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야기 들으면 좀 재밌을 건데.” 태운1) 씨가 말했다. 타고난 듯한 그 유머러스함에 긴장이 좀 풀렸다. 환자복 위에 허리보호대까지 착용한 상태에도 그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대구2)에서 살고 있는 빌라의 집단 전세사기 피해가 방송되고, 직장에서 계약 종료를 맞고, 피해자대책위 활동과 생업을 병행하려 얼마간 다시 배달 일을 하다가 불법 유턴을 하던 차에 교통사고를 당한 상황이었다. 흉추 골절 등으로 전치 12주 부상을 입었고, 입원 때문에 긴급 생활비 지원이 끊겼다.3)배달은 태운 씨에게 일의 시작점이자 가장 오래된 경력이다.
현수1) 씨가 한국 사회에서 성인이 되고 가장 오래 산 집은 고시원이다. 서울 신림동. 집 기억이 시작되는 공간은 서울 포이동2), 아버지 사업이 잘되면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 중계동 아파트로 이사했고, ‘학세권’으로 유명한 중계동 ‘은행사거리’ 학원을 다니며 그룹 과외도 받았었다. 1990년대 초중반, 부족함 없던 어린이였다. 풍족한 날이 지속되지 못한 건 “IMF가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사업장은 외환 위기가 터진 이후 치솟는 금리를 버티지 못했다. 외가·친가랄 것 없이 가족 빚까지 쌓인 아버지는 결국 1년 뒤 도산했
전세사기 피해자 인터뷰를 시작하며1)2021년부터 터진 전세사기 문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된 사례만 2만여 건, 그중 70% 이상이 20-30대 청년이다. ‘너무 비싼 집값, 낮은 사회주택 보급율’이라는 삭막한 현실에서 청년들은 비교적 낮은 가격대로 주거할 집을 찾고, 주로 빌라나 원룸(다세대·연립주택)으로 독립 가구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정부가 보증금 대출이자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그간 청년 주거를 지원해온 사실은 전세사기의 주 타깃이 청년인 현실과 무관할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