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 민주당, 언행일치 안돼…복음은 실천궁행

   
▲ 우리가 믿는 진리와 가치관은 '표방'과 '홍보'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살의 현장을 유기체적인 렌즈로 들여다보며 그 가운데로 들어설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안전한 지역이어야만 한다. 터미네이터(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새크라멘토(캘리포니아 주도)에 터를 잡고 계신데 어련하겠는가. 그러나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영세민들은 오히려 불안해한다. 슈워제네거가 주지사에 오른 이후 가장 먼저 예산을 삭감한 분야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혜택과 공립학교 교육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역설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도덕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서 성윤리가 무색하게 낙태가 빈번하며, 여성 및 약자 보호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이 가정을 더욱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0여 년간 윤리와 가치 문제로 문화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미국의 전통적 보수 개신교 백인들은 공화당을 지지하며, 유색 인종과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주로 낙태에 대한 반대, 보수적 성윤리, 유해한 대중문화를 우려한다. 그런데 과연 공화당 정권이 이러한 ‘전통적인 기독교 가치들’의 효과적인 수호자였을까?

공화당 정권에서 낙태 증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풀러신학대학원의 기독교윤리학 교수인 글렌 스테슨(Glen Stassen)은 일반적 관념과는 다른 조사 결과를 보여준다. 낙태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보이는 부시 정부가 들어선 2001년에는 지난 30년간 유지되던 낙태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1990년대 초에는 161만 건에서 2000년대는 131만 건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 시절에는 줄었던 낙태가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부 통계이기는 하지만 확연하게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낙태에 대한 여성의 선택을 옹호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 16개 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낙태 건수는 2000~2003년까지 4만8천 건이 증가했다.

낙태는 상당 부분 여성을 위한 것으로 경제적 여건과 직결되어 있다. 낙태를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이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한 반면, 낙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민주당은 그런 대로 사회복지 예산을 늘렸다. 또 여성 취업률도 클린턴 집권 시절 증가했으며, 이는 낙태율의 감소와 연관을 맺는다.

낙태를 실행하는 여성들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경제적인 어려움이다(자세한 내용은 www.fullerseminary.net/sot/faculty/stassen/cp_content/homepage/homepage.htm를 참조). 낙태뿐만이 아니다. 중생한 기독교인의 이혼율(33%)은 일반적인 이혼율(34%)과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www.barna.org). 복음주의권 청소년들의 혼전 성경험도 일반인의 비율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문화적 취향도 별 차이가 없다. 미국 록 가수들 가운데 가장 악마적이며 공개적으로 그리스도 이미지를 조롱해서 보수 기독교인에게 혐오의 대상인 마릴린 맨슨(지난해 내한공연 시도가 무산된 바 있다)이 열렬한 부시 지지자임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시절 번창했던 헤비메탈이 민주당 시절 얼터너티브 록에 밀렸다가 다시 공화당이 들어서면서 융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만 비난받을 일인가

보수 기독교인으로부터 미국 사회의 도덕적, 영적 쇠퇴를 조장한다고 비판받던 1990년대 민주당 시절에는 미국 젊은이들의 도덕과 가정에 대한 관점이 더욱 보수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UCLA대학 신입생들의 프리섹스에 대한 지지도는 1987년 51.9%에서 1998년 39.6%로 줄었으며, 70%의 학생은 전통적인 가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 경험을 가진 고등학생의 비율은 10여 년 사이에 54%에서 46%로 떨어졌으며, 역시 10대 청소년의 임신율도 1990년대에 20%가 떨어졌다(<뉴스위크> 2002년 12월1일자).

문화와 도덕의 가치는 의무 방어전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안 문화의 제시와 인간의 깊은 욕구를 어루만짐으로써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을 엿보게 하지 않는가? 자기들의 주장과 실천의 양상이 다른 경우는 보수주의자들만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버지니아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브레드 윌콕(Brad Wilcox)은 여성의 성직 진출에 관대하고, 가부장적 문화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적 신학 경향을 지닌 개신교인 남성보다 여성을 더욱 차별하는 것으로 알려진 복음주의 신앙의 남성들이 실제로는 가족에게 더욱 헌신하고 있음을 조사를 통해 밝힌 적이 있다. 윌콕 교수는 개신교인을 △헌신적인 자유주의적 신앙인 △명목상의 자유주의적 신앙인 △헌신적인 복음주의 신앙인 △명목상의 복음주의 신앙인이라는 네 가지 범주로 나누었는데, 이 가운데 가정 폭력이 없고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신앙인의 범주는 '헌신적인 복음주의 신앙인'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다음 많은 차이로 헌신적인 자유주의 신앙인들이 두 번째, 명목상의 자유주의 신앙인이 세 번째, 그리고 가정을 등한시하며 배우자 폭력이 빈번한 그룹이 명목상의 복음주의 신앙을 지닌 남성들로 드러났다. 즉 복음주의 가정에 대한 강조가 진지한 신앙적 실천과 결합할 때 가정에 더욱 헌신하는 남편과 아버지상을 형성한다는 것이다(Brad Wilcox, Soft Patriachs: How Christianity Shapes Fathers and Husband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혹은 Christianity Today 2004년 8월8일자, pp. 44~46 참조).

삶에 무관심한 복음은 의미 없어

필자는 미국 민주당의 정책과 가치가 더욱 우월하고 효과적임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복음주의 신앙이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주류 교단의 신앙) 신앙보다 더욱 평등한 가정 문화를 이루리라는 희망을 펴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믿고 주장하는 진리와 가치관은 '표방'과 '홍보'에 의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유기체적인 렌즈로 들여다보며 그 가운데로 들어설 때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인프라에 무관심한 채 복음을 제시하는 가치는 허탈하게 들릴 뿐이다. 실천은 관념적 진리에 딸려오는 '줄줄이 사탕'이 아니다. 실천과 관념은 자전거의 양 바퀴와 같다. 자전거의 뒷바퀴가 온전하지 못하면 앞바퀴도 굴러갈 수 없듯이, 실천이 없는 진리란 움직일 수 없는 상상 속의 기능일 뿐이다. 복음의 진리는 실천궁행(몸소 이행함) 정도로만 입증될 뿐이다.

김선일 / 풀러신학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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