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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차례 기고(9월호 ‘21세기 교회 위기의 근원’, 10월호 ‘들음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이어지는 글이다.앞에서 말한 대로 이스라엘과 교회의 독특함은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는 데 있다. 하늘과 땅이 맨 처음 열리는 이야기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이야기까지 듣고, 그 말씀에 근거해 살았다는 데 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저들을 향해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왕하 17:14, 40, 느 9:16, 사 48:18, 렘 3:13, 29:19, 겔 12:2, 단 9:6, 호 9:17) 이스라엘과 교회는
말씀과 따름
정병선
408호 (202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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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2024년 9월·406호 ‘21세기 교회 위기의 근원’)에 이어지는 글이다앞서 이스라엘과 교회가 불의의 길로 추락한 것은 듣지 않음 때문이라 했다. 성경은 한술 더 떠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죽음의 나락에 떨어진 것도 듣지 않음 때문이라 한다(창 2-3장). 우리네 일상의 갈등과 고통도 따져보면 다 듣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부부간 갈등부터 이해관계의 대립까지, 근원에는 반드시 듣지 않음이 있다.대체 들음이 무엇이기에, 듣지 않음으로 저리 많은 불의와 배도가 벌어지는 걸까? 들음이 단지 소리 듣기라면 저런 일들이 벌어지지는
말씀과 따름
정병선
407호 (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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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란 단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읽는 사람, 성경을 통해 나를 읽는 사람, 성경을 통해 세계를 읽는 사람, 성경을 통해 역사를 읽는 사람이다. 또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사람이자 교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통해 교회를 읽고 묻는 사람이어야 한다.단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읽고 묻는 사람은 하나같이 말한다. 교회가 위기라고, 그것도 매우 심각한 위기라고, 기독교를 ‘안 믿는 시대’를 지나 ‘혐오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나도 그리
말씀과 따름
정병선
406호 (202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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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 20일 열린 ‘2024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 기조 강의로 발표한 내용을 수정했다. 지난 호에 이어지는 글이다.염려하지 마라25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너희 목숨(영혼, 정신)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또 너희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목숨은 음식보다 더 중요하고, 몸은 옷보다 더 중요하지 않으냐. 26하늘의 새들을 잘 살펴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으지도 않지만,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소중하지 않겠느
말씀과 따름
노종문
402호 (202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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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 20일 열린 ‘2024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 기조 강의로 발표한 내용을 수정했다. 다음 호까지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재한다.산상수훈(산 위에서 주신 가르침)은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모음을 일컫는 별칭이다.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산상수훈이 예수님 말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주장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자 하면 이 말씀들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혼자서 읽기가 쉽지 않다. 본문 의 성격이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여느 글들과 근본적
말씀과 따름
노종문
401호 (2024년 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