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호 교회력, 계절의 독서] 십자가로 천천히 걸어가는 두 권의 책

원치 않게 결말을 알게 되어 이야기의 감동을 망치는 것을 ‘스포일러’라고 한다. 결말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감동이 파괴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결말을 알아버림으로 이야기 전개 과정을 온전히 누릴 기회를 잃었다는 데 있다. 오히려 빼앗겨 망쳐진 것은 결말이 아닌 ‘과정’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는다는 것을 안다. 부활한다는 것도 안다. 우리 신앙고백에는 결말이 노출되어있다. 물론 결말을 알든 모르든 새롭게 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 신앙고백이 스포일러가 되어 우리가 예수의 고난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도록 이야기를 망치기도 한다. 사순절은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는 절기다. 예수의 장례를 치르는 기간이 아니다. 이 40일은 주님과 같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기간이다. 만약 우리가 사순절의 감동을 잃어버렸다면, 결론으로 이야기를 망쳐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순절 스포일러를 막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순절을 준비하는 시간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정교회, 이른바 동방교회를 향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세계 교회 절반을 미지의 상태로 두었다. 가톨릭과 개신교, 서방 교회와의 상호작용 및 공통의 유산을 생각해보면, 세계 교회에서 동방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 낯선 전통으로부터 많은 점을 배울 수 있는데, 그중 으뜸은 단연 ‘전례’다. 알렉산더 슈메만은 유구한 정교회 전통에서 길어 올린 전례신학을 세계에 소개한 위대한 전례신학자다. 슈메만이 쓴 《대 사순절》(정교회출판사)은 사순절에 관한 간단한 해설서지만,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동방교회 전례신학과 그들이 시간에 기대어 자신의 영성을 다듬어가는 풍경을 엿보게 한다. 서방 교회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사순절을 시작하여 부활절을 향한 40일 여정을 이어간다. 반면 정교회는 그 여정에 앞서, 더 일찍 채비한다. 사순절 3주 전부터 ‘뜨리오디온’(Triodion)이라는, 사순절을 준비하는 기간을 보낸다. 준비 기간이 마련된 이유는 우리의 집중력 부재와 세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교회는 우리가 하나의 영적 혹은 정신적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급격하게 변화되고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대 사순절에 필요한 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교회는 우리의 주의를 이 기간의 중요성에 주목하도록 이끌어주고 그것의 의미를 묵상하도록 초대한다.”(26쪽)

‘뜨리오디온’에는 3주간의 사순절 준비 기간 외에 다른 뜻도 있다. 바로 ‘사순절 준비 기간-사순절 기간-성 대주간’ 동안 사용하는 예식서를 가리킨다. 이 기간 조과(아침기도)에 평소보다 적은 세 개(Tri, ‘트리’)의 ‘오디’(송시)가 포함된 ‘까논’(성가)이 불리기 때문이다. 이 준비 기간에는 삭개오, 세리, 바리새파 사람들, 탕자와 같은 성서 속 인물들을 만난다. 사순절 기간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성 그레고리오스 빨라마스, 시나이의 성 요한, 성 마리아 에집트인 수녀가 우리의 영적 여정에 도반이 되어준다. 마침내 마지막 성 대주간에는 우리를 깨우는 주님의 가르침, 향유를 부은 여인, 세족, 최후의 식탁, 마지막 기도, 유다의 배반, 십자가, 두 강도, 주님의 장례 등 주님의 마지막 장면을 확대하여 들려준다. 슈메만의 책은 이 긴 여정에서 듣는 기도와 말씀의 지혜로운 길잡이가 되어준다.

정교회는 부활을 향하는 사순절 여정 속에서 금식·절제·전례·기도 등 종교적 실천을 풍부하게 엮어왔지만, 결국 모든 전례에 주어진 숙명과 마찬가지로 이는 ‘삶’과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러한 실천들이 열매를 맺고 이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삶 전체에 의해 지지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것들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고 우리의 실존을 둘로 분열시키지 않는 하나의 ‘삶의 스타일’이 필요하다.”(183쪽) “우리는 양식을 절제함으로써 양식의 감미로움을 재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다시금 배우게 된다. 음악, 오락물들, 피상적인 대화와 만남들을 최소화함으로써 또한 우리는 인간관계들, 인간의 일, 예술의 최종적인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순전히 하느님을 재발견함으로써, 그분께 돌아감으로써, 또 그분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에 귀의함으로써 이 모든 것을 또한 다시 발견하게 된다.”(191-192쪽)

대 사순절을 지키는 일은 종교적 실천에 열심을 내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나 자신과 이 세상, 그리고 하나님을 다시 발견하는 여정, 우리의 모든 것을 다시 발견하는 지난한 여정에 오르는 일이다. 이 여정이 결코 녹록지 않기에, 뜨리오디온은 우리가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섣불리 그 과정을 건너뛰지 않도록 붙들어준다. 물론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우리에게 낯설다. 하지만 사순절에 이토록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식상해진 우리의 사순절을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사순절을 향한 복선들

이제 서방 교회로 눈을 돌려보자. 동방의 뜨리오디온에 비하면 길이는 짧지만, 서방 교회력에도 사순절을 준비하도록 도우며 그 시간에 깊이 머물 수 있는 기획이 있다. 주현일(공현일) 이후 첫 주일(2022.1.9.)은 ‘주님의 수세 주일’이다(2022년 1월·374호 참고). 이후 비축제 기간이 이어지다가 사순절 시작인 재의 수요일(2022.3.2.)을 한 주 앞둔 주일을 ‘산상 변모 주일’(2022.2.27.)로 지킨다. 변모 주일에는 “이는 나의 아들, 내가 사랑하는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1)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이 음성은 이미 주님의 수세 주일에,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채웠던 하늘의 소리다(눅 3:22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주님의 수세 주일과 산상 변모 주일은 주현 후 절기의 시작과 끝으로, 함께 짝을 이룬다. 요단강 세례에서 하늘의 음성을 들었던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받으신다. 또한 변화산에서 하늘의 음성을 들었던 예수께서는 마지막 시험 무대인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신다. 개정공동성서정과(RCL)는 사순절 첫째 주일(2022.3.6.) 복음서 본문을 광야의 시험(눅 4:1-13)으로 제안하며, 사순절과 광야의 시간을 완벽히 포갠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겪었던 40일 싸움은 그분의 삶, 그리고 십자가 길, 더 나아가 우리가 사순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걷고자 하는 여정의 본질을 희미하게 보여준다.

헨리 나우웬은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IVP)을 통해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은 유혹을 ‘상향성’이라고 정의한다. 나우웬이 쓴 대다수 책이 그렇듯,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은 지식 축적을 위한 책도, 그럴싸한 인용을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우리 내면을 휘저어 그동안 가라앉아있던 우리의 욕망을 떠오르게 한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지 35년도 넘은 책이지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2) 안타깝게도 상향성 욕망은 그리 쉽게 물러나지 않고 참 성실하게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 가지 시험에 직면합니다. 상황 부합의 시험, 이목 집중의 시험, 권력 확보의 시험이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시험 모두 우리를 유혹하여 세상의 높아지는 길로 되돌아가게 하여,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잊고 한눈을 팔게 만들게 합니다.”(36쪽)

헨리 나우웬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았던 세 가지 유혹에 주목한다. ‘돌로 빵을 만들라’는 첫 번째 시험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일을 하여 생산성을 기초로 삼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추구하는 유혹이다.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는 두 번째 시험은 눈에 띄고 유명해지는 일을 존재 가치로 여겨 사람들에게 주목받기를 추구하는 유혹이다. ‘모든 나라와 영광을 주겠다’는 세 번째 시험은 힘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믿음 가운데 권력과 욕망을 추구하는 유혹이다. 요약하자면, 예수께서 거절하셨던 유혹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주목을 받으며, 다른 이들보다 우위를 점하여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 상향성의 길이다. 예수께서 오르셨던 십자가의 길과 가장 반대되는 길이다. 십자가는 자신을 버리고 낮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순절에 이를 향한 여정에 나서도록 초대받는다. “우리는 성공, 명성, 영향력을 구가하는 넓은 길을 선택하고픈 유혹을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하향성의 길을 따르도록 부름 받습니다. 또한 점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해 영적 훈련을 하도록 도전받습니다.”(75쪽)

사순절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영적 훈련에 가장 중요한 시기로 여겨져 왔다. 예로부터 예비 신자들의 가장 중요한 세례 준비 기간이기도 했고, 오늘날 역시도 사순절에 진행하는 다양한 영성 훈련이 있다. 대부분의 영적 훈련이 공통으로 요구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정직한 시간이다. 영적 훈련에 초단기·속성·월반·스킵 같은 말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사순절 시작과 함께 단번에 십자가로 가지 않고 천천히 돌아가는 이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욕망과 치열하게 싸우고 우리 자신을 비우는 지난하고 괴로운 여정을 통과한 후 마지막에야 비로소 십자가도, 부활도 우리 것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 주

1) 새번역의 각주를 반영한 번역이다.
2) 이 책은 1986년 문고판으로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고, 2003년과 2020년에 잇따른 개정 작업이 있었다.


이광희
그렇게나 교회를 좋아하더니 교회의 일꾼이 되어 ‘덕업일치’를 이루었다. 한신대 학부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팟캐스트 〈모두의 아멘〉과 유튜브 〈예배에 관한 아무 말〉 등 이것저것을 시도하고 있다. 가끔 글도 쓴다. 옮긴 책으로 《내일의 예배》(브랜든선교연구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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