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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의식 갖고 증인의 삶 살아야 해요
[242호 권두 대담] 이시영 장로(전 유엔 대사․한국컴선교회 국제이사장)
[242호] 2010년 11월 24일 (수) 16:00:35 이광하 33terry@goscon.co.kr

G20 정상회의 준비로 한창이던 11월 10일, 이제는 ‘하나님의 대사’로 선교하는 이시영 장로를 황병구 편집위원장이 만났다. 지난 10월 17일부터 24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 3차 로잔세계선교대회에 다녀온 소감과 국내외 외교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스카프를 두르고 트렌치 코트를 편하게 걸친 이 장로의 옷매무새에서 외지의 자유로움이 느껴졌고 국제 관계와 선교대회에 대한 비평을 할 때는 예리한 외교관의 경륜을 느낄 수 있었다.

   

이시영 장로(73‧정동제일교회)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외무부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3등 서기관을 시작으로 1998년 제17대 유엔 대사를 역임했다. 1991년에는 초대 외교정책기획실장으로 제3차 아․태 경제협력체(APEC) 서울 각료 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삼중국’(중국, 대만, 홍콩) 가입 문제를 원만히 타결해 외교 역량을 인정받기도 했다. 또 세네갈 대사와 오스트리아 대사, 제32대 외무부 차관, 프랑스 대사를 역임했고 은퇴 후에는 전주대학교 총장,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컴선교회(Come Mission Korea) 국제이사장으로 선교 동원가의 삶을 살고 있다.

감비아에서 이재환 선교사를 만나서 새로운 영적 각성을 경험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은퇴 후 선교 동원가로 일하시게 된 계기가 된 이 귀한 만남에 대해 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1985년에 주세네갈 대사로 임명받았을 때 거기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뉴욕에서 주유엔 공사로 근무하고 있던 당시에는 교회 생활을 잘할 수 있었지만 세네갈은 90%가 모슬렘인 국가라 교회는 커녕 기독교인도 찾기 어려운 나라였어요. 한국 교포도 열 가정 안팎이었고 한인교회는 물론 없었고요.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좀 있었지만 개신교는 없었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성경을 집사람과 독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성경 66권 전권 주석을 사서 가져갔을 정도였어요. 나중에 정말 요긴하게 썼지만요. 거기서 감비아 대통령께 신임장을 제정하러 갔다가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 선교사로 사역을 막 시작한 이재환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분과 사귀면서 그야말로 영적으로 새로운 계절을 만나게 되었지요.

이재환 선교사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선교하고 계셨는데, 정말 필요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채워 주시는 걸 목도하면서 제 신앙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중대한 몇 가지를 깨달았는데, 한 가지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는 선교에 대한 사명이었죠.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신앙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그 당시 나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에 불과했었다고 생각돼요. 주일이면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나 성가대 등 온갖 봉사활동을 했지만, 봉사해서 내 의를 쌓는 것이 구원을 받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한국의 첫 번째 교회인 정동제일교회에서 자랐지만 선교의 시옷자도 몰랐고요.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주일에만 하나님을 섬기고 주중에는 내가 삶의 주인이었는데, 그것이 이원론적인 신앙생활임을 깨닫게 된 거죠. 그러나 이재환 선교사의 삶을 통해서 삶의 모든 영역의 주인이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진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도 하게 된 것이지요. 세네갈 생활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영적으로는 새롭게 거듭나는 신앙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복음과상황 김은석
오랜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신 후에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어떻게 선교 동원가로 일하게 되셨습니까

우리 세대에 은퇴를 미리 준비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나도 은퇴 이후를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돌이켜보면 은퇴한 후 10년 동안 내가 계획한 건 없는데 하나님께서 한 걸음씩 인도해 오신 것 같아요. 제일 처음에 한 일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초빙교수가 되어 ‘다자 외교에서의 정책 결정 과정’을 가르친 거예요. 예컨대 G20 정상회의, 유엔회의, 비동맹회의, G7 등 다자적 환경에서는 어떻게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정책 결정을 유도하는가를 고찰하는 것인데 내 외교관 생활 중 거의 반을 그런 일을 해 왔기 때문에 그 경험을 살려서 핵 문제, 인권 문제, 환경문제, 노사 관계 등, 국제회의의 주제가 될 만한 문제를 사례별로 연구하는 세미나였지요.

이 무렵에 이재환 선교사의 권유로 ‘한국컴선교회’를 창설하는 일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컴(come)’은 나라가 임하옵소서,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 1985년이 세네갈에서 이재환 선교사를 만나 선교에 대해 각성을 하고, 삶 속에서 선교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 해였다면, 2000년은 ‘한국컴선교회’에 합류하면서 직접적으로 선교에 참여하기 시작하게 된 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 딸도 선교사가 되었어요. 아들은 하버드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는데, 딸은 버클리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교사가 되어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 기니에서 4년 동안 사역하다가 지금은 안식년으로 나와 이스라엘에 가 있어요.

외교관으로, 평신도 지도자로 평생 지내시면서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 살아내기 위해 늘 염두에 두셨던 부분과, 퇴임 이후 복음주의 지성인들의 서적을 접하면서 가장 큰 신앙적 사고의 진전을 가져온 지점을 들려 주세요

은퇴한 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일과 한국컴선교회에 합류하여 일하는 것이었는데, 그 다음으로는 온누리교회에서 비전그룹 모임을 만드는 일이었지요. 하용조 목사님이 온누리교회에서 비전 그룹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하셨죠. 직장에서 나름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교인들로 모임을 만들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말씀 듣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말하자면 성속 구분의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세상 속에 보냄 받은 신자들이 어떻게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포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모임을 앞두고 처음 읽었던 책이 하 목사님이 추천하신 존 스토트의 <현대 사회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IVP)이었어요.

   
▲ ⓒ복음과상황 김은석

원제가 <New Issues Facing Christians Today>였는데, 그 책의 내용에 확 끌렸어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얼마만큼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책이죠. 그 책 1 부에서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이 사회 참여를 하면서 넘어선 안 될 선도 있는데,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느냐? 2부에서는 글로벌 이슈인 인권 문제, 환경문제, 전쟁, 평화, 핵 문제 등에 대해서, 사회적 이슈로서는 노사 관계, 인종차별 같은 문제들, 개인적 이슈로서는 결혼, 이혼, 낙태, 동성애, 생명공학 문제 등에 대해서 성경은 어떤 지침을 주고 있느냐를 다루고 있었지요. 존 스토트의 책을 읽으면서 세계에는 인권 운동가들 또는 환경 운동가들이 많지만 그런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적 접근 방식은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물론 구체적으로는 각자가 조건과 상황에 따라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 책이 중요한 성경적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이 책 외에도 주 프랑스 대사 시절에 만나게 된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로 기독교 사상가인 자끄 엘륄의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란 책도 같은 맥락에서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책이었고, 프란시스 쉐퍼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란 제명의 책은, 우리가 거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는 소위 서양의 선진 문명이 로마 시대 이래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신본주의 문명이 오늘날과 같은 인본주의 문명으로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지침서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었어요.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역사적 관점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통감하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게 느끼고 있습니다.

로잔대회에 참석하시고 한국 참석자들끼리 가진 간담회에서 “내용적 기여가 없어서 실망스럽다”는 발언을 하셨는데요. 이번 로잔대회에서 새로 발견하신 관점을 몇 가지 들려주시고 국제적인 환경에서 한국의 기독인들이 실질적인 기여를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신 점도 짚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 ⓒ복음과상황 김은석
외교는 양자 외교와 다자 외교로 나눌 수 있는데, 외교관 생활을 주로 다자 외교 분야에서 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외교관이라도 해외로 출장을 가는 것이 귀한 기회였어요. 그래서 출장의 기회를 균등하게 나눠 가졌죠. 담당 분야든 아니든 돌아가면서 출장을 보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다자간 국제회의에) 우리는 별로 전문성 없이 참석했고, 참석하는 것 자체로 만족했었어요. 그런데 선진국은 모임을 할 때마다 같은 사람이 와요. 늘 오는 전문가들이 회의 막후에서 모든 일을 요리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끼지도 못하고 관객 놀이밖에 못 했어요. 채택된 결과물만 받아 왔지 배후에서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막후 협상 과정이나 협의 내용은 몰랐던 거죠. 이런 시기를 거쳐서 70년대 이후 전문화하기 시작했어요. 다자 외교 분야의 발전 과정을 내 몸으로 체험한 터라, 이번 로잔대회에서도 이미 사전 협의가 끝난 내용을 받아 보기만 했지, 우리의 실질적 기여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지요.

문제별 사전문서(advance paper)가 회의 훨씬 전에 배포되어 참가자 대표들의 의사 표시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우리가 과연 얼만큼 우리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던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은 기여금도 상당히 갹출하여 냈고 참가 인원도 국내외 100여 명에 달했는데, 그러한 외형적인 하드웨어 부분에 비해 소프트웨어 부분의 내용적 참여와 기여도가 적었던 것에 대하여 우리가 반성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있었던 제1차 로잔대회나 1989년 2차 대회에 우리도 참석은 했지만 그 결과에 대하여 한국의 교계에 얼마만큼 광범위하게 전파하고 공유하여 자극과 도전이 되게 할 수 있었는가, 참석할 때마다 얼마만큼 젊은 세대 지도자들을 데리고 가서 다른 나라에서 온 핵심 그룹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 주어 전문성을 키우도록 도와 주었는가 하는 것들이 아쉽게 느껴졌어요.

모든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식사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차별과 구별 없이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참석자의 일인으로 함께 어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전반적으로 볼 때 하드웨어 부분에서는 철저한 준비를 한 노력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여서 아주 좋았어요. 몇 달 동안 준비했을 거예요. 특히 폐회 행사에서 성찬식을 할 때는 4000여 명이 참여해서 복잡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뮤지컬을 체험하는 기분이었어요. 오케스트라가 있고, 콰이어가 있는 상황에서 회중들은 청중이 되기가 쉬운데, 회중들도 화답하며 참여하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계시록의 한 장면처럼, 마지막 때 함께 하나님과 어린 양 앞에서 온 민족과 언어가 한마음으로 찬양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실현하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회중이 모두 참여해서 드리는 것이 참된 의미의 예배인데, 요즈음 많은 예배는 설교 따로 찬양 따로 청중은 구경꾼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날 그 회의에서는 모든 순서 진행자들이 청중과 함께 찬양하고 화답하는 식으로 배려했어요. 연출에 관한 한 잘 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G20 정상회의가 내일부터(11월 11일) 시작됩니다. 한미 FTA와 G20 등 한국의 외교통상 분야를 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에서 외화내빈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외교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십니까

외화내빈이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문제라고 봐요.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형대회를 치르면서 국제회의의 하드웨어를 준비하는 것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염려스런 부분이 있어요. 국내적으로 언론에서 G20을 과장 홍보하는 느낌이 있는데, 온 국민의 관심을 외형적인 면에 집중시켜 놓은 것에 비해서 이 회의에서 뭐가 생산되고 결정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과연 일어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복음과상황 김은석
예컨대 우리나라가 개발 의제를 포함시키는 성과를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이 빠른 시간에 개발을 이뤘으니까 우리의 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적용하면 된다는 간단한 도식을 너무 내세우는 것 같아요. 1947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트루먼 선언을 한 후부터 60년 동안 선진국이 후진국에 퍼부은 돈이 OECD 통계에 의하면 3조 원이 넘는다고 해요. 그런데 개도국 중에서 원조를 받은 나라가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뀐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해요. 우리가우리만의 외교적 상황과 전통, 가치관을 다 혼합해서 우리 나름대로 고속 성장 과정을 이룩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모델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적용한다면 문제가 생겨요. 그 나라의 전통과 관습과 종교와 사고방식이 한국에서 하던 방식과 양립할 수 있는가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런 점에서 성공했지만 이런 점은 실패했으므로 따르지 말아야 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언론이 우리를 완벽한 성공 사례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외국에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발전 과정에서 파생한 빈부 차이라든가, 에너지 과소비형 모델은 오늘날 저탄소 사회를 지향하는 녹색 성장의 모델이 될 수는 없어요. 또 하나 중국이라는 변수가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모택동이 40년 동안 자력갱생이니 하면서 바깥 세상과 단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저임금을 이용한 수출 주도형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지요. 만약 중국이 싼 노동력을 활용해서 2차 대전 직후부터 수출 주도형 성장을 도모했다면 우리나라는 당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중국의 도움을 받은 셈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중국의 등장으로 한국식 수출 주도형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거의 사라졌어요. 그러니 우리 모델을 후진국에 무조건 적용할 수 없지요.

언론에서 G20에 대한 기대를 너무 높여 놓았는데,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G20 정상회의에서 극적인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기독교 내에서 의견이 나뉘는 부분이 남북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3자적 시각에서 그동안 대북관계와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통일관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주오스트리아 대사로 발령이 났을 때였어요. 나와 아내가 가장 좋아했어요. 빈은 고전 음악의 수도고, 겨울은 스키의 천국이잖아요.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2주 만에 꿈이 깨졌어요. 92년 초 북한 핵 문제가 터지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이 1차 북핵위기 싸움의 주 무대가 되는 바람에 2년여 동안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어요. 그때부터 “왜, 그리고 언제부터 북한이 핵 개발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가?”를 밤낮으로 골몰히 연구하고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내 개인적인 결론은 북핵 게임이 김일성, 김정일과 그 일당들의 필사적이고 다른 대안이 없는 유일한 생존 게임이요 카드라는 것이었어요. 

우리나라도 박정희 대통령 때 사용 후 연료의 재처리 시설 도입을 시도했던 적이 있어요. ‘재처리를 한다’는 얘기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저농축 우라늄을 태워 발전하면서 발생한 사용 후 연료를 화학 처리하여 핵폭탄 원료인 플라토늄을 빼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재처리를 아무나 못 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안보 이슈죠. 북한도 재처리를 시도하려고 했다가 IAEA 사찰에 들켜서 1차 핵 위기가 터진 거예요. 그때가 공산 진영이 막 무너지기 시작한 때였어요. 김일성과 가장 친해서 김일성을 그대로 모방했던 루마니아 차우체스쿠 정권도 처참하게 무너졌어요. 국민들이 차우체스쿠 대통령 내외를 길거리에 끌고 다니다가 죽여버렸거든요. 그때 충격을 받은 김일성과 북한 정권의 지상 과제가 바로 살아남는 것이 된 거죠. 북한 전체의 생존 문제가 아니라 북한 정권과 수십만 수혜자의 생존 게임이 된 것이지요. 북한의 백성들이 굶어 죽든 어떻게 죽든 상관없는 문제예요. 그래서 중국식 개혁 개방도 하지 않아요. 루마니아처럼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전에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냉전 종식에 따른 공산권 붕괴 과정에서 생존의 위협에 당면하면서 생존 카드로 핵 개발을 공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북한의 핵 개발은 북한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카드라는 것이 그때부터 갖고 있던 내 결론입니다. 그때부터 생긴 모든 일들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봐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도 생존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발상 자체는 좋아요. 그러나 집행하는 과정에서 ‘퍼주기’가 됐지요. 우리가 준 것에 비해서 받은 것이 없어요. 이런 거래는 국가간 관계에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발상 자체는 좋았는데 시행 과정에서 다른 정치적 야망과 혼합되어 퍼주기만 하는 식으로 가다가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졌어요. 이명박 정부도 염두에 둬야 할 점은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는 북한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기 때문에 북한이 자기가 생존할 수 있다는 보장이 대내외적으로 확실해지기까지는 절대로 그 카드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6자회담을 하더라도 생존의 보장이 된다는 단계까지 이르지 않으면 절대로 핵 카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겁니다.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할 청년들이 갖춰야 것은 무엇일까요?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제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인데요, 우리 교육 과정에 가장 부족한 것이 역사의식입니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은 암기식으로 연대 맞추고, 사람 이름 맞추면 시험에 합격하는 정도지요. 우리는 결국 시간 속에 사는 존재입니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가는 역사 속에 나의 위치와 정체성을 아는 것은 생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죠. 그걸 역사라고 한다면 자기 존재의 위치와 의미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인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역사의식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스스로 추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제가 은퇴한 후 깨달은 것은 역사적 사건 배후에 항상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교회에서 아무도 가르치지 않아요. 역사 속에 현존하신 하나님을 알고 성경 말씀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해요.

아까 말씀드린 프란시스 쉐퍼의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로마 시대 이후 서양 문명의 모든 분야, 즉 그림, 음악, 문학에 이르기까지 서구적인 철학과 사고방식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기독교 사상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에 대한 책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의 문명이 얼마나 우리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살펴보게 됐어요. 우리 것이 거의 없어요. 우리는 복음의 핵심과 복음과 함께 들어온 서양문화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에 묻어 들어 온 서양의 사고방식을 한국 교회에서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재환 선교사가 어느 교회에 설교 부탁을 받고 감비아 전통 복장을 하고 찾아갔는데, 넥타이를 매지 않아서 강단에 올라갈 수 없다고 막더래요. 그래서 강단 아래에서 설교했다고 해요. 한국교회 안에 이런 희화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 환경 속에서 세속적 세계관들을 구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영적 대결에 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과 복음에 묻어 들어 온 문명을 구별하는 눈, 이것을 갖추려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나의 신앙 정체성, 내 삶의 위치, 한민족의 위치를 청년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하고 그것을 지금이라도 교회가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는 성경적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갖추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가치관의 공백 상태를 겪은 우리 사회에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심어줬어야 하는데 그러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했다고 봅니다. 우리 조상들이 5천 년 동안 갖고 있었던 무속신앙, 미신, 유교, 불교 등 전통적 가치관들이 근 현대화 과정에서 거의 무너졌어요. ‘상투를 잘랐다’는 상징적인 행위가 그걸 잘 말해 주는데, 일본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선교사들에 의해서 좋은 의미의 서양화가 이루어졌고, 전쟁을 겪으면서 완전히 무너졌어요. 전쟁은 살아야만 하는 서바이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 되는 상황 아닙니까.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려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온 국민에게 알게 모르게 심어 줬어요. 그것의 전형적인 사건이 5․16쿠데타죠.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가 마침내 가치관의 공백 상태에 빠지는 상황에 대비하여 하나님께서는 125년 전에 복음으로 그 공백을 메우라고 복음을 주셨는데, 교회가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룩하고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세속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빠져 세상 일에는 전혀 무관심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해방신학처럼 사회 참여에만 관심을 갖고 막상 복음은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면서 결과적으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했다고 봅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깨고 성경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중고등부, 유초등부 학생들부터 그런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도록 가르치기 시작해야 해요. 대학생 이상 되면 가치관이 벌써 세속적으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지요. 십 년 이십 년 후 장래를 내다볼 때에 차세대들에게 제대로 된 성경적 가치관을 심어 주고, 그것을 자기 가정과 직장에서 삶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의 장래는 어둡습니다. 대통령부터 선진화, 선진화 하는데 제가 유럽에서 살면서 경험한 유럽의 선진화된 사회는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파산 상태에 직면해 있어요. 우리가 서구처럼 개인당 국민소득 4,5만 불의 선진화를 이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유럽 같은 선진화의 결과가 결국은 영적, 정신적인 파탄이라면 왜 선진화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교회가 그것을 직시해서, 그런 가치관의 공백을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채워 나가려는 피나는 노력을 얼마만큼 하느냐가 선진화한 우리나라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역사의식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시대적인 요청에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황병구 님은 사회선교재단인 한빛누리의 본부장이자 공익경영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1997년부터 <복음과상황> 편집위원을 맡아 오다 작년부터는 편집위원장 노릇을 하고 있다. 전공은 공학이지만 노래 운동과 방송 프로듀서 경력 탓에 아직도 이곳저곳 객원 기획자로 불려 다닌다.

   
▲ ⓒ복음과상황 김은석
 

정리 이광하 편집장 33terry@goscon.co.kr
사진 김은석 기자 warmer@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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