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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위에 임하는 말씀“성경에도 없는 교회력을 왜 지키나요?” 교회력에 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자주 묻는 말 중 하나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어느 신학자는 성서는 기록된 말씀이고, 설교는 선포된 말씀이라 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보태서, 교회력은 시간에 새겨진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대답에 확신이 있다. 부활절은 내 주장의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된다. 부활절기는 부활주일에서 시작하여 성령강림절로 맺는다. 이 기간은 성서가 전하는 이야기와 일치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40일간 머무시고는
교회력, 계절의 독서
이광희
379호 (202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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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 무술의 실전성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장풍이라도 쏘는 듯 문하생을 가볍게 넘어뜨리는 고수들이지만, 링에 올라 아마추어 종합격투기 선수 앞에 서면 그럴싸한 자세 한번 못 잡고 두들겨 맞는다. 깨끗하게 패배라도 인정하면 좋으련만, 이런저런 변명만 일삼는 모습이 무도인답지 않아 조롱과 비판이 쏟아진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교회의 어두운 면이 떠올랐다. 교회는 오랫동안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인 성육신과 부활에 대한 장엄한 선포를 이어왔다. 문파(교단)마다 전수되어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례들도 있으며
교회력, 계절의 독서
이광희
377호 (202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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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게 결말을 알게 되어 이야기의 감동을 망치는 것을 ‘스포일러’라고 한다. 결말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감동이 파괴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결말을 알아버림으로 이야기 전개 과정을 온전히 누릴 기회를 잃었다는 데 있다. 오히려 빼앗겨 망쳐진 것은 결말이 아닌 ‘과정’이다.우리는 예수께서 죽는다는 것을 안다. 부활한다는 것도 안다. 우리 신앙고백에는 결말이 노출되어있다. 물론 결말을 알든 모르든 새롭게 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 신앙고백이 스포일러가 되어 우리가 예수의 고난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도록 이야기를 망치기
교회력, 계절의 독서
이광희
375호 (202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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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망치는 중’인 〈쇼미더머니〉가 막을 내렸다. 래퍼들의 삶이 담긴 노래가 주는 감동이 여전히 남아있다. 생각 없이 훅(Hook, 반복되는 후렴구)을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보면, 나에게 〈쇼미더머니〉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훅은 여러 기능을 한다. 쉴 새 없이 가사를 뱉던 래퍼가 잠시 쉬는 구간이기도 하지만, 잘 만들어진 훅은 노래 분위기뿐만 아니라 전체 가사 방향을 이끈다. 청중의 호응과 참여를 유도하기도 하고, 짧은 몇 문장으로 노래를 뇌리에 남긴다. 이처럼 훅은 힙합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예수님의 삶
교회력, 계절의 독서
이광희
374호 (202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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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다짐새해가 시작된 지도 한 달, 새해와 함께 힘차게 다짐했던 일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도대체 몇 번을 더 속아야 새해라는 이름에 ‘영어 마스터’나 ‘다이어트’ 같은 헛된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있을까?과월호를 펼쳤나 싶어 갸우뚱할지 모르겠지만, 10월호가 맞다. 교회력 이야기다. 내가 속한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삼위일체력’이라는 독특한 교회력을 따르는데, 이 달력은 9월 ‘창조절’로 한 해를 시작한다. 통상적인 교회력(그리스도력 혹은 통상축제력)도 12월 대림절에 시작하여 세상의 시간보다 한 달이 빠른데, 삼위일체력의 시작
교회력, 계절의 독서
이광희
371호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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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을 지킨다는 것교회력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력 주제에 맞춘 본문·설교·찬양을 예배에 포함하기, 절기색으로 스톨과 강단을 장식하기, 전통 절기 예식이나 특별 행사, 정해진 기도문 읽기 등이 떠오른다. 이런 것들이 교회력 계절에 따라 바뀌는 풍경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적고 보니 교회력이란 주일예배 기획에 도움을 주는, 예배를 준비하는 목회자를 위한 것이지, 일반 교인의 평범한 삶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liturgy)이라는 말이 ‘일하다’(ergon)와 ‘사람들’(laos)로 이루어진
교회력, 계절의 독서
이광희
369호 (2021년 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