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호 내 인생의 한 구절]

“엄마 왜 눈물이 나요? 아빠가 보고 싶어서요?”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희서가 아빠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는 엄마를 보고 한 말이다. 그 이후로 희서는 아빠를 찾지 않는다. 이제는 아빠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다섯 살이 된 예서는 가끔 아빠를 찾았다. “집에 아빠 있어요? 없어요?” “아빠는 왜 병원에 계속 계속 있어요?”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예서는 아빠가 병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죽음이란 친해지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주님의 죽음을 우린 사랑이라 알고, 그 죽음이 곧 나의 죽음임을 고백하기에, 멀리 있지만 결코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조금씩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희서와 예서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아빠가 있기를 바랐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나를 여기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마가복음 14:36, 《메시지 신약》).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당시에는 왜 아픈지 몰랐고, 줄곧 약한 아이로 지내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되었다. ‘비운동성 섬모증후군’. 선천적으로 몸 안에 모든 섬모운동이 없는 희귀질환이다. 기관지에 들어오는 먼지와 세균을 자연적으로 밀어내는 섬모의 기능이 없어 폐에 가래와 염증이 잘 생기고 호흡이 어려워지곤 한다. 

남편은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기적적으로 다시 건강을 회복한 후, ‘희년함께’와 인연을 맺어 희년의 활동가가 되었다. 아픈 몸으로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던 남편은 같은 단체의 회원이었던 나와 결혼하고, 사랑하는 예쁜 두 딸을 얻었다. 보통 사람에겐 평범한 일상이 남편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기저질환이 있던 남편의 건강이 코로나 상황에서 급격히 나빠졌다. 거리두기로 집 안에 갇혀 지내면서 건강이 점점 더 악화되었다.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았다. 병원에서 맞는 항생제가 듣지 않게 되면서, 폐 이식을 기다리는 상황까지 갔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 속에 기적이 찾아왔다. 기다리던 폐 이식 수술을 받았고, 나는 회복실에서 그런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좋아져야 할 남편이 점점 고통스러워했다. 결국 이식받은 폐 한쪽이 기능하지 않는다는 참담한 소식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암담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재이식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기쁜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남편의 건강은 점점 나빠져 더 이상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토록 추운 겨울이 있었을까. 이토록 불안하고 두렵고 간절한 날이 있었을까. 나와 남편에게 너무나 가혹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에게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두운 밤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슬픔과 불안 속에 있는 나에게 성경 구절(에스겔 48:35)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여호와삼마”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슬퍼하는 내 마음을 토닥토닥해 주는 것 같았다. 그 말씀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한 줄기 빛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느꼈다. 내가 슬픔에 젖어 잠들지 못할 때 그분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온 것처럼,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는 분들이 계셨다. 남편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을 ‘만남’이라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하는 가족과 좋은 이웃, 건강한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럽고 벗어나고 싶었던 그 시간을 묵묵히 걸어가게 해주셨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위로와 새 힘을 주셨다.

이제는 남편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해야 했다. 하루하루가 아깝고 귀한 시간이었다. 남은 시간을 아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더 사랑하면서, 좋았던 추억과 고마웠던 것, 내 마음을 더 표현하기로 다짐했다. 남편이 걱정하지 않게 건강 잘 챙기고 씩씩하게 버텨보자고. 허무해진 마음을 아낌없이 사랑으로 채워가자고. 웃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두려움 없이 불안해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이 기쁜 소식이고 기적이지 않을까. 기적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남편은 여러 번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 희망이 사라져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재이식이 어려워지고 강한 진통제로 견뎌야 하는 어려운 순간에 마지막으로 깨어있던 남편 모습이 기억난다. 화상 통화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반갑게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던 남편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세상에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얼굴이 아닌, 너무나 환한 너무나 환한 웃음으로 기쁨의 인사를 해주었다.

힘들었던 겨울의 시간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오고 있다.

생명의 죽음을 마주하고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다. ‘소소영’. 나에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소소한 일상에 영빨 보태기’라는 뜻으로, 남편이 붙여주었다. 항상 곁에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무심코 지나갔던 세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기쁨을 알게 되었다. 겨울에는 반가운 눈이 내리고 구름 사이로 환히 빛나는 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해와 공기와 땅과 바다와 빛처럼, 어느 하나 기적이 아닌 것이 없었다. 소소한 일상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었다.

남편의 첫 기일이 돌아오는 날, 또 하나의 기적이 찾아왔다. 출판사에서 남편의 유고집을 출간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출간’이라는 소식이 꿈같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해 부활절을 맞아 출간된 《기쁨의 편지》(바람이불어오는곳)를 읽다 보니 흐릿했던 남편의 존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힘들어도 유머를 잃지 않고, 고통 중에도 나를 걱정했던 남편이 여전히 나를 웃게 하고 위로해주는 듯했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기쁨의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분들이 계셨다. 소중한 가족을 잃으셨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돌보는 부모,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편의 고통이 귀하게 쓰임 받는 것 같아 감사했다. 남편과 내가 경험했던 기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부활의 기쁨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부활의 기쁨에는 사랑받은 기억, 생명의 소중함, ‘여호와삼마’처럼 함께하는 기적이 있다. 그 기적의 힘이 《기쁨의 편지》를 통해 서로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주었듯이, 이 작은 기쁨의 기적이 이어지고 이어져 가족과 공동체를 넘어 하나님의 공의(희서 – 희년의 소식)와 사랑(예서 – 예수님의 소식)이 가득한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바란다.

희서와 예서. 아빠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찍은 사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장차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이소영
《기쁨의 편지》 저자인 故 이신근의 아내이자, 두 딸(희서·예서)의 엄마이며,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함께 성경의 희년 정신을 실현하기를 소망하는 ‘희년함께’에서 사무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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