성향 학부모들과의 개별 학교에서의 여론전은 계속 진행 중이고, 선진국 사례를 볼 때 앞으로 이런 문제들은 계속 확산할 거라고 봐요. 문제는 그분들이 보수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이고요.

- 사서교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사서교사는, 교과 교사와 협력해서 그분들이 수업을 잘할 수 있게 밑받침해주는 일을 해요. 사회 교과서에 노동에 대한 단원이 나오면 노무사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공정무역 단원이 나오면 관련 활동가를 초대해 학생들이 공정무역 제품을 경험하게 하죠. 어떤 건 단순한 특강으로 끝나지만 조사가 필요한 수업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중국어 시간에 ‘네가 중국 유학생에게 호감이 생겼네. 결혼해도 될까? 중국의 가족 관계는 어떤지 알아볼까?’ 같은 질문을 교과교사와 함께 준비하는 거죠. 선생님들과 사전 소통을 많이 하고, 참고할 책들을 학생들에게 제시해줘요. 또,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는 방법, 인용 표시하는 법을 가르치죠. 귀찮아하는 학생들도 대학생이 되면 감사하다고 그래요. 해당 자료 출처와 검색 날짜까지 적는 게 훈련됐으니까요. 초중학교에서는 사서교사들이 독서 수업, 문해력 수업, 미디어 리터러시, 가짜뉴스 체크하는 법 등 직접 수업을 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개개인에게 맞춘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고, 문해력을 키워줄 수 있는 게 사서교사의 역할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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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한 번도 사서교사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협의회가 가장 주목하는 이슈는 학교에 정규직 사서교사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희는 아직 존재의 쓸모를 의심받고 있거든요. 정규직 사서교사 배치율이 전국 15%밖에 안 되는데, 100개 학교 중에서 15곳에만 저 같은 교사가 있는 거예요. 그 외 기간제 교사, 무기계약 공무직 사서분들이 계신 곳도 있지만 대체로 교과 교사가 겸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시는 거예요. 그런 곳은 대출 반납만 돼도 기적이죠. 지방은 상황이 더 열악해요. 교과 교사들은 담임교사나 더 배치해달라는 주장도 하시지만, 사실 전체 교사를 늘리면 되는 문제잖아요. 문제는 교육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고, 학령인구 감소로 교사 채용도 줄이고 있다는 거죠. 전체 교사 수를 늘리면 교사 1인당 맡는 학생 수가 줄어드니까 교육의 질은 더 높아질 수 있어요.

-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선생님이 ‘열린도서관’이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운영하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중 도서부 ‘서랑’(1996년 이덕주 교사의 제안으로 창립된 동아리)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재밌더라고요. 학생들이 도서관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서교사를 견제하는 시스템이어서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제가 도서관 환경 개선 운동에 관심이 많다 보니 출장을 자주 다녔어요. 도서관 문을 잠그고 가서 학생들이 프린터기를 못 쓰니까 저한테는 말 못 하고 도서부 애들을 괴롭혔던 거죠. 도서부원들이 뒷정리를 잘할 테니 도서관 열쇠를 달라고 요구하더라고요. 도서부장에게만 열쇠를 맡기면서 만약 문제가 생기면 너는 아무 책임이 없지만 나는 책임을 지게 된다, 이건 단순한 열쇠가 아니라 우리 가정을 네게 맡기는 거라고 말했죠.(웃음) 물을 틀고 간다거나, 온돌방 전기를 안 끄고 간다던가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열쇠를 뺏기도 하고, 또 협상을 다시 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들이 있었어요.

- 3월부터는 송곡관광고등학교 도서관으로 직장을 옮기시죠. 31년간 근무한 송곡여고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세요?

너무 많은데…. 공직 사회에서 가장 이상하게 보셨던 건, 저의 집요함이었어요.(웃음) 부임했던 첫해에 제가 500만 원어치 책을 사달라는 기안을 작성해서 교장 선생님과 면담했거든요. 일반적으로 1년에 약 100만 원어치 책을 들이던 때였으니 당연히 안 된다고 하셨죠. 그래도 다시 기안을 보완해서 찾아갔어요. 중간 결재자들부터 문제로 삼더라고요. 교사가 교장이 반려한 걸 계속 조르는 거니까요. 공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풍경이죠.

그런데 제가 복상에서 영업을 했잖아요. 너무 단련된 거예요. 첫 고객을 만나서 어떻게 한 번에 계약을 맺어요? 처음엔 인사만 하고, 관계를 쌓고, 그다음엔 광고 얘기 꺼내면서 설득하고, 한 다섯 번에서 열 번 만에 계약이 되기도 하죠. 주로 만나는 분들이 장로님, 목사님이라, 어른들이 익숙하기도 했고요. 처음엔 오해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많이 오게끔 도서관을 바꾸니까 학교에서 신뢰가 쌓이게 된 거죠. 만약 제가 복상에서 일하지 않고 바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면 절대로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어요. 가서 여러 번 설득하고 이런 과정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요.

학교 도서관에 진열된 〈복음과상황〉. Ⓒ복음과상황 정민호
학교 도서관에 진열된 〈복음과상황〉.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어떻게 복상에서 일하시게 되셨나요?

제가 도서관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전부터 취업해서 사서교사로 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기문연 사건’이 터진 거죠. 기독교문화연구회(기문연)는 보수적인 선교 단체 학생들이 전두환 군사정권 시국에 기도만 하고 찬양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독교 사회운동을 조직한 거예요. 내부에 성폭력 문제 등으로 해산했는데, 저희들을 지켜보고 있던 치안본부에서 뒤늦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운 거죠. 1심 재판을 받고 4개월 형을 살다가 집행유예로 나왔어요. 교장 선생님이 세월 좋아지면 다시 교사로 발령받도록 해보겠다고 하셨지만, 당시 복상 이승재 편집장이 저를 부른 거죠.

기문연 사건 이후, 복음주의권에서도 합법적인 정기간행물을 만들자고 했던 게 제가 알고 있는 복상의 탄생 비화예요. 부모님 입장에선, 제가 감옥에 같이 들어간 형이랑 일한다고 하니까 극렬하게 반대하셨지만, 결국 입사했죠. 시력이 좋지 않아서 군 복무를 할 수 없었는데, 그 대신 3년간 복상에서 근무하겠다고 결단했어요. 급여 상관없이, 복음주의 운동을 위해 제가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겠다고요. 기자로 일하고 싶었는데, 글을 다루는 실력이 부족해서 영업부장으로 일했어요. 그때가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복음과상황 김다혜

- 당시 영업부장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기본적으로 서점에 잡지를 배본해요. 제가 잘한다는 칭찬을 받은 건 10년 정기구독자 모집이었죠. 수련회나 집회, 복상이 주최하는 사회선교 세미나에서 제가 광고를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가입서를 썼어요. 그리고 또 제가 잘한 건 지면 광고를 따오는 일이었죠. 해당 기사와 관련된 책들을 낸 출판사를 찾아가서 관련 광고가 실리면 사람들이 사보지 않겠느냐고 설득하는 거죠.

실질적으로는 편집기자 역할도 했어요. 초창기엔 복상이 격월간이었는데, 마감 기간만 되면 2~3일은 집에 못 갔어요. 편집부에서는 원고를 반복해서 보니까 치명적인 오류를 잘 못 잡아내잖아요. 제가 마지막 교열 교정을 보면서 틀린 이름이나 사진 캡션을 바로잡았죠. 필자가 원고를 늦게 주면, 직접 찾아가 다 쓸 때까지 기다리다가 원고를 받아오기도 했어요. 광주항쟁 이후 교계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안수하고 조찬기도회를 열었는데, 그 사진을 신문사 조사부에 근무하는 도서관학 선배들에게서 얻어서 실은 것(1991년 5·6호)도 하나의 공이라면 공이죠.(웃음)

- 근무하시던 중 또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2년 1·2월호에 새카맣게 먹을 입힌 페이지가 있었는데요.

CCC 사태를 조명한 글이었는데요, 김준곤 목사의 재정 비리에 대한 치리를 요구하는 간사들을 린치한 사건이었죠. CCC 출신인 제가 대전 CCC 간사님들을 찾아갔었는데요. 취재 윤리에 어긋나지만, 책상 위에 그 사태에 대해 논쟁하고 정리한 자료가 있었어요. 가져왔죠. 편집장이랑 검토하고 쉬쉬하는 그분들 설득해서 취재하게 됐고요. 그때 CCC는 교계 기자들 입을 막으려고 촌지를 돌렸는데, 그 정보도 입수해서 CCC 사태의 경위에 관해 기사를 쓴 거죠. 편집권에 대한 주장을 하는 소장파 편집부와 교계의 여러 가지 것을 고려해 반대하는 편집위원들 간에 갈등이 일어났어요. 최종적으로는 안 내보내는 걸로 결론이 났지만, 이미 부수를 다 찍었기 때문에 그 페이지만 새카맣게 먹을 입혀서 나갔어요. 전국의 CCC 지부나 모임들이 CCC 개혁을 바라는 의견광고도 다 먹으로 때렸고요. 무슨 기사인지 알아볼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불빛에 비춰봤죠. 전 먹을 입히지 않은 판본을 소장하고 있어요.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에요.

- 복상에서 2년 조금 안 되게 근무하시다가 다시 사서교사가 되셨는데요.

당시 평범한 직업을 가지라던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동지들을 배신한 거죠.(웃음) 복상을 통해 영업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 그쪽으로 나갈까 싶었는데, 사서교사가 제 오랜 꿈이기도 했어요. 고등학생 때 도서부 활동을 하면서 사서교사의 모델이 되시는 분을 만났거든요. 전두환 정권 시기, 사회 선생님은 그를 정의 사회를 구현한 인물로 가르쳤고, 학생들은 그걸 달달 외워야 했어요. 학생들도 아는 거짓말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 현장을 보면서 교사들이 측은하더라고요. 당시 제가 만난 사서 선생님은 정식 교사도 아니었는데,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좋은 책들을 알려주셨어요. 저런 사서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대학 선배들은 모두 대학교나 기업체 도서관 같은 곳을 갔고, 제가 취업을 준비할 때는 전국에 사서교사가 150명 정도밖에 없었던 시기였어요. 저 같은 교사가 학교 도서관에 있으면 조금 더 좋은 학교가 될 텐데, 이런 교사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해온 게 복상을 떠난 이후 제 삶이었죠.

- 선배로서 오늘의 복상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하나님이 왜 나를 복상에 보내셔서 영업을 시키고 이런 훈련을 시키셨을까, 제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었어요. 복상은 제게는 신앙생활이었고, 거창하게 말하면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는데요. 지금은 기독교 회사를 떠나 일반 사립학교에서 근무하지만,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갈 거라고 다짐했거든요. 시작할 때는 도서관이 정말 열악했고 힘들었는데, 저는 이게 신앙적인 행위니까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지금까지 잡지가 이렇게 살아남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잡지 시장이 계속 축소되고 있잖아요. 복상이 이어진다는 것에, 여기에 인생의 가장 귀한 시간을 바치고 있는 분들에게 진짜 감사하죠. 에너지가 될 때까지 해주시다가 다음 주자에게 또 이어주셨으면 해요.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엔 신문(상황)을 들고 계속 정진해주세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니까 자신감을 가지시고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

31년간 근무한 송곡여고를 떠나게 됐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31년간 근무한 송곡여고를 떠나게 됐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없는 게 없는 도서관. 소형 제빙기, 피아노, 생리대, 보드게임, 주방과 조리도구, 온돌이 깔린 공간과 이불. 모두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도서관 1층은 온돌 공간과 도서관 환경 개선을 위한 학생들의 제언들이 적힌 포스트잇, ‘사서교사가 권하는 책’과 ‘서랑이 권하는 책’ 코너가 눈에 띄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학생들이 수업 때 이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 스튜디오, 프린터 공간, 여성학과 노동, 교육처럼 ‘주제별’로 큐레이션된 서가가 보였다. 미국 페미니즘을 이끈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을 비롯해 《생리의 힘》 《십대를 위한 동화 속 젠더 이야기》 《섹스하는 삶》 《페미니즘 교실》 등을 마주했다.

벽면에는 여러 포스터들이 빼곡했다. 〈고3을 위한 노동인권수업 슬기로운 알바 생활〉 〈사회문제탐구 주민참여예산 제안〉 〈장애 인식 교육〉 〈한국-베트남 평화 이야기〉 〈전쟁의 위기를 넘어 평화로 가는 길〉…. 이덕주 교사가 동료들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 다양한 교과 수업들이었다. 그리고 마주한 제9회 ‘금서 읽기 주간’ 포스터. “우리는 도서관에 대한 일체의 검열에 반대한다”라는 글씨는 무지갯빛이었다.

Ⓒ복음과상황 김다혜
Ⓒ복음과상황 김다혜

진행 김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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