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호 그림책으로 우리의 안부를]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의 ‘시작’은 몇 시를 가리킬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보통 ‘자정(子正)에서 다음 날 자정까지’를 말하거나 ‘해 뜨는 아침부터 해 지는 저녁까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흥미롭게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창 1:5, 8, 13, 23, 31)고 하면서 하루의 시작을 해가 지고 점점 어두워지는 시간에 두고 있습니다. 대개 빛이 있는 낮 동안 일하고 밤에는 그 수고로 얻은 대가를 누리며 편안히 눕는 줄로 알았는데 그 반대일 수 있겠다는 발견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수고가 멈추고 무엇을 할 수 없는 어둠이 깊은 밤이야말로 우리를 살려내고 키워내는 성숙의 시작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아름다운 시선 《두이노의 비가》에 “나를 낳아 준 어둠이여, 나는 불꽃보다 당신을 좋아한다. … 어둠은 모든 것을 스스로 품고 있다. … 나는 밤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에게는 어둠의 시간이야말로 위대한 언어를 낳아주는 창조의 요람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어둠 속에서, 깊고 깊은 밤을 지나는 동안 어둠이 만들어내는 여명의 시간이 제시간에 도착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밤이 깊으면 어둠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에 귀를 밝히며 자장자장 무서운 마음들을 가라앉혀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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