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호 에디터가 고른 책]

깨달음은 더디 온다 / 사막 교부와 교모 지음 / 이덕주 풀어엮음 / 사자와어린양 펴냄 / 17,000원<br>
깨달음은 더디 온다 / 사막 교부와 교모 지음 / 이덕주 풀어엮음 / 사자와어린양 펴냄 / 17,000원

최근 머리 아픈 일을 연달아 겪으면서 강퍅해졌다. 마음이 힘들어도 시간은 흘러가고, 여지없이 3월호 마감 기간이 찾아왔다. 한 달이 이리도 짧았던가. 사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요즘 독서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한 토막씩 끊어 읽어도 무방해 보이는 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방심한 가슴에 화살 꽂히듯 말씀의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얼떨결에 9장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인내에 대한 가르침’을 펼쳤던 탓이었을까. 9장은 이 말씀으로 시작한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도서 7:8-9)

왠지 끈적한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 이야기로 시작한 저자 이덕주 교수의 붙임 글(짧은 해설)은 “사막에 들어간 교부와 교모가 수십 년 연단한 것도 바로 인내였다. 끝까지 참고 견뎌 낸 후에야 얻는 하늘의 기쁨, 그것이 그들이 사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라는, 담백한 힘이 있는 문장으로 끝났다.

이후 이어진 사막에서 길어 올린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 일곱 편은 단 네 페이지로 넘어갔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다시 들추어 두 번 세 번 호흡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가진 묵직한 침묵의 시간이 시름을 완전히 덜어주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가르침에 제법 오래 머물면서 마음속 쌓여있던 작은 돌멩이 몇 개는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성자는 “그대가 혼자 살아도, 남과 함께 살아도 평안을 얻을 수 없다면 왜 수도자가 되려 하시오? 시험에 들어 고통만 당할 뿐 아닌가요? 그대는 몇 년이나 수도생활을 하였소?”라고 물었다. 그가 “팔 년 됩니다” 하자 성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칠십 년 동안 수도생활을 해왔는데 어느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소. 그대는 고작 팔 년 만에 평안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습니까?” 이 말에 수도자는 힘을 얻고 돌아갔다.”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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