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방 옆 다세대 공동주택 1층에서 낯선 소리가 들립니다.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 스물두 평인 빌라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입니다. 이들의 존재는 쉽게 감지가 안 돼요. 새벽같이 나갔다가 깜깜해져야 돌아오거든요.모처럼의 휴가였을까요. 평소라면 일하러 갔을 시간인데, 101호가 시끌시끌합니다. 음악 소리와 영상 통화음이 얽혀서 사람 사는 표시가 납니다. 플라스틱 의자를 가지고 밖에 나와있는 이들도 꽤 있습니다. 자연광 아래, 처음 보는 얼굴이 참 해맑습니다. 이후 펼쳐진 영화 같은 장면. 공동주택 옆 대추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은 사
책방에서
이수진·김희송
420호 (2025년 11월호)
-
무엇이든 세우기 전에는 허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허물어야 할 습관이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흔히 ‘좋은 습관’을 쌓는 일에 집중하지만, 정작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내면을 가득 채운 낡은 습관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버림의 과정’을 신앙 여정에서 성찰하게 합니다.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과 행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중 대부분은 의식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습관으로 굳어져있지요.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익숙한 반복의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무심코 반복하는 행
책방에서
김주영
420호 (2025년 11월호)
-
책방을 운영한 지 8년이 다 돼간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예전에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이를테면, 규모가 작은 책방은 출판사를 통해 책을 직접 공급받을 수 없다. 도서 유통 회사를 이용해야 한다. 내가 이용하는 유통 회사는 선입금한 돈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책을 공급한다. 결제 없이 미리 받아볼 수 없다. 물량도, 금액도 적어서 어쩔 수 없단다. 그리고 주문 도서는 택배로 받을 수밖에 없다.일주일에 몇 번씩 책을 주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택배 노동자와 자주 만난다. 물량이 많아 배달이 늦어질 때는 저녁
책방에서
김신일
420호 (2025년 11월호)
-
10월이 되면 지난 1년을 돌아봅니다. 2020년 10월에 책방 문을 열었거든요. 벌써 5년이라니. 작년 한 해는 어땠지? 나름 자평과 분석을 합니다. 넉넉하고 후한 마음으로요. 셀프 칭찬 없이는 자영업 못 하죠.성적이 어떠냐고요? 당연히 대만족. 스스로에게 상당히 관대합니다! 낯선 도전을 무사히 마쳤고, 꽁꽁 얼어붙은 시기도 잘 넘긴 거 같아요. 새로운 인연과 우정을 나눴고, 친구들과 더 깊어졌죠. 텃밭에 심은 토마토·가지·호박·상추가 잘 자라 밥상은 풍성했고, 정원도 계절마다 꽃과 잎을 피우며 기쁨을 안겨줬어요. 무엇보다 망하지
책방에서
이수진·김희송
419호 (2025년 10월호)
-
인간의 마음은 쉽게 흔들립니다. 의도가 선해도 습관이 그 길을 막아설 때도 있고, 무심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지요. 이유 없는 불안과 걱정은 우리를 현재에서 멀어지게 하며,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삶 전체의 무게를 바꾸어 놓습니다.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이러한 인간의 내면을 독창적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이 책은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있지요. 얼핏 풍자소설 같지만, 인간의 연약함과 복잡한 내면, 인간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책방에서
김주영
419호 (2025년 10월호)
-
책방을 운영하다가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작은 동네책방이나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다 보면, 서로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중 하나가 ‘어떻게 책방을 잘 꾸려가면서 의미 있는 독서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이다.책 읽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연결돼있다. 작가, 디자이너, 편집자, 인쇄소, 유통업자, 그리고 책방지기와 독자. 모두 연결돼 독서 생태계를 이룬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 여기에 대한 고민은 책방지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책방에서
김신일
419호 (2025년 10월호)
-
죽음을 실감하는 시간이 잦습니다. 생기 넘치는 청춘의 시절이 훌쩍 지나기도 했고, 황혼을 보내는 어르신들과 이웃하며 지내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오가며 인사를 나눴던 이웃의 부고를 벌써 다섯 번이나 들었습니다.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죽음’이라는 페이지를 자연스럽게 건너뛰었던 것 같아요. 죽음을 이긴 부활과, 고통과 눈물이 사라진 영원한 세계는 종종 묵상했지만요. 아이러니지요.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고, 죽어야 영원이 열릴 텐데요.이 책은 제목처럼 유언이 되었습니다. 공동 저자 중 한
책방에서
이수진·김희송
418호 (2025년 09월호)
-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어느 자리에서 누구와 나누느냐는 그 사람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 책은 바로 ‘식탁’이라는 렌즈를 통해 복음서 속 예수님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저자는 성경 속 식탁 장면들을 단순한 배경이나 부수적인 사건으로 보지 않고, 예수님의 구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으로 봅니다. 그 식탁 위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환대와 포용, 회복과 부르심이 담겨있다고 이야기합니다.예수의 공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그분은 말씀만 전하신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자리’에서도 복음을 선포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세리와 죄인,
책방에서
김주영
418호 (2025년 09월호)
-
가까운책방은 2017년 11월 문을 열었다. 코로나 때 잠시 닫았다가 올해 4월 새로운 곳으로 이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주택가 한복판, 하루 종일 조용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가끔 옆에 있는 유명한 카페를 찾은 손님이 들른다. 손님이 별로 없다고 빈둥거릴 수는 없다. 신간도 찾아보고 입고된 책도 정리하고 포스에 입력해야 한다. 일은 끝이 없다.책방은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저자 초청 북토크도 하고, 작은 공연, 독서모임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 된다. 지역에 의미
책방에서
김신일
418호 (2025년 09월호)
-
소설은 2011년 볼리비아 메노파 공동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잔혹한 현실이자, 명료한 은유이지요. 공동체 여자들은 읽을 줄 모릅니다. 교육 기회는 남자들에게만 주어집니다. 당연히 의사 결정권은 남자들이 쥐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공동체 살림 전반과 육아를 담당하지만, 남자들은 농사를 짓고 물건(여성들이 만든 바느질 제품)을 내다 파는 경제활동을 수행합니다.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 여자들이 잠든 사이, 남자들은 동물용 마취제를 써서 여자들의 의식을 잃게 하고 강간합니다. 아침에 일어난 여자들이 피를 흘리고 몸에 멍이 들어 고통을
책방에서
이수진·김희송
417호 (2025년 08월호)
-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여전히’였습니다. 왜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가’로 끝내지 않고, ‘여전히’(noch)라는 말을 제목에 붙였을까요?이 제목은 한때 삶을 사랑하던 마음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지 되묻습니다. 우리는 예전처럼 삶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어느 순간 그 마음을 잃어버려 무심코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저자는 오늘날 점점 희미해지는 사랑의 감각과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고, 삶을 ‘경험’이 아닌 ‘성과’로 환산하며
책방에서
김주영
417호 (2025년 08월호)
-
2018년 부천으로 이사 와서 역곡동 용서점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동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책방은 용서점뿐이었습니다. 현재 부천은 동네책방 다섯 곳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서로 기대며 문을 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동네책방은 존재 이유를 의심받는 현실입니다.“요즘 누가 책을 사나요?” “책방이 없어도 책이나 다른 콘텐츠를 읽는 건 문제없지 않아요?” “먹고살 수 있나요?” 책방 운영 9년 차. 도움을 주기보다 힘 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여전히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방 문을 여는 이들은 각자 이유가 있지
책방에서
박용희
417호 (2025년 08월호)
-
장마철이 되면 다른 때보다 예민해집니다. 하루하루 매출이 필요한 자영업자이니, 비를 뚫고 손님들이 오실까 걱정이 앞서죠. 그뿐만은 아닙니다. 2020년에 겪은 집중호우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래요.그해 8월 1일, 호우경보가 발효되고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어요. 일주일 내내 이어진 비는 산책길 하천을 거대한 물줄기로 바꾸어 주변을 쓸어버렸지요. 인근 대피소로 피신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집을 두고 갈 수 없어 최대한 버텨보기로 했어요. 물이 새기 시작했고, 전기차단기가 계속 내려갔습니다. 차오르는 물을 창고 앞에
책방에서
이수진·김희송
416호 (2025년 07월호)
-
요즘 바쁜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쉼’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매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달리고,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다 보면, 잠시 멈추는 것조차 불안하게 여겨질 때가 있죠. 일과 성취로 가치를 평가받는 세상에서 쉼은 때로 사치처럼, 심지어 뒤처지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문득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잘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이 질문에 답하는 책, 애덤 마브리의 《잘 쉰다는 것》은 교회 동생에게 소개받아 알게 되었고, 인상 깊게 읽은 후 꼭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책방에도 비치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책방에서
김주영
416호 (2025년 07월호)
-
용서점의 시작은 헌책방이었습니다. 책 관련 일을 하는 지인이 꽤 있었는데, 이들 중 ‘소장파’ 비율이 적지 않다는 걸 깨닫고 시작한 일이었지요. 읽힐 줄 알고 기대하며 서가에 들어갔다가 끝내 펼쳐지지 못하는 책들을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습니다. 내 책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깝고 책에게 미안했던지. 책을 모은다는 소식을 알리고 두 달 만에 용서점 서가는 만 권의 책으로 가득 찼습니다.수년 만에 다시 용서점이 책을 모은다는 글을 SNS에 올렸습니다. 용서점의 세 번째 공간을 어떻게 꾸려갈까 고민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책방에서
박용희
416호 (2025년 07월호)
-
거의 매일 폭죽 소리 ‘같은’ 파열음을 듣습니다. 인근 사격훈련장에서 나는 소리지요. 책방 앞 군부대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아침 점호 방송을 하고요. 점심시간이면 군가가 흘러나와요. 접경지역에서는 탱크와 장갑차, 군용차량에 둘러싸여 운전하는 일이 일상이라, 가끔 착각도 합니다. 이곳은 거대한 병영인가? 삼삼오오 앳된 얼굴의 용사들이 수시로 보이고, 체력 단련 중인 직업군인들과 마주치며, 충성마트에서 장 보는 이웃과 군 마트에 나온 신상이 무엇인지 대화해요. 대한민국은 휴전 중인 분단국가입니다.전쟁과 폭력의 소식이 계속 전해지는 세상
책방에서
이수진·김희송
415호 (2025년 06월호)
-
“집사님! 이 책 다섯 권을 제가 구입할 테니 준비해주세요. 그리고 지금 마음이 지치거나 힘드신 분들에게 그 책을 전해주세요.”이미 오래전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전했던 《연탄길》의 저자가 쓴 이 책을 진열대에서 발견한 목사님 한 분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집사님! 편찮으시던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우울증이 심하게 온 동생에게 이 책을 보내주세요. 저도 위로해주고 싶어요.” 저에게서 이 책을 전달받은 분께서 다시 누군가에게 자신이 받은 위로를 전하고자 하십니다.‘복음’에 관한 지식과 가르침이 많아진 시대, 서점에서 가만히 이용객들
책방에서
이동식
415호 (2025년 06월호)
-
용서점이 문을 연 후 9년째를 맞았습니다.역곡동 시절에는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방문했고, 특히 목회자분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카페 교회, 도서관 교회에 이어 ‘책방 교회’ 모델로 참고하려던 분들이었지요. 책방에서 이웃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드리려 애썼는데, 정작 용서점 자체가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돌파구를 찾아 계속 두드리는 형편입니다.지난달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찾아온 동아리 덕분에 누린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정작 원미동 이웃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고, 불안하기만 한 정치·경제
책방에서
박용희
415호 (2025년 06월호)
-
이 책에 관심이 생긴 건 독특한 저자 소개 때문이었어요. “최근엔 스탠드업 코미디에 빠져 ‘서촌 코미디클럽’을 차렸지만, 남을 웃기기보단 자신이 웃는 거에 관심이 많다.” 남을 웃기는 게 어디 쉽나요. 잘 웃는 것 역시 만만치 않죠. 저자는 이 어려운 두 가지에 모두 관심이 있다네요. 분명 재밌는 사람이 쓴 재밌는 책일 거라는 기대를 품고 책장을 펼쳤습니다.책은, 예상과 달랐어요. 배꼽 빠지는 개그 에피소드로 채워진 산문집일 줄 알았는데요. 인터뷰집이었어요. 그것도 일상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모았죠. 이 책을
책방에서
이수진·김희송
414호 (2025년 05월호)
-
수많은 저자 가운데 독자의 삶에 고착된 생각의 틀을 바꾸는 저자는 몇 명이나 있을까요? 제게는 그중 한 명이 이 책을 쓴 조희선 작가였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홍성사), 《몸을 돌아보는 시간》(사자와어린양)에 이어 《나이가 하는 일》을 읽어보면, 세 권의 에세이가 점점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세상에는 읽을 만한 에세이가 참 많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그 책들을 읽다 보면 ‘도대체 왜 읽어야 하지?’ 의문이 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이가 하는 일》도 그럴지 모릅니다. 평범한 가족 이야기와 여러 책 이야기,
책방에서
이동식
414호 (2025년 0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