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의전에 의해 대중화…값싼 체험으로 인한 '신앙 천민화' 우려도

   
▲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일본 역사교과서 사태로 꽤나 떠들썩하다. 일본의 우파 보수주의자들은 이른바 '자학사관'을 폐기하고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적 발상을 어떻게 해서든 자국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싶어 안달이다.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 사람은 교과서의 문제점을 '전쟁을 하는 나라의 국민 만들기'라고 꼬집는다. 한국의 한 연구자는 이 교과서는 침략 전쟁에 대해 진정한 청산을 하지 못한 하나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면서, 심지어 우파 보수주의자들이 국민적 정체성에 방해가 된다고 떠벌려왔던 자학사관조차도 진정한 '사죄'의 자세는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 연구자의 비판은 놀랍게도 기독교에 대한 문제 제기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아니, 내 생각에는, 그가 생각하는 일본의 파렴치함보다 기독교의 경우가 더욱 '악성'이다. 기독교는 처절한 질곡에 떨어지고서야 나올 법한 '회개'라는 격정적 삶의 계기를 평탄한 일상 속으로 놀랍도록 확고하게 옮겨다 놓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에게 회개는 대단한 체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복과 지속에 길들여지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회개 체험의 일상화'가 과연 가능한가. 존재가 붕괴되는 경험을 거쳐야 가능할 법한 그것을 평온한 일상에서 손쉽게 해버린다면, 그(녀)는 필경 자신의 위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데 스스로가 위선임을 안다면 회개 행위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위선이 자기 자신에게 '들키지 않아야만' 회개라는 자기 갱신적 행위가 효력을 발생한다.

그럼에도 기독교 신앙은 회개를 통해 삶이 반전되는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삶의 밑바닥까지 핥지 않은 이들에게도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인이 자신의 회개 행위를 위선으로 체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기독교 '의전(儀典)'의 놀라운 효능이 빛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의전은 '반복성'과 '지속성'을 갖는다.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형식으로 나누는 예배가 대표적 실례다. 여기서 의전 담당자들은 항상 동일한 의전복을 입으며, 성가대의 동일한 송가(頌歌) 가락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성직자는 동일한 몸동작이나 어구를 반복한다. 그리고 회중은 거기에 맞추어 동일한 화답 어구를 반복한다. 성서나 찬송가라는 동일한 재료가 예배 의전에 참석하는 이의 필수 지참물이며, 그 텍스트에 대한 동일한 해석이 반복된다. 한편 의전은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인 양 생각하게 한다. 또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렇게 되풀이되어야 한다고 믿게 한다.

그리하여 '반복성'은 의전 참여자에게 친숙한 기억을 주입하며, '지속성'은 그러한 기억이 초시간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낳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 효과는 의식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 과정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신앙적 의전은 특정한 신앙적 기억, 특정한 신앙적 상상을 무의식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 기독교 지도자는 손쉽게 회개라는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심성을 갖고 있다는 게 나의 주관적 추정이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영역의 공적 지도자들보다 회개라는 행위를 훨씬 가볍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4월 8일 조용기 강원용 김창인 목사가 회개 발표에 나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기도회 장면. ⓒ뉴스앤조이 신철민
고통 없는 삶에도 회개는 있다?

회개 행위는 기독교 의전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다. 하여 기독교인들은 의전을 통해 회개함으로써 격정적인 고통의 체험 없이도 삶이 반전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위선이 아니다. 다만, 본회퍼의 시장적 은유를 빌려 말하면 '싸구려 은혜'일 따름이다.

시장(market)은 거래되는 물건에 시장적 가치를 부여한다. 즉 시장에서 거래되는 한, 그 물건은 생산한 이의 장인 정신이나 그것에 얽힌 기억 등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재해석되어 의미가 부여된다. 물건이 시장을 통해 상품이 된다는 말 속에는 물건의 재해석된 속성이라는 차원이 들어 있다.

여기서 본회퍼의 '싸구려 은혜'라는 은유에는, 기독교가 회개를 대중화함으로써 회개가 시장의 상품처럼 변모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사실은 본회퍼의 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품에 대한 소비 성향은 소비자의 일반적인 태도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령, 싸구려 상품을 선호하는 소비패턴을 가진 이는 일반적인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서도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기독교가 만들어낸 신앙의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의 하나인 '싸구려 은혜'는, 그것을 열정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천민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독교 지도자, 회개도 값싸게 소비

얼마 전 저명한 개신교 원로목사 세 사람의 회개 고백이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요한 바오로 2세도 지난 2천년간 천주교회가 저지른 죄에 대한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미사를 집전한 바 있다. 또 그 어간에 한국 천주교회도 이 땅에서 자행한 잘못에 대해 사죄했다. 어쩌면 시대의 변화가 가장 완고하게, 세상 앞에 도도했던 이들을 사죄의 마당으로 끌어낸 측면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마음이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들이 일생을 쌓아온 신앙의 내공을 무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의 회개 행동에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일단 공표한 이상, 남다른 사회적 지위에 있는 그들에게 예사롭지 않은 압박이 가해질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말은 나 같은 이의 말보다 훨씬 커다란 무게로 타인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의 회개를 의심하기보다는 그것이 더욱 공적인 것이 되도록 고무 격려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느냐는 선배 목사의 말은 지당하다.

한데 나는 다른 측면에 더 관심이 있다. 사죄 선언을 못하겠다고 버티는 일본 정치 지도자에 비해, 기독교 지도자는 손쉽게 회개라는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심성을 갖고 있다는 나의 주관적인 추정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영역의 공적 지도자들보다 회개라는 행위를 훨씬 가볍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추론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제도 특히 의전 제도는 그것을 그들에게 수없이 연습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싸구려 은혜’의 열렬한 소비자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다른 영역의 지도자들보다 회개라는 행위를 선택할 때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 더 이야기하자. 이런 태도는 기독교 지도자들만의 문제인가? 우리 자신 또한 ‘싸구려 은혜’에 탐닉하지는 않는가? 아니 실은, 공적 지위에 있는 그들에 비해 좀더 쉽게 회개를 남발하는 것은 아닌가? 단지 더 많은 권력 자원을 가진 이들의 허튼 말보다 공적 피해를 덜 끼친다는 것 외에, 악성 회개를 일삼는다는 점에서 하등 다를 것 없는 것은 아닌가?

종이 된다는 것은

나는 축도해 달라는 요구가 싫다. 목사란 축도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회중으로 하여금 낯선 타인에게, 증오나 무관심의 대상에게 자신의 축도를 나누어주라고 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폭넓게 애창되는 복음성가 한 곡이 몹시 거슬린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사랑받고 있지요/ …." 이 노래를 만든 이의 심정은 알 길이 없지만, 최소한 이 노래가 소통되는 주된 공간은 자기 자신이 신앙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갈망의 시장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무턱대고 폄하할 수는 없지만, 만일 이것이 신앙의 주요 동기요 재생산의 동력이라면, 그런 심성에서 나오는 수많은 회개는 '싸구려 은혜'를 탐닉하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 김진호 목사 ⓒ뉴스앤조이
기독교 신앙은 신이 스스로 주인공의 자리를 벗어던지고 종이 되었다는 고백에서 시작된다. 요한복음은 그런 이를 따르겠다는 고백인 신앙이 규모에 집착해 흔들리는 것을 목도하면서 이렇게 권고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12:24)

김진호 / 목사·<당대비평>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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