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호 책방에서]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김영사)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여전히’였습니다. 왜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가’로 끝내지 않고, ‘여전히’(noch)라는 말을 제목에 붙였을까요?
이 제목은 한때 삶을 사랑하던 마음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지 되묻습니다. 우리는 예전처럼 삶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어느 순간 그 마음을 잃어버려 무심코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자는 오늘날 점점 희미해지는 사랑의 감각과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고, 삶을 ‘경험’이 아닌 ‘성과’로 환산하며 살아가는 현실에, 우리가 점점 바빠지고, 더 많이 소비하며, 그만큼 더 불안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는지, 얼마나 바쁘고 일을 잘해내는지를 통해 나 자신을 드러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소유’로 증명하려 하지요. 그런 방식으로 채워진 삶은 공허할 뿐입니다. 잠깐의 만족감 뒤엔 더 깊은 불안과 외로움이 남고, 결국 우리는 자신을 잃어가겠죠. 사랑의 힘이 희미해진 자리를 불안과 비교, 경쟁이 대신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요.
최근 책방에서 진행한 온유북클럽에서 나눈 질문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은 가진 것, 직업·학력·지위·성취 등으로 자신을 설명하곤 하는데요. 그런 걸 다 제외하면, 나는 나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다른 분이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아닌 ‘사랑하는 것’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나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목적으로 보고, 성과보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삶을 처음처럼 사랑하는 태도는 멀리 있지 않아요. 어린아이가 세상을 처음 마주할 때처럼,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작은 만남에도 설레며,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삶이 주는 크고 작은 선물에 ‘여전히’ 놀라고, 감탄하며, 고마워하는 것.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는 태도이겠죠.
그렇게 회복된 사랑은 ‘환대’로 이어집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태도.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도 사랑하게 되고, 삶에 대한 사랑은 이웃을 향한 따듯한 시선으로 구체화됩니다. 타인을 경쟁자가 아닌 존재 자체로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 진정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있나요? 사랑은 단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다시, 처음부터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김주영
경북 구미 금리단길에서 기독교 문화공간 ‘책방 온유’를 운영한다. 이 작은 공간이 지역사회와 교회, 교회와 교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 고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문을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