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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초조한 마음으로 나 자신에게 수차례 던진 질문들이 있다.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린 날부터 끝없이 지속된 질문들이다. 다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얽히고설키는 온갖 상황과 관계 속에서,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생생하게 직면하는 문제 앞에서 훨씬 구체적이고 복잡해졌다. 이를테면 30대 후반 여성으로서 나는 뭐하는 사람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제도교회와 기관에 소속된 목회자로서, 단순 교육 콘텐츠 제작자 및 제공자가 아니라면 나는 뭐하는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이
팬데믹 시대의 신학서 읽기
이민희
363호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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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중, 1935년 완성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다리〉라는 작품이 있다. 회화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충실히 따른 그림으로, 높은 산과 폭넓게 흐르는 강, 이를 둘러싼 뿌연 물안개가 낀 풍경은 한국의 여느 산자락 경치를 보는 듯 전반적으로 익숙하다. 문제는 그림 전면에 등장한 다리다. 강을 가로지르는 실제 다리의 중간은 끊어져 있는데, 강물에 비친 다리의 모습은 끝까지 이어져 있다. 의식이 언제나 실재를 반영할 것이란 전제는 어쩌면 착각일 수 있음을, 실재와 의식에는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해
팬데믹 시대의 신학서 읽기
이민희
361호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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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 미묘하고 신기한 인간의 삶에 대해 영국작가 존 파울즈는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열린책들)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인생이란 결코 하나의 상징이 아니며, 수수께끼 놀이에서 한번 틀렸다고 해서 끝장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하나의 얼굴로만 사는 것도 아니며, 주사위를 한 번 던져서 원하는 눈이 나오지 않았다 해도 체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깨닫기 시작했다. 도시의 냉혹한 심장으로 끌려 들어간 인생이 아무리 불충분하고 덧없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인생을 견뎌 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강물은 흘
팬데믹 시대의 신학서 읽기
이민희
360호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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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이런 책을 쓰고 싶었다.” 거장 야로슬라프 펠리칸(1923-2006)을 알지 못해도 이 문장을 읽으면 저자가 지녔던 깊은 바람과 이를 성취해낸 뿌듯함이 느껴져 설레게 된다. 동시에 엄청난 노력이 응집된 책 한 권을 읽게 되리란 기대가 솟는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2,000년간 일반 문화에 영향을 미친 예수에 대한 이야기, 인류가 필요에 따라 빚은 예수상(image) 이야기다. 문화사가로 예수상 살핀 야로슬라프 펠리칸신약성서는 예수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 같다고 말한다. 이
팬데믹 시대의 신학서 읽기
이민희
359호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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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5일, 승무원과 승객 155명을 태운 뉴욕발 여객기에 갑자기 버드 스트라이크(운항 중인 항공기에 조류 등이 충돌하여 생기는 항공사고)가 발생했다. 양쪽 엔진은 동시에 고장 났고 동력을 상실한 여객기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기장인 체슬리 설렌버거, 호출명 ‘설리’는 오랜 경험과 직관으로 재빠르게 비상 착수(着水)를 결정해 뉴욕 허드슨 강으로 진입했다. 강물이 충격을 흡수할 것이고, 주변 페리와 보트가 그들을 목격해 구조할 것이며, 착수에 실패해 화재가 나더라도 지상 착륙보다 그 피해가 현저히 작을 것이라 판단했기
팬데믹 시대의 신학서 읽기
이민희
358호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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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겪는 가장 현저한 변화는 아무래도 비대면 환경이다. 살갗에 와 닿을 만큼 몸소 경험하는 현상이 비대면이라니 이보다 모순은 없어 뵌다. 전염병 창궐 전부터 무인화 사회에 진입했음에도 이를 유독 크게 인식하는 이유는 소통 방식이 빠르게 바뀐 탓이다. 게다가, 그동안의 많은 활동은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대면 환경이 새삼 더 당황스럽다. 비언어적 요소까지 담기에는 기술적으로 벅찬 영상 속 이미지, 참 메시지는 감춰진 텍스트의 대화에서 묘한 단절감과 어색함을 매일 느낀다.우리는 다양한 의미를 아무리 부여
팬데믹 시대의 신학서 읽기
이민희
357호 (2020년 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