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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버.지.가 죽었다. 나도 죽었다. 어머니는 졸지에 과부가 되었고, 다섯 남매는 고아가 되었다. 그리고 유리, 방랑하는 나그네가 되었다. 성경에서 가장 불쌍하고 돌봄이 필요한 일차 대상이 저들이 아닌가. 하나님은 과부의 남편(사 54:4-5)이고, 고아의 아버지(시 68:5)이고, 나그네의 보호자(신 10:18-19)이다. 나는 지상의 아비를 잃고, 천상의 아바를 만났다. 그리고 아바의 자녀로 산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건 내가 중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1월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후반부터 줄곧 투병 생활을 하셨다. 간경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417호 (202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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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우리는 교회를 나갈 겁니다. 대신, 그동안 우리가 낸 십일조와 헌금을 돌려주세요.”가만 보니 이번에도 입을 맞추고 왔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하던 집사님들도 침묵한다. 그분들도 나처럼 말대꾸할 가치조차 없어서 가만있는 건지, 아니면 동조한 건지 모르겠다. 그분들의 표정에서 편승 아니면 묵인을 읽었다. 아무튼, 그러고는 대다수가 교회를 떠났다. 나를 그렇게도 힘들게 한 집사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이 반전이었다. 고난의 연대기는 종착지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었다.이 일이 있기 전에 나는 결심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리처드 포스터가 《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416호 (202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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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는 신학 공부하다 죽으면 순교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개죽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학자의 길이 아닌 목사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왜 그랬을까?죽을 만큼, 아니 겨우 죽지 않을 만큼 공부한 끝에 몸도, 마음도, 돈도, 영혼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성경을 펼쳤다. 대학 시절 선배들에게 배운 그 큐티(QT)가 생각난 것이다. 신약성경을 순서대로 하루에 한 장씩 읽고 묵상하기로 했다. 그런데 성경 읽기가 왜 이리도 힘든 건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보다 버거웠다. 좀처럼 읽히지 않았다. 그때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415호 (202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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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학 공부하다 죽으면 순교다.” 이 말은 내내 나의 신학 공부 여정의 모토였다. 나는 죽을 만큼, 그러나 죽지 않을 만큼 공부했다. 이것은 타인과 비교한 결론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신학 공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신학대학원을 선택한 과정부터 말하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처음 염두에 둔 곳은 서울에 있는 두 곳의 유력한 교단 신학대학이었다. 두 학교 모두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이점은 물론, 쟁쟁한 교수진과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있어 학문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대형 교단 소속이어서, 졸업 후 진로도 탄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414호 (202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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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두환의 시대였다. 당시 교회와 운동권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세계관에서 실마리를 잡고, 결국 양쪽에 발을 걸치게 된 것은 전두환 때문이었다. 1980년 광주와 그의 군사독재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하지만, 군대는 자국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했다.대학 1-2학년 때는 어영부영 보내며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 탓에 학점이 그리 좋지 않았다. 2학년 말에는 학과 학생회장이 되었고, 3학년이 되어서는 김동문 선배의 요청으로 동아리연합회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413호 (202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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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야, 서울이다!”순간 우리는 얼어붙었다. 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은 대관령을 지나 서울로 향했다. 우리는 떠들고, 유행가를 부르고, 춤추며 놀았다. 몇 명은 피곤한지 버스 창가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누군가 외쳤다. “야, 서울이다!” 왁자지껄했던 버스 안은 일순 침묵에 잠겼다. 버스 중간에서 춤추던 아이들도 얼른 앉았고, 노래와 대화는 멈췄으며, 자던 녀석들도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아이들은 커튼을 젖히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창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렇게 서울은 내게 동경과 공포가 기묘하게 뒤섞인 도시였다.대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412호 (2025년 0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