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호 이한주의 책갈피]

블라디미르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115쪽)

두 사람은 기다렸던 고도를 만나지도,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지도 못한다. 기다리는 일에 지쳐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 하겠다’ 투덜대고, ‘내일 목이나 매자’ 절망하다, ‘이젠 그만 가자’ 했지만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을까? 혼자였으면 일찌감치 그 자리를 떠났을 텐데 둘이어서, 함께 기다렸던 옆 사람이 있어서 떠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였으면 그만두었을 일을 옆 사람 때문에 계속한다. 혼자였으면 그 추운 날 피케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했더라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끝내고 들어갔을 것이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약속한 시간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옆에서 함께 떨어준 사람 때문이다. 함께 기다리는 사람은 내가 떠나지 않게 지켜주는 버팀목이다. 하지만 고도가 끝까지 오지 않는다면, 만들어진 법이 실행되지도 못하고 폐기된다면, 함께 기다리며 견뎠던 그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호텔 니약 따〉에는 노량진에서 함께 고시를 준비하다 헤어진 연인이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저쪽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초조해진 서윤이 황급히 변명하려는 찰나 경민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277쪽)

작년 12월 22일 대전의 낮 기온은 영하 12도였다. 이걸 정확히 아는 건 그날 성서대전에서 이태원 특별법 홍보 피케팅을 했기 때문이다. 성서대전 전남식 목사와 성심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는데 10분도 안 돼 온몸이 떨렸다. 추운 만큼 시간도 더디게 흘러 지루함을 달래보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요즘 무슨 책 읽느냐는 질문에 이르렀다. 전 목사는 며칠 전 《고도를 기다리며》(민음사)를 다시 읽었다며,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마치 자기 같다고 했다. 그날 나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었다. 이 작품은 이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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