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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눈물이 나요? 아빠가 보고 싶어서요?”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희서가 아빠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는 엄마를 보고 한 말이다. 그 이후로 희서는 아빠를 찾지 않는다. 이제는 아빠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다섯 살이 된 예서는 가끔 아빠를 찾았다. “집에 아빠 있어요? 없어요?” “아빠는 왜 병원에 계속 계속 있어요?”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예서는 아빠가 병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죽음이란 친해지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주님의 죽음을 우린 사랑이라 알고,
내 인생의 한 구절
이소영
401호 (202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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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내 인생의 한 구절
유상희
399호 (202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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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3).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신학생은 아니지만) 신학교를 거쳤다가, 기독교 기반 회사에 다니게 되기까지. 성경 한 구절로 생의 전반을 표현하긴 어렵겠지만, 나는 긴 세월 이 말씀과 인연이라도 맺은 듯이 살았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부모님 아래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왔는데, 아빠가 29년간의 공직 생활을 그만두면서 대학 시절부터 함께 활동한 선교회 분들과 대안학교를 시작했다.
내 인생의 한 구절
이승은
398호 (2024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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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누군가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예술가들은 다들 병들었거나, 자살했거나, 방탕하거나, 폭력적이었다. 애정은 결핍을 알아보고 보듬어주는 데서 시작된다는데, 나는 조금 극단적인 것에 끌리곤 했다. 이런 면은 일상생활과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났다. 단점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끌렸고, 내가 받을 수 있는 게 없을수록 잘해주고 싶었다. 내면이 망가진 상대를 돕기 위해 달려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누구도 내 뜻에 맞게 변화되거나 생각만큼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것
내 인생의 한 구절
김서은
394호 (2023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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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의 마음 문제를 다루는 상담심리사다. 꽤 오래도록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기 위해 애쓰던 백수였는데, 재작년부터 ‘찾아가는 상담사’로 일하다가 1년 반 만에 취업했다.청년기의 가장 큰 과업은 아무래도 직업과 사랑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청년기에 직업적 고민을 하며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자기 정체성과 진로 적성을 놓고 앞날에 대해 고민하면서 신앙적 의미까지 생각한다. 나는 취업이 안 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인문사회대 중에서도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아무런 ‘증’도 발급되지 않는 과였다. 졸업할 무렵, 나
내 인생의 한 구절
차현정
393호 (202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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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서 느꼈던 회의예비역 복학생 시절에 인상 깊게 읽은 동화가 있습니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입니다.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어느 숲의 나무에 애벌레 한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애벌레는 혼자 살면서 매일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벌레는 문득 ‘매일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몸집을 불리는 것 말고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질문을 따라가보기로 마음먹은 애벌레는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길을 가다 얼룩무늬 애벌레를 만나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둘은
내 인생의 한 구절
김희룡
388호 (2023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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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하게 이른 아침 시간. 3월부터 공식적으로 고3이 되는 큰아이가 지금껏 한 번도 다니지 않았던 학원에 가는 첫날이었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일찍 갔다가 밤에는 더 늦게 온다.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성도 못 느꼈지만, 최근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찾았기에 이제는 해보려 한단다. 성적이 얼마나 오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고 싶은 공부를 찾은 것이, 또 새벽부터 밤까지인 학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기특했다. 아이가 학원에 가는 첫날 아침, 아이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주먹밥을 만들어줬다. 밥을
내 인생의 한 구절
김동진
387호 (2023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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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당신과 내가 / 날과 씨로 만나서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우리들의 꿈이 만나 /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나눔의 거대한 물결 속 트럭을 몰며얼마 전 아름다운가게가 서울 페럼타워에서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2002년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 앞 작은 길거리 알뜰시장으로 시작한 아름다운가게는 그해 10월 안국 1호점 오픈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164개 매장을 열었다. 현재 서울 31개 매장을 포함해 전국 110개 매장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한 구절
류화선
385호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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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후회 없는 밤을 보내게 될까이제 육아 4년 차, 내 일상은 특별할 것 없이 아이들 컨디션에 따라 좌우된다. 지난주는 한파에 미세먼지가 최악이어서 아이들과 집콕, 이번 주는 아이들 감기로 집콕. 인생 38개월 차와 8개월 차인 두 아들과 보내는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날들이다. 내가 이렇게 웃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뚝뚝 흘리는 사랑스러움에 취했다가, 금세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와 짜증을 낸다. 밤이면 잠든 아이를 안고 왜 난 더 인내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날들이 반복된다. 아이들 밥을 챙기고 응
내 인생의 한 구절
문혜인
376호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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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기독교인과 한문 고전에 관해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다. 《순자》(荀子)에 대해서, 그중에서도 ‘관상 보는 것을 비판함’(非相)이란 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년 가을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나비약과 뼈말라족’ 편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저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키에서 125만큼을 뺀 몸무게를 ‘뼈말라’ 상태라고 하는데 요즘 10대들 사이에서 그런 몸무게에 도달하는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방송은 몸무게 달성을 위해 ‘나비약’이라고
내 인생의 한 구절
임자헌
375호 (202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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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나에게 소리쳤다.“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거울 속의 나도, 모진 말을 내뱉는 나도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 거울에 비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나에게 철저한 타인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정신이 번쩍 든 것도, 어쩜 그 순간이었다. 오기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그리고 그렇게 나는 살아남았다. 1년하고도 8개월, 바이러스가 우리를 괴롭혀온 시간보다 조금 더 긴 시간, 훨씬 더 고통스럽게 나는 살아왔다. 지금까지는 그런 나를 감추느
내 인생의 한 구절
김혜미
370호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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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학 씨와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형을 찾기 위해 보호기관이나 병원에 전화를 걸면 늘 되돌아왔던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친구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2018년 6월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형은 지나친 음주로 식도와 간이 많이 상했고, 50년의 생을 고시원에서 쓸쓸히 마감했다. 구청 직원은 내가 가족이 아니기에 시신을 확인해줄 수 없고, 무연고자로 처리하는 것이 비용과 절차상 유익이 있다고 설명했다. 형의 가족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십수 년 전에 알코올중독자 아들과 남이 되기로 하면서
내 인생의 한 구절
한호민
369호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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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9-10, 새번역)장애를 갖고 자라는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근심거리가 된다. 생후 9개월에 소아마비라는 전염병에 걸린 나는 왼쪽 다리가 마비되는 후유증을
내 인생의 한 구절
김종호
368호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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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 107:30, 개역한글)아빠가 끌어주던 ‘고무 다라 보트’어린 시절 여름이면 강원도 홍천 강가로 가족여행을 가곤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캠핑’이겠지만, 그냥 텐트와 버너를 챙겨 떠나는 여행이었다. 강 바로 옆에 텐트를 쳐놓고는 물놀이와 먹는 일에 전념하면서 일주일 정도를 보내곤 했다. 물속에 오래 있으면 입술이 파래졌다. 그럴 때면 물속에 있던 나는 부모님께 끌려나왔다. 햇볕에 달구어진 돌 위에 앉아있다가, 몸에 물기가 마르기 무섭게 다시
내 인생의 한 구절
이수연
367호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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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0년 1월에 느헤미야 교회협의회 소속 ‘걷는교회’1)를 개척한 목사다. 내 팔자에 개척교회 목사는 없으리라 장담했다. 내 모교회는 매년 개척교회 50곳의 목회자를 불러 세미나를 여는 곳이었다. 10년 넘게 세미나 스태프로 섬기면서 개척교회 목사들이 겪는 다양한 고충을 접할 수 있었다. 그 고된 삶을 알기 때문에 개척교회 목사가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개척교회 목사가 되어있다. 인생이 꼬인 듯하다.어쩌다 보니 개척교회 목사개척교회를 하기 전에 섬기던 교회는 교단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큰 교회였다. 그 교회
내 인생의 한 구절
손주환
366호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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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자동인출기가 혀를 내밀 듯 통장을 뱉었다. 통장 속지 마지막 줄엔 숫자 4가 찍혀있었다. 하필 4라니. 죽으라는 건가. “그래도 돈이 있어야 한다.” 신학대학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스물여섯 살 청년은 어머니의 말씀을 불신앙이라 단죄했고, 고고한 믿음을 따라 신학대학원 진학을 가족들에게 선포했으며, 공부를 마치고 이주민 단체에서 전도사를 거쳐 지역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공부를 하고, 조직의 막내로 일할 땐 돈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만큼 받으면 족했다. 목사가 된 지금, 조직을 꾸리고 작게
내 인생의 한 구절
김영준
365호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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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엄마 따라 교회를 다녔던 나는 뭐든 열심이었다. 기도원까지도 부지런히 따라 다녔다. 그러다 엄마는 자신을 전도했던 집사님에게 큰 배신을 당했고 그 상심으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나 역시 그 무렵 주일학교 선생님한테 큰 실망을 했던 터라 엄마와 함께 자연스레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남편을 만나 다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남편이 좀 더 교회에 열심이었다. 그래서일까. 남편 바짓가랑이만 붙들고 따라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구원받겠지, 천국에 이르겠지 하고 막연히
내 인생의 한 구절
이진혜
354호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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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원고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해마다 오늘이 되면 어김없이 들리던 그 노래가 다시 들려온다. 아,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밤이구나. 해마다 이 날이면 시그널 음악처럼 들려오던 노래와 함께 조금은 바쁘고 분주했던 어느 시월의 마지막 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날이 바쁘지 않다.병실에서 쓸쓸히 맞이한 종교개혁 500주년과거에는 교회개혁 모임을 비롯해 시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루터의 종교개혁 기념일을 기념하느라
내 인생의 한 구절
우주현
349호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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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도록 미운 당신“내게는 죽이도록 미운 당신이 있었고, 죽이도록 미웠던 내가 있었다” 로 시작되는 내 책, 내가 피를 찍어 쓴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복있는사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내 고난의 연대기이다. 그때 그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것,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쓴다는 것도 내게는 아픔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워 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예전의 일들 ― 예전이 아니라 옛날이라고 쓰고 싶을 만큼 참담했고 비루했던 그때 그 일들 ― 을 다시금 떠 올리는 것은 내겐 악몽이다.사실, 그때 일은
내 인생의 한 구절
김기현
334호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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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목사 만들려고 미국 온 것 아니다”제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불쑥 실망과 허탈을 감추지 못하셨던 부모님의 음성이 들려오곤 합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부모님의 출생지는 이북이었습니다. 해방 후 6·25 전에 남한으로 내려오신 아버지는 신문기자였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지요. 그때 제 나이는 열네 살. 덕분에 저는 미국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을 나왔고 뉴욕 시에서 도시계획가로 살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자매와 결혼하여 첫 아들을 낳고 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던
내 인생의 한 구절
이승한
329호 (2018년 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