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호 이한주의 책갈피]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165쪽)
인간은 자기 인생을 선별하고 왜곡해서 실제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인생 이야기보다 더 쉽게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낼 수 있는 것이 자기 인생과 관련된 하나님의 이야기다. 하나님은 그런 이야기에 제동을 걸지 않으시고, 직접 거짓을 폭로하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반기를 들려는 마음 없이 아멘과 할렐루야로 응답한다. 목사로 살아온 날이 길어지고, 목회가 어려울수록 하나님 이름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꾸며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유혹이 커진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미국의 작가 매릴린 로빈슨은 40년 동안 단 다섯 편의 장편소설만 발표했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로 꼽힌다. 그중 네 편이 ‘길리아드’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목회하는 존 에임스 목사와 주변 사람들 이야기인데, 작가는 이 연작소설들을 통해 신앙과 인생의 신비를 탐구한다. 연작 중 3부에 해당하는 《라일라》(은행나무)에서 에임스 목사의 젊은 아내인 라일라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하다. 그녀에게 소중했던 이들이 대부분 종교 없이 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라일라는 이 문제를 남편에게 물어보지만, 에임스 목사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라일라가 “당신은 목사치고는 설명을 잘 못 하네요”라고 말하자, 존 에임스 목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당신이 실망했다면 그것도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에게 설명하려다 보면 내가 믿지도 않는 말을 하게 될 텐데.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난 다른 무엇보다 그게 가장 두려운 것 같아요. 난 정말 목사는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종교에 관해선. (181쪽)
작년 봄에 뜻밖의 돈이 생겼다. 우리 교회를 응원하는 어떤 분이 예배당 리모델링에 쓰라고 꽤 큰 금액을 헌금하신 것이다. 헌금을 받고 보니 다른 욕심이 생겼다. 리모델링에 필요한 자금을 보내달라 기도하지 않았지만, 이 헌금을 기도의 응답으로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헌금이 아니라, 기도 응답으로 받은 헌금이라고 하면 얼마나 은혜로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