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호 책방에서] 이혜미,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톰캣)
용서점이 문을 연 후 9년째를 맞았습니다.
역곡동 시절에는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방문했고, 특히 목회자분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카페 교회, 도서관 교회에 이어 ‘책방 교회’ 모델로 참고하려던 분들이었지요. 책방에서 이웃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드리려 애썼는데, 정작 용서점 자체가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돌파구를 찾아 계속 두드리는 형편입니다.
지난달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찾아온 동아리 덕분에 누린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정작 원미동 이웃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고, 불안하기만 한 정치·경제 상황에서 책방을 방문할 여유를 갖고 사는 이들은 점점 줄어가는 듯했습니다. 부천 동네책방 네트워크 책방지기들과 함께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 다른 책방에 방문하면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져보자 했습니다. 평소 갈 일이 없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책방 두 곳에 다녀온 것이지요.
첫 번째 방문한 곳은 광주시 퇴촌읍에 있는 ‘서행구간’이었습니다. 책방지기에게서 들은 지난 이야기는 일종의 간증이었습니다. 외지인이 와서 연 낯선 공간을 두고, 마을 어른들은 언제 문을 닫을지를 두고 내기를 했답니다. 근근이 버티던 중 집에만 갇혀 살던 한 청소년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서행구간은 그런 청소년들이 숨 쉴 수 있고,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갔습니다. 단순히 비즈니스로만 접근해서는 설명되지 않는 ‘문서 선교’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학기 중은 물론이고 방학 기간에 계절학교를 열고, 캠프를 다녀올 정도로 성장한 서행구간의 이야기는 경기도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한 ‘근근넝넝’도 알고 보니 유명한 그림책방이었습니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책방을 시작하고 거의 매일 올리는 그림책 소개 글 때문입니다. 현재 쌓인 그림책 추천 글은 2,293개입니다. 이혜미 책방지기는 그림책을 잘 모르는 채로 서점을 열었지만, 수천 권을 읽고 소개하며 이제는 그림책 전문가, 그림책 강사가 되었습니다. 몇 달째 언급하고 있는 ‘습관’의 힘을 이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책방 밖에서 발견한 이야기에서 배움을 얻습니다. 용서점 운영에 어떻게 적용해볼까 고민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하루에 잠깐의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글과 영상이 자주 보입니다. 그런 이들은 늘 ‘비법’이 있다고들 자랑하며 강의와 서비스를 팔아 쉽게 돈을 벌곤 합니다. 서행구간의 ‘헌신’, 근근넝넝의 ‘성실’은 그런 비법과 거리가 멉니다. 시간을 들여 하루하루 쌓은 이가 얻을 수 있는 열매니까요. 용서점도 언젠가 그런 열매를 거둘 날을 기대하며 오늘의 씨앗을 심어야겠습니다.
박용희
부천시 원미동에서 동네책방 ‘용서점’을 아지트 삼아, 이웃들과 책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시도해볼 예정이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