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2일 대전의 낮 기온은 영하 12도였다. 이걸 정확히 아는 건 그날 성서대전에서 이태원 특별법 홍보 피케팅을 했기 때문이다. 성서대전 전남식 목사와 성심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는데 10분도 안 돼 온몸이 떨렸다. 추운 만큼 시간도 더디게 흘러 지루함을 달래보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요즘 무슨 책 읽느냐는 질문에 이르렀다. 전 목사는 며칠 전 《고도를 기다리며》(민음사)를 다시 읽었다며,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마치 자기 같다고 했다. 그날 나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었다. 이 작품은 이렇게 끝
은식기를 훔친 장 발장에게 은촛대까지 내어준 미리엘 신부 이야기는 소설이 만들어낸 가장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후 장 발장에게 중요한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났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다시 감옥에 갈 위기를 모면하고 신부와 헤어진 장 발장은 신부가 베풀어준 자비에 감동하면서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분노와 불안을 느낀다. 거칠고 억울하게 살아온 장 발장에게 인생은 싸움터고 증오는 무기였다. 장 발장은 갈등했다. 미리엘 신부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인 증오심을 버려야 한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열린책들)에 나오는 조시마 장로는 러시아정교회 신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한 여인이 조시마 장로를 찾아와 죄를 고백한다. 그녀는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이 병들어 눕자 그가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괴롭힘당할 것이란 두려움에 ‘어떤 일’을 했다. (아마 병든 남편이 죽음에 이르도록 방조했던 것 같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영혼을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조시마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진실로 회개하면서도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할 그런 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영화로도 만들어진 《노예 12년》(열린책들)은 미국 남부에서 12년 동안 노예로 생활했던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이다. 이 책에는 주일마다 노예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는 백인 주인이 나오는데 어느 주일 노예들을 불러 모아 누가복음 12:47을 읽는다. (누가복음을 몇 번 읽었으면서도 있는 줄도 몰랐던 구절이다.)“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그는 이 구절을 읽어주며 이렇게 말한다.주의하지 않는 깜둥이들, 자기 주인 나리에게 순종하지 않는 깜둥이들, 그런 깜둥이들은 매를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