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호 책방에서] 그레이스 M. 조, 《전쟁 같은 맛》(글항아리)

전쟁 같은 맛 | 그레이스 M. 조 지음 |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2,000원<br>
전쟁 같은 맛 | 그레이스 M. 조 지음 |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2,000원

거의 매일 폭죽 소리 ‘같은’ 파열음을 듣습니다. 인근 사격훈련장에서 나는 소리지요. 책방 앞 군부대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아침 점호 방송을 하고요. 점심시간이면 군가가 흘러나와요. 접경지역에서는 탱크와 장갑차, 군용차량에 둘러싸여 운전하는 일이 일상이라, 가끔 착각도 합니다. 이곳은 거대한 병영인가? 삼삼오오 앳된 얼굴의 용사들이 수시로 보이고, 체력 단련 중인 직업군인들과 마주치며, 충성마트에서 장 보는 이웃과 군 마트에 나온 신상이 무엇인지 대화해요. 대한민국은 휴전 중인 분단국가입니다.

전쟁과 폭력의 소식이 계속 전해지는 세상에서, 저자는 애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미 사회가 전쟁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하는데요. 문장 하나가 아프게 다가옵니다. “어머니의 삶을 애도하지 못하게 한 세력은 어머니를 죽인 세력과 동일하다.”

강제징용, 한국전쟁과 분단, 전후 기지촌 형성과 여성 노동자 유입, 이민 결혼과 한인 디아스포라까지. 저자의 엄마 ‘군자’는 굴곡진 전쟁의 시간을 통과해, 매우 보수적이며 인종차별과 이민족 혐오가 극심한 워싱턴주 셔헤일리스에 정착합니다. 군자는 꿋꿋했습니다. 아메리칸드림, 그 반짝이는 환상을 이루기 위해 불굴의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공동체에 자리 잡아 갔으니까요. 하지만 “미국인이 된 바로 그곳에서” 조현병이 찾아옵니다. 전쟁이라는 폭력이 인격을 관통해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지요.

분유의 맛을 기억하시나요? 군자에게 분유는 고통입니다. 조현병으로 섭식에 어려움을 겪는 엄마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저자의 올케는 분유를 준비합니다. 엄마는 분유에는 손도 대지 않고 이렇게 말해요.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한국전쟁 후 미국은 식량 원조랍시고 분유를 제공했다고 하지요. 그걸 먹은 사람들은 당연히 설사로 고생했고요. 전쟁은 관념이 아니지요. 실제이기에 몸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조현병 발병 이후 요리도 음식도 거부하는 군자의 ‘몸’은 전쟁을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요리하는 주체가 바뀌어 딸은 엄마의 레시피를 물으며 음식을 만들어요. “엄마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과거를 보드랍게 놓아주는 효과가 있음을 이해하게 된 건 생태찌개를 요리하면서부터다. … 당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음식이었고, 그렇기에 가장 위로가 되는 음식이었다.”

전쟁 같은 맛은 여전히 곳곳에 있습니다. 통조림, 부대찌개, 북한 지명을 앞에 붙인 냉면과 만두가 있고, 그 맛을 ‘몸’에 간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전쟁의 맛은 필요 없습니다. 과거를 놓아주고 위로하고 애도하는 요리가 필요할 뿐. 책을 다 읽고 나니, 기지촌에서 군자가 첫 번째 정식 데이트에서 먹은 치즈버거가 당겼습니다. 레시피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이수진·김희송
경기도 연천 조용한 마을에서 작은 빵집이자 동네책방, 그리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인 ‘오늘과내일’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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