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호 내 인생의 한 구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3).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신학생은 아니지만) 신학교를 거쳤다가, 기독교 기반 회사에 다니게 되기까지. 성경 한 구절로 생의 전반을 표현하긴 어렵겠지만, 나는 긴 세월 이 말씀과 인연이라도 맺은 듯이 살았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부모님 아래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왔는데, 아빠가 29년간의 공직 생활을 그만두면서 대학 시절부터 함께 활동한 선교회 분들과 대안학교를 시작했다. 경기도에 살던 우리 가족은 인삼이 유명하다는 생명의 땅 금산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도시와 시골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 경기도에서 12년간 살다 마주한 금산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우리가 이사 간 시점에는 다른 가족들의 집과 기숙사 한 채, 학교 건물만 하나 있었고, 첫해 학생 수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다니엘 12:3은 학교 말씀이었는데, 강당 입구 벽면에 붙어있던 이 구절은 매일 오가며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다니엘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이름이 ‘별무리학교’였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학교에서 종종 이 말씀이 등장하는 때가 언제냐면, 교내 뮤지컬을 한다거나 축제가 열릴 때였다. ‘어떤 의도로 이 말씀을 선정했을까?’ 한 번쯤 의문을 품었을 법도 한데, 졸업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배우고 살아온 신앙은 위기를 맞이했다.

신학대학교를 다녔던 시간이 위기의 시간이었다니. 내겐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충돌하는 가치관, 서로를 정죄하는 문화 속에서 몸을 추스르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사실 다른 대학에 갔다면 겪지 않았을 고통이었겠지만, 신학대학교에는 신학생이 아니어도 성경이나 기독교와 관련된 필수 교양을 듣고 매일같이 채플을 드리며 자연스레 그런 것을 논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물론 관심 없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시기 나는 다니엘서 묵상은 고사하고, 많은 질문을 떠안은 채로 IVF 생활을 하며, ‘회사만큼은 기독교와 관련되지 않은 곳을 가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간절히 바라는 건 어째서 반대로 이뤄지는지, 얼결에 교수님 추천으로 취업한 곳 역시 기독교 기반 회사였다. 비종교인도 모두 소그룹으로 모여 매일 아침 큐티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예배드리는 회사. 그때 알았다. 거리를 두려고 할수록 나는 기독교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자연스레 회사에 물들어가던 어느 날 15주년 행사를 기념하여 대표가 직원들 앞에 나왔는데, 어디서 많이 본 말씀이 적혀있었다.

사실 그때쯤엔 회사에 조금 적응하면서, 스스로 회사에 다니는 이유를 찾던 때였다. 교육 계열 회사이지만 살면서 교육 관련 직무를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 이유를 찾는 것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과제 같았다. 더구나 콘텐츠개발팀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은 대다수가 교원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사회복지 전공인 내가 의미를 찾기란 서울 하늘에서 별 찾기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 눈앞에 보인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라는 말씀을 읽는데, 순간 소름이 돋았다. 회사에 오기까지 기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이 드는 날이었다.

어떤 집단이 표방하는 성경 말씀을 두 번이나 받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에 스스로 의미 부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네이버 생성형 AI가 알려주기론 성경은 총 3만 1,102절이라고 한다.) 그즈음에야 이 말씀과의 지독한 인연을 받아들이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신기한 마음에 행사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빠에게 카톡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이하 사진: 필자 제공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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