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 사이즈 미>는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희생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시민단체 간사가 한국판 '슈퍼 사이즈 미'를 찍으려다 건강 악화로 중단한 일도 있었다. 지난 해를 강타한 웰빙(well-being) 바람은 패스트푸드 문화를 침몰 시킬 수 있을 것인가?

뿌리 깊은 나무는 웬만한 광풍에도 끄덕 없는 법. 인간 삶의 정신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정신을 대변하는 하위문화는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건재할 수밖에 없다. 패스트푸드 문화가 전 세계를 휩쓰는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뿌리박힌 닻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 릿처 교수(메릴랜드 대학 사회학)가 쓴 <맥도날드,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적 삶의 양식에 나타난 현대 사회의 관료주의적 정신을 질타하고 있다. 일찍이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현대 사회가 점점 고도의 합리화에 안착할 때 헤어 나올 수 없는 재앙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모든 것이 수량적 합리성에 의해 판단되고, 예측되는 사회를 베버는 인간성 파괴의 전조로 본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우울한 사회 변동에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 애버딘 대학의 존 드레인 교수는 릿처가 말하는 '사회의 맥도날드화'라는 개념을 교회에 적용한 <교회의 맥도날드화: 소비문화와 교회의 미래(The McDonaldization of the Church: Consumer Culture and the Church's Future)>라는 책으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드레인 교수는 릿처가 지적한 맥도날드화의 4가지 특성인 효율성(efficiency), 계산성(calculability), 예측성(predictability), 통제(control)라는 개념들을 통해 교회의 삶이 어떻게 이런 가치에 의해 압박당하고 있는가를 분석한다.

맥도날드는 미리 규격화된 음식 세트를 제공함으로써 모든 고객들에게 선택의 고민을 덜어주며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성장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성공을 보장하는 완제품 패키지들은 커다란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서점에는 효과적인 리더십과 교회성장의 노하우를 제공하는 책들로 넘쳐난다. 바로 맥도날드가 창출한 '효율성'이라는 신화이다.

효율성·계산성·예측성·통제성

교회의 성장을 숫자로 평가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관행이다. 이런 방법론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점진적 과정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기다릴 여유를 상실했다. '계산성'은 이렇게 성공을 평가하는 거의 유일한 잣대가 되었다.

말끔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을 입력하면 통계적으로 검증된 결과가 나온다는 신념이 '예측성'을 대변하고 있다. 나는 한 '탁월한' 수련회 프로그램에서 바로 이와 같은 예측성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다. 첫날 마음을 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둘째 날쯤 되면 적당한 찬양과 놀이로 인해 점차 편안함을 느낀다.

셋째 날쯤에는 여러 감동적인 순서들에 의해 주체하기 힘든 흥분을 경험하고 넷째 날에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간증하게 된다. 모든 순서들은 치밀한 계획 아래 예측되고, 이에 따라 시간과 공간은 철저히 통제 되었다. 물론 섬기는 이들의 기도와 헌신적인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우리 신앙의 대상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구상을 벗어난 타자이며,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합리적 디자인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썩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현대 소비문명의 교묘함

마지막으로 '통제'인데, 효율성, 계산성, 예측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종일관 통제가 가해진다. 백화점에 유리창이 없고, 시계가 없다는 것은 진열된 상품미학에 도취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슈퍼마켓의 통로는 손님들의 발길을 좀더 붙잡기 위해 각종 시식대를 골목마다 설치해놓는다. 현대 소비문명이 인간을 통제하는 양식은 이렇게 교묘하다.

교회의 프로그램에서도 통제의 원리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유명 수련회를 가보면, 주어진 시간 안에 기대한 결과를 얻기 위해 참석자들의 자유시간을 제한하고, 이탈자를 막고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참석자들의 동선을 통제 가능한 영역 안으로 묶어둔다. 개인에게 충분한 사색의 시간을 주고 순례의 과정을 통한 점진적 변화를 돕기보다, 정교한 프로그램의 일방적 공급으로 소위 영혼의 완악함을 허물겠다고 한다.

맥도날드화는 단지 맥도날드의 자본 확장을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삶이 효율성, 계산성, 예측성, 통제라는 원리 아래 재편되어가는 현상을 총칭한다. 그렇다면 바야흐로 이슬람과 사회주의 국가에 까지 당당히 황색 아치를 세우며 진출하고 있는 맥도날드화된 사회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특별히 교회가 이러한 관료적 합리주의 문화에 대응하여 추구해야 할 실천방안은 무엇인가?

한 가지 중요한 대안은 맥도날드의 속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나는 맥도날드에 거의 안 가지만, 패스트푸드 음식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의도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기저에 깔린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문화적 가치에 대하여 경계하자는 것이다(사족으로, 미국 맥도날드 지점장이 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감자튀김이 30초 안에 공급되도록 하는 것이다. 튀겨진지 30초가 지난 감자튀김은 어김없이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

교회는 과정을 회복해야

최근 서구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느리게 사는 삶'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왔다. 실상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변화시키실 때, 오래 기다리시며 그들의 삶에 간섭하셨음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집중적인 주말 프로그램이나 수련회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최소한 3년간 삶의 나눔을 통하여 변화에 이르게 하셨다. 그 분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죄인들과 더불어 놀고 먹는 모습을 통하여 제자들의 회심은 차근차근 진전되어갔다. 비록 정해진 목표와 예측된 결과에 이르는데 조금 더디더라도, 삶의 과정을 함께 나누는 데에는 가시적으로 예단할 수 없는 깊은 인격적 교류의 영향이 남게 된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사순절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올해에는 2월 9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시작으로 부활주일에 이르기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을 사순절 기간으로 정해 금식과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여기서 사순절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인 Lent라는 말은 고대 영어의 lencten에서 나왔는데, 이는 "늘리다"(lengthen)라는 뜻을 갖고 있다.

자연이 새롭게 소생하는 계절에 40일간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죽음을 묵상하며, 그와 더불어 자아를 죽이는 영적 훈련을 통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제자로서의 소명을 새롭게 되새기는 것이다.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한 순간의 이벤트'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고난주간을 보내는 영적 순례의 훈련을 하자는 것이다. 교회는 과정을 회복해야 한다. 과정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일상을 요구한다.

지나친 목적 지향적 속도전에서 벗어나, 삶의 과정을 중요시하고 여유 있게 나눌 때 창의성과 상상력이 들어설 여지가 생긴다. 교회의 생활이 바로 이러한 창의성과 고즈넉한 인격성에 비중을 둔다면, 바로 오늘날의 맥도날드화된 문명에서 대안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김선일 / 풀러신학교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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