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회개 기회 번번히 외면…교회 재건원칙도 구호에 그쳐

   
▲ 1945년 8월17일 평양 산정현교회에 모인 출옥 교인들. 뒷줄 왼쪽부터 조수옥 주남선 한상동 이인재 고흥봉 손명복. 앞줄 왼쪽부터 최덕지 이기선 방계선 김인희 오영선 서정환.

한국 교회는 대한민국이 건국 근거로 삼는 3·1운동을 주도했으면서도 하나님과 민족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원죄'를 짊어지고 있다. 3·1운동 이후 민족을 배반하고 신사참배로 상징되는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 교회의 원죄다. 그러나 이보다 크고 무거운 교회의 죄는 여러 번에 걸친 회개 기회를 차버린 것이다. 지금도 교회는 과거사 청산에 관련한 이야기만 나오면 미래를 보자는 식으로 회피하고 있다.

해방 직후 교회는 자성으로 회개할 첫 기회가 있었다. 신사참배 거부로 옥에 갇혔다가 해방과 함께 출옥한 교인 20여 명은 집으로 가지 않고 평양 산정현교회에 모여 2개월간 교회 재건을 위해 기도한 뒤, 1945년 9월20일 '한국교회 재건 기본 원칙'을 발표했다.

책벌은 사람이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들이 발표한 재건 원칙은 △교회 지도자(목사 및 장로)들은 모두 신사에 참배하였으니 권징의 길을 취하여 통회 정화한 후 교역에 나아갈 것 △권징은 자책 혹은 자숙의 방법으로 하되 목사는 최소한 2개월간 휴직하고 통회 자복할 것 △목사와 장로가 휴직 중에는 집사 혹은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할 것 △교회 재건의 기본 원칙을 전한(全韓) 각 노회 또는 지교회에 전달하여 일제히 시행하게 할 것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를 복구 재건할 것 등이다(김양선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종교교육부 펴냄).

이 재건 원칙은 같은 해 11월14일 열린 평북목사수양대회에서 평북6노회 교역자 200명이 참여한 가운데 다시 발표되었고, 12월 소집된 북한5도 연합노회 결의에도 포함되었다. 이후 여러 부흥회에서 설교 간증과 함께 재건 원칙이 발표되었다.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학자들은 김양선 목사가 쓴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1956)를 인용해 "재건 원칙이 발표되자 교회 및 노회들이 신사참배 죄악을 시인하고 이 원칙을 실행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승태 연구실장은 "목사가 시행하려고 했지만 교인들이 말린 경우가 없지 않지만, 당시 교회 대부분이 이 원칙을 시행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에도 이 원칙을 지킨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교권을 잡은 목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8년에 열린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선포한 홍택기 목사의 반발이다. 홍 목사 등 친일파 목사들은 재건 원칙을 주장한 목사들을 향해 "옥중에서 고생한 사람이나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고생한 사람이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고, 교회를 버리고 해외로 도피했거나 혹은 은퇴한 사람의 수고보다는 교회를 등에 지고 일제 강제에 할 수 없이 굴한 사람의 수고가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그들은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책벌은 하나님과의 직접 관계에서 해결할 성질의 것이지 누구의 강요에 의해 결정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2>, 김인수 <한국기독교회의 역사>, 최덕성 <한국 교회의 친일파 전통>).

이에 대해 대표적인 교회사학자 민경배 총장(서울장신대)은 "홍택기 목사의 말에는 반박하기 어려운 정연한 논리와 신학이 있었다"며, 출옥 교인의 요구에 대해 "해방 이후 한국 교회의 신앙은 은총의 신비를 근본적으로 결여하고 있었다"라고 평가한다(<한국기독교회사> · 대한기독교출판사 펴냄).

출옥 교인들, 교회 따로 개척

그러나 교회사학계의 전반적인 평가는 민 총장의 평가와 전혀 다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 총회장 김태범 목사)가 출간한 <대한예수교장로교회사>에서는 '신사참배한 목사, 장로 등 교직자들에게만 2개월간 근신토록 한 것은 현실을 인정한 지혜롭고도 관용적인 태도로써 현명한 결정이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인수(장신대) 박용규(총신대) 최덕성(고신대) 교수를 비롯해 대부분의 교회사학자들도 "신사참배를 뉘우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같은 불만은 토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교권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출옥 교인들은 신사참배한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며 별도로 교회를 개척했다. 친일에 대해 회개하지 않은 것이 결국 교회 분열의 씨앗이 된 셈이다.

비록 한국 교회가 재건 원칙은 지키지 않았지만 공식으로 신사참배를 뉘우친 적이 있다. 학자에 따라 뉘우친 회수를 2회에서 3회로 다르게 주장하지만, 교회가 잘못을 깨달은 것만은 사실이다. <대한예수교장로교회사>에 따르면, 장로교는 남쪽 전체 노회를 재건한 뒤 1946년 6월12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남부총회(제32회)를 소집해 "제27회 총회가 범과한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한다"라고 의결했다.

문제는 이 의결이 진실한 참회가 아니었다는데 있다. 박용규 교수는 "남부총회는 표면적으로 신사참배에 대한 분명한 취소를 결정하기는 했으나, 신사참배한 것에 대한 사과나 처리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그리고 웬일인지 이에 대한 기록도 총회록에서 누락되었다"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잘못을 인정한 후 총회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은 회의적이었다"며, 그 이유를 "신사참배를 반대한 이들이 주류에서 밀려나고 친일파들에 의해 교단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후 1948년 제34회 총회에서 다시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한 뒤, 1954년 제39회 총회가 친일 전력이 있는 부총회장 한경직 목사 대신 출옥 교인인 이원영 목사를 총회장에 선임한 것을 기해 신사참배 결의를 재삼 취소했다.

참회 없이 신사참배 결의만 취소

총회가 이처럼 반복 결정한 이유에 대해 임희국 교수(장신대)는 <선비 목회자 봉경 이원영 연구>에서 '이번 총회(제39회)는 이북에서 온 목회자들도 총대로 참석하게 되어 남북합동 총회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여러 해 전 남부총회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신사참배 문제를 해소할 기회라는 여론이 돌았다'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고려신학교측 교회를 총회로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신사참배의 죄를 통회하며 성명서를 내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었다'라고 밝혀, 당시 신사참배 결의 취소 뒤에는 정략적인 계산이 깔려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제39회 총회 결의는 '취소 성명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는 진실한 참회의 모습이 없고,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취소 성명서에는 '제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성명에 대하여 일제 강압에 못 이긴 결정이었으나 이것이 하나님 앞에 계명을 범한 것임을 자각하고… 본 총회는 이를 취소하고 전국 교회 앞에 성명함'이라고 쓰여 있다. 또 총회는 1954년 4월27일 오전 5~8시까지 사죄 기도하고 순교자 가족을 위한 헌금 26058환을 모았다.

이에 관해 김승태 실장은 "신사참배뿐 아니라 일제에 협력하고 민족을 배반한 행위에 대해 하나님과 민족 앞에 참회해야 했다"며 취소 성명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최덕성 교수는 "공적 참회 고백과 공적 참회 권징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라고 결론짓고, 취소성명서의 결함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선 최 교수는 성명을 발표한 주체의 이름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1938년 신사참배를 행하기로 한 성명에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장 홍택기'라고 표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둘째는 '전국 교회 앞에 성명함'이라고 말해 참회해야 할 주체인 '전국 교회'가 성명을 받아들이는 대상으로 표기한 것이다.

셋째는 취소성명서가 참회 고백문이나 사죄문이 아니라 과거의 결의를 취소한다는 것을 전국 교회에 알리는 것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넷째는 신사참배는 일제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해 성명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점이다. 다섯째로 신사참배 문제만을 거론했을 뿐 신사참배 거부자에게 행한 교회의 압력과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는 것이다.

명예를 위한 교권주의자의 '몸부림'

김양선 목사는 그의 책에서 여러 번 참회한 것을 두고 "총회가 신사참배의 범과를 통절히 뉘우치지 못했다는 증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며 "교권주의자의 자기 명예를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제43회 총회는 김 목사 주장에 대해 "총회를 모독한 것이며 기도와 총회를 비난한 것으로 인정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총회는 대표적인 친일파 전필순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위원회'를 조직해 김양선 목사의 책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에 대한 출판 · 판매금지 조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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