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신 ‘성경 연구와 세계관’ 개설…신학교는 ‘목회자 양성소’ 벗어나야

서울 봉천동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웨신)는 그 이름 때문에 자주 미국에 있는 동명의 신학교 한국 캠퍼스로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내년 학기에 개설되는 ‘평신도를 위한 성경 연구와 기독교 세계관 강좌’는 아마도 이 학교만의 독특한 과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학교는 규모는 작지만 교수진이 화려하다. 특히 성서신학 쪽에는 국내 어떤 신학교보다 국제적으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는 강력한 학자군을 보유하고 있다. 이필찬 교수(신약학)는 계시록 연구의 권위자인 리차드 보캄의 지도 아래 쓴 논문을, 권연경 교수(신약학)는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갈라디아서의 종말론으로 쓴 논문을 독일의 저명한 논문 시리즈물인 분트(WUNT)에서 출판했다. 화란 자유대학 출신의 신현우 교수(신약학)도 유럽의 페터스 출판사에서 논문을 냈고, 국내에서는 드물게 김근주 교수(구약학), 이풍인 교수(신약학), 전성민 교수(구약학) 등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학자가 세 명이나 교수진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웨신은 이런 성서신학의 강점을 바탕으로 기독교 세계관과 접목한 평신도 신학 과정을 개설했다. 어떤 취지에서 출발하는지 11월 18일 기획처장인 권연경 교수를 통해 들어보았다.

코스 개설 취지가 궁금하다.

평신도를 대상으로 신학교육을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건강을 생각할 때 이미 그 욕구가 목에까지 차오른 상태이다. 사회 생활을 하는 일반 성도들은 교회나 목회자의 가르침에서 느끼는 불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에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교육은 이제 목회자 양성이란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쪽으로 신학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성도들의 치열한 사고를 목회란 울타리 안에서 다 해결하지를 못한다. 이런 질문들을 생산적으로 해소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신학교의 역할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목회자는 성도들을 실질적으로 우민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평신도들은 20~30년 교회를 다녔어도 자신들의 신앙 이해에 여전히 자신 없어 한다. 자주 예로 드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만약에 낚시를 20년 다녔다고 치자. 매주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낚시를 다니고 매일 낚시 잡지를 30분씩 읽고 마음에 새기고 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당연히 낚시에서는 대가요,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매주 교회를 다니고 매일 성경책을 묵상한 사람들에게서 그것이 발견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성도들의 신앙이 매우 목회자 의존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성도들이 이 과정을 수강하면 그런 성취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 강좌가 완벽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이고, 필요한 물음을 제기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답을 얻는 것보다, 관점이 생기고 정확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면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커리큘럼의 구성을 보면 매 학기 성경 과목이 세 개 있고, 세계관 과목이 하나 들어있다. 너무 성서학 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가. 실제 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보다 성경 공부에 치중하면서 원론적인 세계관 공부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언뜻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생활과 연관되는 부분은 성경 과목에 좀더 많이 반영이 될 것이다. 오늘날 성경의 이 구절은 어떤 적합성을 갖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오히려 세계관이나 윤리 과목은 이론적인 내용을 다룰 가능성이 있다.

이미 대형교회들은 성경대학 과정을 두고 있는 곳도 있고, 바이블 칼리지도 운영되는 것이 있다. 우리 과정의 특징은 교수진이 상당한 수준의 통일성을 갖고 강의에 임한다는 점이다. 이런 것은 우리 학교 교수진이 갖고 있는 강점이다.

바울의 예를 들면,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얻고 그것은 구체적 삶과 별개로 이해하도록 바울이 가르쳤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서신을 제대로 읽어보면, 바울이 강한 부정을 할 때 쓰는 표현 그대로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바울의 복음 이해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 복음이란 것이다. 이것을 본회퍼가 비판한 ‘값싼 은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바울을 왜곡하는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더 역동적이고 부활 신앙과 새 생명으로 무장한 목회자 바울의 모습이 진정한 그의 면모이다. 목회자의 직장은 교회이지만 성도들의 삶은 다르다.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복음의 실제적 면모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수강생으로 오기를 기대하는가.

질문이 많은 사람들을 기대한다. 대학시절 신학책을 혼자서 꽤 읽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교회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 전문인들이 오면 좋겠다. 자기 전문 분야를 갖고 있으면서 신학적 소양을 개발하고 싶은 경우면 좋다.

수강생들에게 해석학적 관점이 형성되려면 교수진의 분위기가 중요할 것 같다.

교수진의 신학적 색깔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신학적 토론에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자는 입장이다. 대체로 봐서 복음주의적 울타리 안에 있으나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보수주의의 문제는 대답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아니라, 승패를 정해놓고 일종의 게임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좌충우돌 하더라도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한 장을 열어놓고자 한다.

흥미롭게도 교수진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영국이나 유럽에서 최종 학위를 한 경우가 많다. 그 덕분에 양쪽의 학풍에 다 열려있다. 유럽에서 공부한 배경에서 의기투합한 것은 연구중심의 학풍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아마 ThM 논문심사를 예외 없이 한두 시간씩 하고, 한 번에 통과되는 일 없이 재심까지 가는 것이 보통인 학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공부하기는 까다로울지 모르나, 나름대로 학문적 수준 유지에 노력한다. 

혹시 과정을 만들면서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은 기관은 없는가.

꼭 집어서 말할 곳은 없다. 밴쿠버의 리젠트칼리지나 하버드대학의 MTS과정 등을 보면 목회과정(MDiv)과 일반 석사과정(MA)의 숫자가 비슷하다. 기독 전문인들이 와서 일정 기간 신학 공부를 하면서 신앙적 소양을 공급받고는 다시 자신의 삶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보통 신학교들에서 목회자들을 위한 ‘최고 목회자 과정’ 등을 여는 경우는 있는데, 그것은 사교적 필요가 강한 것이고, 일반 성도들을 신학적으로 준비시켜주는 과정은 드물었다. 이 과정이 그런 필요를 잘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는 늘 한국교회의 건강성을 증진하려면 재야의 신학교가 생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교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고, 학자적 소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학풍의 연구소와 교육기관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웨신이 2006년부터 개설하는 강좌는 그런 해묵은 소망에 한 걸음 성큼 다가간 반가운 사례인 듯하다.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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