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석 박사,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본 종교다원주의

가을강좌 ‘다원주의 시대를 사는 한국기독교의 고민’ 여섯 번째 강의는 종교다원주의 문제였다. 물론 첫 강좌인 강영안 교수 강의부터 ‘복음과 문화’ 강의(정혁현 목사)까지 ‘종교다원주의’는 강의마다 언급된 주제였지만, 마지막 강좌를 논의를 자제해왔다. 이 주제를 맡은 조영석 박사(총신대 강사)는 자신의 주된 관심이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소개나 옹호보다 오히려 비판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조 박사는 종교다원주의의 거장인 존 힉과 복음주의적 선교사 출신의 레슬리 뉴비긴과의 비판적 대화를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배타주의’가 아닌 ‘특정주의’

조 박사는 먼저 종교다원주의의 출현 배경부터 살펴보았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확장정책을 통해 서구 유럽의 대도시로 식민지 출신의 이주민들과 그 2세, 3세가 유입되었다. 서구 사회는 이러한 이주자들을 끌어안아야 할 상황이 발생했고, 여기에서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 종교다원주의는 버밍험∙런던∙시카고 등 서구 대도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조 박사는 이런 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고려해 그들의 종교다원주의를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즉 다종교사회라고는 하지만 한 민족, 한 언어를 배경으로 하면서 (종교 간의)테러와 같은 극단적 위협과 거리가 멀고, 한 가정 내에서 여러 종교의 공존이 가능한 한국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서구의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담론이 우리에게는 단지 참고사항일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강의에서 조 박사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용어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배타주의-포괄주의-다원주의’라는 용어는 알란 레이스가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태도를 유형별로 분류하기 위해 사용한 것인데, 여기에 ‘배타주의’라는 용어는 다원주의자인 레이스의 관점이 반영된 개념으로 ‘편협·독선·독단’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타주의’ 대신에 ‘특수성’(particularity) 또는 ‘특정주의’(particularism)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앤드류 커크(Andrew Kirk)나 앨리스더 맥그라스(Alisther MaGrath)의 용어를 제안한다.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배타주의 → 포괄주의 → 다원주의’ 라는 순서로 이루어질 때, 마치 그 순서에는 배타주의보다 포괄주의, 포괄주의보다 다원주의가 진보적인 개념인 것처럼 비춰지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러한 편성방식은 이미 다원주의에 대한 우월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조 박사의 지적이다.

존 힉,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 하나일 뿐이다”

이처럼 종교다원주의의 기본 전제에 대한 꼼꼼한 입장 정리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힉과 뉴비긴으로 넘어갔다. 조 박사는 “한 사람의 ‘신학함’은 그 개인사와 별개일 수 없다”며 그들의 신학적 여정을 개인사와 연관하여 소개했다. 본래 힉은 IVF 출신으로 근본주의적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나 이주민 인권 운동에 참여하면서 이주민들의 종교 집회에서도 기독교와 동일한 종교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목도했다고 한다. 힉은 본격적인 신학연구를 하면서 그의 신학적 입장을 ‘그리스도중심주의’에서 ‘신중심주의’로, 그리고 마침내는 ‘실재(The Real) 중심주의’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힉은 무엇보다 종교다원주의의 거침돌(scandal)인 성육신 사건을 철저히 거부했다. “만약 성육신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이다”라며 성육신 사건이 기독교의 특정성 여부에 있어서 핵심임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독교의 유일성을 거부하는 힉은 먼저 ‘예수=하나님’이라는 도식을 집중적으로 표현한 요한복음이 ‘사실적 언어’라기 보다 초기 기독교의 ‘고백적 언어’라고 말한다. 성육신은 사실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은유요 상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힉은 기독교는 ‘the 종교’가 아니라 ‘a 종교’라고 말한다.

레슬리 뉴비긴, “복음에 대한 확신을 회복해야”

뉴비긴은 35년간 인도의 선교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힌두 사회에서 선교를 위한 접촉점으로 ‘신(神)’을 설정한다. 그러나 뉴비긴의 신학은 그 무게중심이 ‘그리스도 중심’에서 ‘삼위일체 중심’으로 옮겨졌을 뿐, 궁극적으로 힉처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먼저 뉴비긴은 어떠한 학문도 믿음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마이클 폴라니의 견해에서 힌트를 얻어 계몽주의의 전제인 ‘의심’을 거부한다. 그리하여 대학시절의 종교 체험에서 획득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있다. 선교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뉴비긴은 세속사회라 여겼던 영국에 이미 종교다원주의가 만연한 것을 보고 영국을 ‘이교도사회’로 진단하게 된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에서 종교는 철저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으로 밀려나버린 영국사회를 발견한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영국이야말로 선교의 대상이 되었다.

종교다원주의의 공헌과 한계

그럼에도 종교다원주의가 끼친 공헌은 두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세계흐름의 변화에 대한 응답이 가능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인’의 지경을 넓힌 것이다. 그러나 힉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성경 해석에 있다. 힉은 성경, 특히 복음서에서 자신의 신학적 입장에 유리한 내용만을 취하고 나머지 본문은 소홀히 취급하는 선택적 해석이 문제라는 것이다. 조 박사는 “예수는 기독교의 핵심인데 과연 한 신학자의 사고 안에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적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는갚라고 반문했다.

또 종교다원주의에서 흔히 사용되는 ‘등산로 모델’에 대해서도 “과연 모든 길이 정상으로 향하는가?”라고 묻고 혹 그렇다 하더라도 “한 정상에 도달하는 다양한 등산로가 있다는 것은 산 정상에서만, 또는 산 밖에서(bird's eye)만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장님과 코끼리’ 우화를 예로 든다면 과연 누가 눈 뜬 임금인가?”라며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비판의 각을 세웠다.

조 박사의 다원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됐다. 우선 종교의 자유, 종교의 다원성에 대한 논의가 역으로 비기독교 사회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상이한 종교 전통사이의 용어 차이 때문에라도 모든 종교를 같은 차원에서 다루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종교 간 대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개종을 목표로 하지 말라는 다원주의자들의 주장을 넘어 한국적 상황에서 이미 실행 중인 한국인 내부의 대화, 예를 들면 유교적인 한국전통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생활 속의 대화를 발견할 것을 요청했다.

강의를 마치며 조 박사는 한국교회가 흔히 지적받는 두 가지 문제점에 대한 구별된 태도를 주장했다. 즉 실천윤리 부재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하지만, 배타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의 확신에 대해 누구나, 심지어 다원주의자들도(특정주의, 포괄주의에 대해) 배타성이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 자체가 문제될 수는 없다고 했다.

한정된 시간 때문이기도 했지만, ‘복음주의적 신앙’을 출발점으로 삼는 조 박사의 뚜렷한 입장 때문인지 이날 강의에서 많은 질문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아예 논의조차 기피하는 교회 현실을 넘어 ‘종교다원주의의 도전에 대한 복음주의적 입장에서의 응전’이 어떠한 모습으로 가능한지를 살펴볼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한경훈 / 현대기독교아카데미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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