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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동물기를 연재하며 인간과 함께 살아온 동물 친구들 이야기를 다뤘다. 그런데 인간 곁에 더 가까이, 그러나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이 있다. 비록 살과 피를 가진 진짜 생명은 아니지만, 상상 속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수천 년간 함께해온 미지의 존재들이다.지난여름, 부여로 가족 여행을 가서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났다. 이전에는 교과서에서 읽은 대로 ‘금으로 만든 불교 유물’ 정도로만 알았다. 다시 마주한 향로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향로에서 수많은 동물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백제
구선우의 동물기
구선우
419호 (202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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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반려동물과 낯선 이가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하겠습니까?”작년 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한 윤리 칼럼이 화제였다. 뉴욕대 철학 교수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우리 고양이와 낯선 사람이 동시에 물에 빠진다면, 남자친구는 고양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라는 독자의 말을 제목으로 삼은 칼럼을 통해 인간의 생명과 반려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적 우선순위를 둘러싼 통찰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 생명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반려동물을 우선해서 생각하는 감정이 매우 인간적인 충동이라고 인정했다. 동시에, 반려동물을 구하는 일이 “잘못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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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202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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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네 집에는 마흔 살에 가까운 거북이가 산다. 사촌 형이 아기였을 때, 어린이날 기저귀 사은 행사로 받아 온 두 마리 중 한 마리다. 1987년부터 고모네 가족과 함께했다. 한 박스에 한 마리를 받을 수 있었고, 한 마리만 데려오면 외로울 것 같아서 두 박스를 사 왔다고 한다. 두 거북 중 한 마리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남은 한 마리는 여전히 건강하게 가족 곁을 지키고 있다.사촌 형이 결혼을 앞두고 예비 형수님을 집에 데려왔을 때 일어난 일이다. 형수님은 수조 속 거북을 한참 바라보다 물었다. “이 거북이 이름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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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호 (202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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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들이 갓 돌을 넘긴 어느 겨울, 바쁜 아내를 두고 아들과 단둘이서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겨울방학 끝자락을 그저 흘려보내기가 아쉬워 아들을 위해 두 가지를 다짐했다. 집 밖에서 하룻밤 보내기, 사자 보러 가기. 아들은 동물 중에서도 유난히 사자를 좋아했다. 진짜 사자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보다 부산이 따듯하다는 말을 듣고 기차에 올랐다. 바람 부는 부산 시내를 걸었고, 그날 엄마 없이도 잠든 아들과 무사히 밤을 보냈다.이튿날 아침, 부산의 한 동물원을 찾았다.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유리 벽 너머 사자를 한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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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202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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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로 참새 떼가 들이닥쳐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납게 공격한다. 까마귀 떼가 뛰어가는 아이들을 무섭게 뒤쫓아 습격한다. 공중전화박스에 갇힌 여성에게 수많은 갈매기가 달려든다. 이 모든 장면은 10여 년 전 우연히 방영된 옛날 명화를 시청하던 중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강렬한 장면들은 새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던 내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그 후로 새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인 호감보다는 섬뜩한 두려움으로 바뀌고 말았다.당시 내가 본 명화는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연출한 〈새〉(The Birds, 1963)였다.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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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202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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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 여러 신화와 미스터리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물에 사는 괴물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들은 세이렌을 비롯해 인어, 오디세우스와 싸운 바다 괴물 카리브디스, 북유럽의 문어 괴물 크라켄, 일본의 요괴 갓파(河童), 스코틀랜드 네스호의 미스터리 괴물 네시, 〈파워레인저〉에 등장하는 바다의 기사룡 모사렉스, 심지어 우리나라의 물귀신까지, 물에 사는 수많은 괴물 이야기를 해주었다.미지의 대상이 주는 공포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괴물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1934년 네스호에서 촬영되었다는 네시 사진은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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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우
413호 (202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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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쥐를 본 적 있나요?”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대부분 오래됐다고 답했지만, 최근의 목격담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공원, 아파트 옥상, 번화가 뒷골목 등, 쥐는 여전히 도시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나도 작년에 오래된 상가 화장실에서 만났다. 당시 내 생각은 ‘아직도 서울에 쥐가 있네?’였다. 지금 만났다면 다른 생각을 할 테지만, 대부분 사람은 쥐가 이 도시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시골 쥐와 서울 쥐〉로 알려진 이솝우화에서는 시골 쥐가 도시에 사는 친구 쥐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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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우
412호 (202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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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고양이를 정말 많이 볼 수 있지만, 내 삶에는 고양이가 없다. 산책을 자주 나오는 반려견과 달리, 반려묘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웃집에 드나들지 않으니 직접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길고양이도 다르지 않다.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다가가도 도망가기 일쑤이다. 지난봄, 집 앞 골목에서 흰색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 울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서 주차장으로 데려와 물을 주었지만, 먹지 않았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 주었더니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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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우
411호 (202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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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맞이한 서기 2000년, 하늘이 열린 개천절에 부모님과 함께 강화도로 교회 야유회를 갔다. 어른들은 마니산에 올랐고, 친구와 나는 산 아래 냇가에 남았다. 새로운 곳에서 모험하는 일은 초등학생 소년들에게 좋은 자극이었다. 소년들은 냇가에서 뱀 한 마리를 잡았다. 페트병에 넣었다가 스티로폼 박스로 옮겨 담았다. 나뭇가지로 툭툭 치기도 하고, 뱀에게 먹이를 줄 생각으로 지렁이나 벌레를 잡으러 다니며 재밌게 놀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뱀에게 물렸다. 스트레스를 받던 뱀이 내 오른손 검지를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고, 따끔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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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호 (2025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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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교감하는 동물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조교를 맡고 있는 대학교 사회봉사 과목 ‘치유와회복-재활승마’를 통해 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이 수업은 한국마사회 재활승마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학점을 이수하는 과목이다. 대학생 봉사자들은 직접 말을 타지 않지만, 장애 아동 등 프로그램 참여자가 승마 강습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학기 초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로부터 신청 동기와 다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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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우
409호 (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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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들은 땅콩 등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확인해주셔서 걱정 없이 지냈다. 초등학교에 가니까 음식을 잘못 먹어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다행히도 급식 식단표에는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 표시되어 있었다. 음식명 뒤에 적혀있는 숫자로 식재료를 확인했다. 땅콩은 4번, 호두는 14번. 그래서 매월 급식 식단표가 나올 때마다 4번과 14번이 있는지 아들과 함께 확인하게 되었다.한 번은 3-5월 석 달 치 분량을 전수조사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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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우
408호 (202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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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는 본지 400호 기념 ‘연재 기획 공모전: ‘복음’과 ‘상황’을 잇다’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왜 ‘동물’인가“송아지, 송아지, 투뿔(++) 송아지~”여덟 살 아들이 동요 〈얼룩송아지〉 가사를 바꿔 부르며 낄낄댄다. 평소 같았으면 웃어넘겼겠지만, ‘동물 묵상’에 빠져있던 터라 새삼 가사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왜 저 아이는 동요 속 송아지를 먹거리로 바꾸어 부르고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까? 아니, 어떻게 저것이 웃음거리나 유희가 될 수 있을까?요즘 나는 동물을 묵상한다. 동물권이나 동물 해방을 논하는 고차원적인 묵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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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호 (2024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