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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 서약(The Capetown Commitment):
[242호 제3차 로잔대회 선언문] 믿음과 행동에의 요청에 대한 선언
[242호] 2010년 11월 24일 (수) 17:20:22 복음과상황 goscon@goscon.co.kr

전문(Preamble)

전 세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신자들인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구원의 목적들에 기꺼이 우리의 헌신을 다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로잔운동의 비전과 목표들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다시금 확인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가르침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증거하는 과제에 지속적으로 헌신한다. 제1차 로잔대회(1974)는 세계 복음화의 과제를 위해 소집되었다. 세계교회에 주어진 그 대회의 주요 선물들은, 무엇보다도 로잔언약이며, 수많은 미전도 종족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 성경적 복음과 기독교 선교의 통전적 성격에 대한 참신한 발견이었다.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대회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 간의 협력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을 포함하여 세계 복음화에 있어서 300개 이상의 전략적 동반자 협력 관계를 탄생시켰다.

둘째, 우리는 로잔운동의 핵심 문서인 로잔언약(1974)과 마닐라선언(1989)에 지속적으로 헌신한다. 이 두 로잔 문서들은 성경적 복음의 핵심 진리들을 분명하게 나타내며 여전히 상관적이며 변화하는 상황의 선교적 실천 가운데 적용된다. 우리는 이 문서들 가운데 나타난 다짐들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영원한 복음의 진리를 표현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인식하면서, 그 헌신들을 권고하고 지킨다.

   
변화하는 실재들

 
우리가 살아가고 생각하고 서로 관계를 맺는 거의 모든 방식은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좋건 나쁘건 간에 우리는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과 전 세계적으로 변하는 정치경제적인 힘의 균형에 충격을 느낀다. 전 세계적인 빈곤, 전쟁, 질병, 생태학적 위기, 기후변화와 같이 우리가 직면하는 변화들은 우리에게 슬픔과 불안을 초래한다. 그러나 일련의 엄청난 변화는 우리를 즐겁게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전 세계에 산재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장이다.

제3차 로잔대회가 아프리카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입증이다. 적어도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3/4이 현재 비서구에 살고 있다. 케이프타운 로잔대회의 구성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 이래로 한 세기 동안 세계 기독교의 중심의 거대한 전환을 반영한다. 우리는 아프리카 교회의 놀라운 성장을 기뻐하고 아프리카의 형제자매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대회를 유치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우리 세대가 직면하는 실재들에 응답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이전 세대들로부터 물려받은 복합적인 지혜와 실수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불변하는 실재들

그러나 변화하는 세계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위대한 진리들은 우리의 선교적 참여를 위해 성경적 원리를 제공한다.

● 인간은 잃어버린 존재이다. 성경이 묘사하는 대로 근원적인 인간의 비참한 상태는 여전히 동일하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처해 있으며, 그리스도 없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개념이 아니라, 참신한 진술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통치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셨던 불변하는 이야기이다. 그리스도 안에만 소망이 있다.

● 교회의 선교는 지속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지구상 끝까지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된다.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통해 그의 구속된 인류와 함께 거하게 될 때, 그 날이 도래할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의 선교는 즐거운 긴박감 가운데 지속되며, 우리 세대를 포함하여 모든 오는 세대들 가운데 참신하고 떨리는 기회들과 더불어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사랑의 열정
 
이 선언문은 사랑의 언어로 구성된다. 사랑은 언약의 언어이다. 성경에 나오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잃어버린 인간과 오염된 피조 세계에 미치는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다. 그의 사랑과 은혜는 다시 우리의 사랑을 요청한다. 우리의 사랑은 그 자체로 우리의 언약의 주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과 열정적인 헌신을 보여준다. 로잔언약은 복음화를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열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로잔언약을 재차 확증한다.

● 하나님의 창조가 죄와 악에 의해 파괴되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의 모든 분야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쁜 소식으로서 온전한 복음에 대한 우리의 사랑.

● 이 땅의 모든 나라들과 전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되었으며, 이 세대에 하나님의 선교를 공유하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 교회에 대한 우리의 사랑.

●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졌으나 그분의 마음에 품으신 세상, 즉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의 유일하신 아들을 주신 온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랑.

이 삼중적인 사랑에 붙잡혀 있는 우리는 온 교회가 되고 온전한 복음을 믿고 복종하고 나누기 위해, 그리고 모든 열방을 제자 삼기 위해, 온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새롭게 우리 자신들을 헌신한다.

제1부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신앙 서약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사랑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세계 복음화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우선성을 확증하고 사랑의 복종을 통해 나타난 믿음에 의한 은혜에 응답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그의 아들을 보내셨기에 사랑한다.

a)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을 지탱하는 처음이자 가장 위대한 명령들로 구성된다. 사랑은 율법을 성취하며 성령의 첫 열매이다. 사랑은 우리가 거듭났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확증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증거이다. 사랑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종할 때만 이 명령이 그들의 사명이 가시적이고 믿을만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새 계명이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아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세상에 그 자신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시는 방식이다. 사랑은 바울이 믿음과 소망과 함께 새로운 신자들 가운데 관찰하고 명령했던 첫 번째 요소이다. 그러나 사랑은 가장 위대한데, 그 이유는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b) 이러한 사랑은 약하거나 감상적이지 않다. 하나님 자신의 사랑은 언약적으로 신실하며 헌신적이며 자기를 내어 주며, 희생적이고 강하며 거룩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은 그의 전 존재와 그의 행위, 그리고 그의 긍휼뿐 아니라 그의 공의에 스며들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전 창조 세계로 확장된다. 우리는 이 모든 동일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방식들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이다.

c) 따라서 사랑의 관점에서 우리의 신념과 헌신을 세우는 가운데 우리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힘든 성경적 도전을 떠맡고 있다:

● 우리의 마음과 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서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 (외국인들과 적을 포함하여)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하라.
●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이 구원받게 하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하라.

d)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의지로 복종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러한 사랑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내 가운데 강건하나 겸손함 가운데 온유하고 악에 대해 끈질기게 저항하나 고통에 대해 긍휼 가운데 부드럽고 고통 가운데 용기가 있으며 죽음에 직면해서도 굳건하다. 이러한 사랑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서 모델로 나타났으며 영광 가운데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포괄적인 성경적 사랑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보증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증한다. 예수님의 기도와 명령에 대한 응답 가운데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 될 것을 열망한다. 슬프게도 우리는 너무 자주 그렇지 못함을 고백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하나님에 대한 사랑, 서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가운데 걷는 것의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려는 모든 노력을 하기 위해 새롭게 우리 자신을 재차 헌신한다.

2.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주권적인 뜻과 구원의 목적에 따라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유일하며 영원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성경 가운데 계시하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연합 안에서 하나님 홀로 창조자이며 지배자이며 심판자이고 세상의 구세주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 세계 안에 우리의 위치에 즐겁게 감사하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복종하고 그의 공의를 확신하며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구원을 영원히 찬양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

a)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신들, 즉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들을 좇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변질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맘몬을 섬기며 탐욕과 권세와 성공이라는 우상에 현혹되어 혼합주의에 빠지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해 비판하지 않고 지배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념들을 수용하고 있다. 우리는 종교 다원주의의 압력에 굴복하여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타협하라는 유혹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과 같이 우리는 예언자들과 예수님의 회개에의 요청을 듣고 다른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 한 분만 전적으로 사랑하고 예배하도록 돌아와야 한다.

b)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을 다해 그를 사랑한다. 우리의 선교의 최상의 동기는 하나님 자신의 선교-우리의 참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은 온 피조 세계를 통해 알려지며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를 이끌어 가는 것과 동일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야만 한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만일 하나님이 예수님 앞에 모두 무릎을 꿇고 모든 입술이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우리는 (성경이 때때로 사용하는 것처럼) 그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최선의 열심’(jealous)을 내야만 한다-그것이 드러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며 그것이 도외시될 때 상처를 받으며 그것이 우상숭배로 나타날 때 분개하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경외와 영광을 돌리는 것을 항상 열망하며 단호한 태도를 나타내게 된다. 모든 선교적 동기들 가운데 최상의 것은 지상대위임령(중요하기는 하지만)에 대한 복종도 아니고 소외되고 멸망하는 죄인들에 대한 사랑(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숙고해 보면 그러한 자극은 강력하다)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열망, 불타는 열정적인 열망이다. 이러한 기독교 선교에 대한 최상의 목표 앞에 모든 무가치한 동기들은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시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슬픔인 것이 틀림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공격적인 무신론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세계 종교들로 대체되고 그들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대중문화 가운데서 왜곡되고 잘못 진술되고 있다. 그리고 성경적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기독교 명목주의와 혼합주의, 그리고 위선에 의해 퇴색되고 있다.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왜곡하는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은 당신에 대한 담대하지만 겸손한 증거를 요청하고 계신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에 대해 강건하지만 은혜로운 증거, 성령의 죄를 깨닫게 하시며 확신케 하시는 사역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다. 우리는 그러한 증거를 위해 우리 자신을 헌신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우선적 관심을 함께 나누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이름과 말씀이 모든 것들 위에 높임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3.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그리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를 통하여서만-우리는 아버지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된다.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을 통해 증거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따르며 “우리 아버지”라고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그 기도를 따라 기도한다. 예수님께 순종하므로 입증되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아버지와 아들이 상호간의 사랑의 교통 가운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처럼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는 심오한 성경적 근거를 갖는다.

a) 우리는 그의 백성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아버지, 즉 그들의 존재의 근거가 되시며 그들을 인도하시고 훈련하시며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들의 사랑을 열망하시며 긍휼이 넘치는 용서와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에게 진실한 것이다.

b)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어 주신 아버지의 사랑은 어떻게 측량할 수 있는가? 독생자를 주신 아버지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신 아들의 사랑으로 반영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뜻의 완전한 조화가 나타났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다.” 예수님 자신에 의해 분명히 확증된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은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영광이 영원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반복한 바울의 문안 인사에 반향 된다. 

c) 우리는 우리가 닮아가려는 성품을 보여 주시며 우리가 신뢰하려는 돌보심을 베푸시는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의 행동을 위한 모델이나 초점으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반복하여 제시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피스메이커들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선행 행위들을 하므로 우리 아버지가 찬양을 받으신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반영을 통해 우리의 원수들을 사랑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시각으로 우리의 베풂과 기도와 금식을 실천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듯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만 한다. 우리는 근심하지 말고 우리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신뢰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이러한 행위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대한 진리를 무시하고 그분과 우리의 관계의 풍성함을 깨뜨린 것을 고백한다. 우리는 아들 예수를 통해 아버지에게 오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응답하며 아버지의 훈계에 복종하며 살아가고 우리의 모든 행위와 태도에서 아버지의 품성을 반영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섭리를 신뢰하기 위해 새롭게 우리 자신의 헌신을 다짐한다.

4. 우리는 아들이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께서는 전심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 분만 홀로 구세주이며 주님이시고 하나님이심을 끊임없이 확증한다는 의미이다.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서 동일하게 주권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심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역사를 지배하시는 분이시고 열방들을 심판하시는 심판자이시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든 이들의 구세주이시다. 그 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신적인 동등성과 본성 가운데 하나님의 본성을 공유한다. 하나님께서 계약적 신앙과 복종과 종의 증거 가운데 자신을 사랑하라고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복종하며 전파하므로 그 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한다.

a)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뢰한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듯이 열방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가져오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지명되고 보냄 받은 메시아라는 복음서의 증거를 믿는다.

●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취하셔서 온전한 하나님과 온전한 인간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 예수께서는 그의 생애 동안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실함과 순종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다. 그 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가르치셨으며,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친히 보여 주셨다.
● 예수께서는 사역과 기적을 통해 마귀와 악의 권세를 누르는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선포하셨고 보여 주셨다.
● 예수께서는 그의 죽으심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형벌과 수치를 당하시므로 우리의 죄 값을 온전히 치르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죽음과 악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모든 피조물의 화해와 구속을 성취하셨다.
● 예수께서는 그의 육체적인 부활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 입증을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셨으며 구속된 인류의 모본이 되셨으며 만물을 회복하셨다.
● 예수께서는 그의 승천 이래 주님으로서 모든 역사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
●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고 사탄과 악과 죽음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이루실 것이다.

b) 우리는 그리스도께 복종한다. 예수께서는 우리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종으로서 복종하며 그를 따르라고 우리를 제자직으로 부르신다. “만일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여, 주여 부르느냐. 내가 말한 것들을 행하지 않느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셨던 것처럼 살아가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계명을 무시하면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행위이다. 예수께서는 화려하고 기적적인 사역으로 그의 이름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악을 행하는 자들이며 그 분에 의해 거부될 것임을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경고를 유의한다. 왜냐하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러한 무시무시한 위험에서 면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c) 우리는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온전하고도 궁극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그리스도 한 분만을 통하여 세상의 구원을 성취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제자로서 나사렛 예수의 발아래 무릎을 꿇으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도마의 고백을 하게 된다. 비록 우리가 그 분을 볼 수는 없으나 그 분을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그의 재림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한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는 베드로와 요한의 고백을 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들에 복종하며 살아간다면 그러한 증거를 담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가르침을 담지하기 위해 새롭게 우리 자신을 헌신한다.

5.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연합 가운데 그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에 대한 증거를 담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성령을 사랑한다. 그는 하나님의 선교적 교회에 대한 생명과 능력을 불어넣는 선교적 아버지와 아들의 선교적 영이다. 우리는 성령을 사랑하며 그의 임재를 위해 기도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증거가 없이 우리 자신의 증거는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죄를 깨닫게 하는 사역이 없는 우리의 설교는 헛되다. 성령의 능력 없이 우리의 선교는 단지 인간적인 노력일 뿐이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 없이 우리의 시시한 삶은 복음의 아름다움을 반영할 수 없다.

a)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창조와 해방과 정의의 사역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섬김을 위해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능력을 부여하는 가운데 활발하게 역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에게 인격과 사역을 부여하실 왕과 종의 오심을 고대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삶과 참신한 복종을 요구하는 그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나타날 도래할 시대를 고대했다.

b) 오순절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의 성령을 부어주셨다.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은 신자들의 삶에 그의 열매를 맺게 하시며 그 첫 열매는 항상 사랑이다. 성령은 그의 은사들과 선교를 위한 능력, 그리고 다양한 섬김의 사역들로 교회를 충만하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선포하고 제시하며 진리를 분별하고 올바로 기도하고 어두움의 세력들을 제압할 능력을 주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가운데 박해를 받거나 시련을 당했던 제자들을 강하게 하시고 평안을 주신다.

c) 따라서 선교에 참여하는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없이는 초점을 상실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것은 선교의 모든 차원들인 복음 전도 진리에 증거를 담지하는 것, 제자 삼기, 평화를 이루는 것, 사회참여, 윤리적 변혁, 창조 세계에 대한 돌봄, 악한 세력들을 제압하는 것, 악한 영들을 쫓아내는 것, 병자들을 치유하는 사역, 박해 가운데 고통을 참아 내는 것에 있어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성령에 의해 능력을 부여받아야만 한다. 신약성경은 초대교회의 삶과 사도들의 가르침 가운데 이것을 명백히 보여 준다. 오늘날 이러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신뢰와 기대를 가지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확고하게 행동하는 교회의 열매와 성장 가운데 드러나고 있다.

성령의 인격과 사역과 능력 없이는 참되고 온전한 복음도 없고 진정한 성경적 선교도 없다. 우리는 전 세계에 산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성경적 진리에 대한 보다 놀라운 각성이 일고, 그것이 실재적으로 경험되어지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이름을 가장한 많은 기만들을 깨닫는다. 그것들은 (신약성경에 나오듯이) 성령의 표지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들의 표지들을 담고 있는 모든 현상들이다. 보다 심오한 분별력과 기만에 대한 명백한 경고들, 자기 자신들을 경건치 못한 재물 추구를 위해 영적 능력을 오용하는 부정하고 자기중심적인 자들을 드러내기 위한 절실한 필요가 요청된다. 무엇보다도 참된 복음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며 거짓된 복음을 파악하고 거부하는 신자들을 구비시킬 겸손한 기도로 무장한 견고한 성경적 설교와 가르침이 절실히 요청된다.

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우리는 “내가 주의 말씀을 정금보다 사랑하나이다. … 얼마나 내가 주의 율법을 사모하는지요”라고 고백하는 시편기자의 기쁨을 반향하는 신구약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고 인간 저자들을 통해 선포되고 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온전한 성경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행위를 지배하는 최상의 유일한 권위로서 성경을 따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의 말씀의 능력을 입증한다. 우리는 성경이 그 이상을 능가하는 어떤 다른 계시가 아니라 종국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증한다. 또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조명하므로 모든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참신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한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a) 성경이 계시하는 인격. 우리는 신부가 편지 자체가 아니라 그 편지를 통해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을 담고 있는 남편의 편지를 사랑하는 것처럼, 성경을 사랑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 인격, 목적과 행위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계시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근본적 증거이다. 성경을 읽으며 우리는 놀라운 기쁨 가운데 그의 영을 통해 그를 만난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다.

b) 성경이 말하는 이야기. 성경은 창조, 타락, 역사 안에서의 구속, 새 창조에 대한 우주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분명한 성경적 세계관을 제공하며 우리의 신학을 형성한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복음의 핵심을 구성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최고의 구원 사건이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이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우리의 선교를 이끌며 마지막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확증한다. 세대를 걸쳐 전해지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억과 소망을 형성하며 그들의 복음 증거의 내용을 지배한다. 우리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성경을 알려야만 한다. 그 이유는, 성경의 메시지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반적으로 구술적이거나 문맹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문화와 언어 가운데 성경을 번역하고 반포하며 가르치는 지속적 과제에 우리 자신의 헌신을 재차 다짐한다.

c) 성경이 교훈하는 진리. 온전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온전한 권고, 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기 원하시는 온전한 진리를 교훈한다. 우리는 성경이 입증하는 모든 것들이 참되며 확실한 것으로 성경에 복종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거짓될 수 없으며 오류가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구원의 길을 계시하기에 분명하고 충분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모든 차원들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기초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기만하고 거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많은 문화들이 어떤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거나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하는 지배적인 상대주의를 나타내고 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사랑한다면 성경의 진리 주장들에 대한 변증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모든 문화들 가운데 성경의 권위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노력의 일환으로서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위해 힘쓰는데 우리 자신을 헌신할 것을 재차 다짐한다.

d) 성경이 요구하는 삶. “말씀이 네 입이 있고 네 마음에 있으므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과 야고보는 단지 말씀을 듣는 자들이 아니라 행하는 자들이 되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성경은 신자들과 신자들의 공동체를 나타내는 삶의 질을 묘사하고 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 시편 기자들, 예언자들과 이스라엘의 지혜로운 자들, 예수님과 사도들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찬양과 신실한 삶 안에 결합된)정의, 긍휼, 겸손, 청렴성, 정직, 진실함, 성적 순결함, 관용, 친절, 자기부정, 환대, 피스메이킹, 보복하지 않음, 선을 행함, 용서, 기쁨, 자족과 사랑을 포함하는 이러한 성경적 생활양식을 배운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삶-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값진 실천적 복종의 삶-을 사랑함이 없이 쉽게 성경을 사랑한다고 주장한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복음만큼 변혁된 삶을 감동적으로 명령하는 것은 없으며, 개인적 모순에 대해서 그렇게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값진 것이며 거룩한 삶을 통해 복음의 아름다움을 고양하므로 그 복음의 ‘광휘’를 나타내는 태도 가운데 행동할 임무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우리는 복음을 믿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헌신을 재차 다짐한다. 성경적 삶이 없이 성경적 선교는 있을 수 없다.

7.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사랑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창조 전반에 걸쳐 그의 섭리와 공의 가운데 즐거워하며, 모든 피조물과 모든 열방에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이 이 땅에 가득 찰 그날을 고대하며 그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을 공유한다.

a)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사랑한다. 이 사랑은 (성경 어디에서도 명령하지 않은 것으로서) 자연에 대한 단순한 감상적인 애정이 아니며, (성경이 분명히 금하고 있는 것으로서) 범신론적 예배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돌보므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논리적 결과이다. 이 땅은 우리가 사랑하고 복종하는 하나님의 소유이다. 우리는 가장 단순하게 이 땅을 돌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주님으로 부르는 그 분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은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고 지탱되고 구속된다. 우리는 창조와 구속과 상속의 정의에 따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들을 남용하는 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우리는 세속적인 세상의 원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이 땅을 돌보고 그 풍성한 자원들을 책임적으로 사용한다. 만일 예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라면 우리는 이 땅과 연관된 우리의 행동 방식과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분리할 수 없다.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것이기에 이 땅을 포함하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조물을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안에서 복음의 이슈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지구상의 자원들을 파괴하고 허비하며 오염시키는데 일조하며, 소비주의에 대한 해악적 숭배에 공조한다는 것에 대한 회개이다. 그보다도 우리는 긴박하고도 예언자적인 환경적 책임을 완수하는 데 우리 자신의 헌신을 다짐한다. 우리는 환경적 옹호를 특별한 선교적 소명으로 깨달으며, 하나님의 창조의 풍성함으로부터 인간의 필요들을 제공하고자 하는 위임을 경건하게 성취하는 데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을 지지한다. 우리는 성경이 창조 자체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 통전적 선교는 복음이 개인들과 사회와 피조 세계에 대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분별하고 선포하며 살아 내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과 사회와 피조 세계 모두는 죄로 인해 깨어지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모두는 구속적 사랑과 하나님의 선교에 포함된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포괄적 선교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

b) 우리는 세상의 나라들과 문화들을 사랑한다. “한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이 땅 곳곳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 나라들을 만드셨다.” 종족적 다양성은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것이 타락한 분열과 적대감에서 해방될 때 새 창조 가운데 보전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이 땅의 모든 열방들을 축복하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반영하며 그를 위해 모든 족속과 언어와 나라와 백성들을 부르라는 하나님의 선교를 반영한다. 우리는 모든 문화들을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축복하려고 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선교는 토착 문화와 언어를 보호하고 보전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경건한 사랑은 모든 문화들이 인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의 긍정적 증거를 보여줄 뿐 아니라 사탄의 부정적인 지문들과 죄의 표지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비판적 분별을 포함한다. 우리는 모든 문화들을 안에서부터 구속하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광채의 충만함을 보여 주는 모든 문화들 안에 구체화되고 각인된 복음을 보기를 열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성 안으로 허입된 구속되고 모든 죄가 씻기므로 새 창조를 풍요롭게 하는 모든 문화들의 풍요로움과 영광과 광채를 고대한다.

모든 백성들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인종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악을 거부하고 창조와 구속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가치의 근거 위에서 존엄과 존경으로 모든 종족과 문화를 대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문화 가운데 복음을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어떤 나라도 지상대위임령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복음 전도는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혀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사용하기 위해 로잔운동의 출발부터 고취된 헌신을 새롭게 다짐한다.

c) 우리는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과 고통 받는 자들을 사랑한다. 성경은 주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계시며, 억압받는 자들을 위하고 계시고 국외자들을 사랑하시며 굶주린 자들을 먹이시고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신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은혜로운 행위에 헌신한 사람들을 통해 그러한 일들을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특별히 이 사회의 정치적이거나 법적 리더십의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그러한 책임을 부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율법과 예언자들, 시편과 지혜서들, 예수님과 바울, 야고보와 요한에 의해- 실천적인 사랑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반영하는 명령을 받았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자비와 긍휼의 행위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것들을 드러내고 반대하는 행위를 통해 정의를 행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악이 존재하는 곳마다 악과 불의를 고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열정을 공유하는 데 실패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데 실패하며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하는 데 실패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부끄러움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들을 대신하는 연대성과 옹호를 포함하여 정의를 촉진하는 데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받친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끊임없는 기도 가운데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를 통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영적 전쟁의 차원으로서 악에 대항하는 이러한 영적 전투를 인식한다.

d) 우리는 우리의 몸과 같이 우리 이웃들을 사랑한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두 번째 위대한 명령으로서 이 계명에 복종하라고 제자들에게 요청하셨지만, (같은 장에서) “너 자신처럼 국외자를 사랑하라”는 요구에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요구로 심화시키셨다.

이웃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가운데 복음의 심정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응답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웃 사랑은 타종교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포용하며 우리를 미워하고 비방하며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에게 확산된다. 예수께서는 예수께로 사람들을 이끌고 악의 사슬을 부수기 위해 진리로 거짓을 대항하며 친절과 자비와 용서의 행위로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항하고 자기희생으로 그의 제자들을 반대하는 폭력과 살인에 대항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폭력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보복의 유혹을 비난한다. 이러한 불복종은 그리스도와 신약성경의 본과 가르침에 모순된다. 동시에 우리의 고통당하는 이웃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의무는, 잘못된 자들에게 벌을 가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종들로서 역할을 하는 법적인 권위와 국가적 권위를 갖고 있는 자들에게 적절한 호소를 하므로 그들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
 
e)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세상.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세계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인간의 세상과 사탄의 반역의 세상이 되어 갔다. 우리는 죄악된 욕망과 탐욕과 인간적 오만을 드러내는 그러한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확하게 그러한 세상성의 표지들이 너무 자주 우리 그리스도인의 현존을 손상시키고 복음의 증거를 부정하는 것을 슬픔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타락된 세상과 세상의 덧없는 열망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온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새롭게 우리 자신의 헌신을 다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피조물과 모든 문화들의 구속과 갱신을 거룩하게 열망하며 땅 끝까지 이르도록 모든 열방들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모든 파괴와 빈곤과 증오를 불식시키는 가운데 세상을 사랑한다.

8.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사랑한다.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복음의 사람들이다. 우리의 정체성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라는 성경적 기쁜 소식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다. 우리는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경험과 모든 가능한 수단을 통해 땅 끝까지 이르러 은혜의 복음을 알리려는 우리의 동기에 의해 연합된다.

a) 우리는 추악한 소식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기쁜 소식을 사랑한다. 복음은 인간의 죄와 실패와 필요에 대한 비참한 결과들을 제기한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반역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이러한 죄악된 상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서로 소외를 시켰으며 창조 질서로부터 소외되었다. 죄는 하나님의 유죄판결을 받을 만하다. 회개를 거부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파괴의 형벌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격리될 것이다. 죄의 결과와 악의 권세는 인간성의 모든 차원들(영적, 신체적, 지적, 관계적)을 부패시켰다. 그것들은 전 문화와 전 역사를 통해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삶에 스며들었다. 그것들은 인간에게 셀 수 없는 비참함을 야기했으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해를 가했다. 이러한 황폐한 상태에 반하여 성경적 복음은 실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b) 우리는 복음이 말하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복음은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인 기쁜 소식으로서 선포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인 약속된 메시아이며 왕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의 왕국을 확립하셨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듯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열방들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세상의 구원을 위해 행동을 취하셨다. 바울은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고, 묻히셨으며, 성경에 따라 제3일 만에 부활하시고 베드로와 12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며 복음을 진술한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의 아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으시려 하나님 자신이 못 박히신 것을 선포한다. 동일한 위대한 구원의 행동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죽음과 모든 악의 권세를 물리치고 결정적인 승리를 하셨으며 우리는 사탄의 권세와 두려움에서 해방하셨고 그들의 궁극적 파멸을 확증하셨다. 그 분은 모든 장벽들과 반목들을 넘어서 하나님과 믿는 자들과의 화해와 그들 서로 간의 화해를 이루셨다. 또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의 궁극적인 화해의 목적을 이루셨고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 가운데 새 창조의 첫 열매를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세상과 화해시키셨다.” 우리가 얼마나 복음 이야기를 사랑하는지!

c) 우리는 복음이 확증하는 것을 사랑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므로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를 인정받았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고 더 이상 비난(condemnation)에 직면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죄의 용서를 받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나누므로 산 소망 가운데 거듭났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들로 양자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시민들,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하나님의 처소에 거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므로 우리는 온전한 구원과 영생의 확증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역사와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우리가 복음의 약속을 사랑하는가!

d) 우리는 복음이 초래하는 변혁을 사랑한다. 복음은 세상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삶을 변혁하는 능력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믿음만이 축복과 복음의 확증이 부여되는 수단이다.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은 혼자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복종 가운데 반드시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의 복종은 “사랑을 통하여 표현되는 믿음이다.” 우리는 선한 행위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룬 은혜와 그리스도의 재림의 빛 안에서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은혜-의 역사로서 이루어지는 윤리적 변혁을 보았다. 바울에게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은혜를 신뢰하는 것이고 은혜에 의해 교훈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바울의 선교적 목표는 모든 열방들 가운데 “믿음의 순종”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강한 언약적 언어는 아브라함을 상기시킨다. 아브라함은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의 믿음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순종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와 순종은 복음이 요청하는 첫 번째 순종의 행위들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지속적인 순종은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통해 복음적 믿음이 할 수 있는 생활방식이다. 따라서 순종은 구원하는 믿음의 생생한 증거이며 생생한 열매이다. 또한 순종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시험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얼마나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사랑하는가!

9.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 창조의 시민들로서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거룩하게 하신 모든 세대들과 온 열방들에서 온 백성들이다.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리고 우리의 거칠고 반역적인 전 역사를 통하여 사랑하신 백성들인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자들이 되며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희망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계명이다. 그러한 사랑은 복음에 대한 순종의 첫 번째 증거이며 세계 선교의 유력한 동력이다.

a) 사랑은 연합을 요청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그의 계명은 그들이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는 그의 기도와 연결된다. 이 계명과 기도는 선교적이다.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당신(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알 것이다.”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확신하는 표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고질적인 분열의 장벽들-인종과 피부색, 사회계층, 경제적 특권이나 정치적 노선의 장벽들을 넘어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될 때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 가운데 이와 똑 같은 분열들을 드러내고 확대할 때 나타나는 것처럼 몇 가지 분열의 양상들이 우리의 증거를 파괴한다.

우리는 우리를 나누는 모든 것들을 버리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그러한 장벽들 가운데 우리는 전 세계적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수치스러운 극단적인 물질적 불평등으로 심히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모든 이들을 위한 상호관계와 충족함이 있어야만 된다는 바울의 교훈과 열망을 부정한다. 우리는 때때로 선교를 위한 우리의 열망에 해독을 끼치는 경쟁을 규탄한다. 우리는 세계 곳곳의 교회들 안에 선교를 위한 가능한 자원들의 불균형 양상을 개탄한다. 우리는 모든 대륙을 가로질러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심오한 상호간의 사랑과 겸손한 동반자 협력에 근거한 새로운 글로벌 균형을 긴박하게 추구한다. 또한 우리는 말로만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행위로 나타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 이것을 추구한다.

b) 사랑은 정직을 요청한다. 사랑은 은혜와 더불어 진리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예수님 자신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언약의 주님에 대항하여 실패하고 우상숭배하며 반역한 사실에 대하여 그들보다 더욱 솔직하게 직면했던 사람들도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회개를 요청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의 선교를 섬기도록 회복될 수 있었다. 동일한 예언자적 사랑의 음성이 동일한 이유로 오늘날 선포되어야만 한다.

그러한 사랑의 정직성은 우리가 회개하는 가운데 겸손과 정직함과 희생적 단순성이라는 경건한 방식들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탄원한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 지도자들을 유혹하는 오만과 거짓된 성공과 소비주의적 탐욕이라는 우상숭배들을 거부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세상-필사적으로 예수께 인도해야 할 세상-으로부터 우리가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손상하며 그의 아름다움을 덮는 추악함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므로 인해 슬픔으로 고통을 겪는다.

c) 사랑은 연대성을 요청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특히 믿음과 복음증거로 인해 박해를 박고 감옥에 갇히는 자들을 돌보는 것을 포함한다. 만일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들이 고통을 당한다. 사도 요한과 같이 우리 모두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전을 더욱 챙기면서 우리의 박해받는 형제자매들과 사랑의 연대성을 항상 보여주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정보와 기도, 그리고 옹호와 다른 후원 수단들을 통해 전 세계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신자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헌신을 다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동정을 베푸는 것이 아닌 나눔을 보며, 고통받는 교회가 교훈을 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배우려는 열망을 본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부유함과 자기만족감 가운데 편안하게 느끼는 교회는 예수께서 보시기에 자신의 헐벗음을 가장 깨닫지 못하고 문 밖에 서 있는 낯선 손님처럼 느끼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는다.

예수께서는 그의 모든 제자들이 열방들 가운데 한 가족이 되는, 즉 모든 죄악 된 장벽들이 그의 화해케 하시는 은혜를 통하여 깨어지는 화해를 이루는 친교로 부르신다. 이러한 교회는 성령의 교통 가운데 있는 은혜와 순종과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러한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속성들과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특성들이 반영되고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가 드러난다. 하나님의 왕국의 가장 명백한 현재적 표현으로서 교회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해 살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구세주를 위해 살아가는 화해를 이룬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사랑한다.

우리는 세계 선교에 헌신한다. 그 이유는, 세계 선교가 하나님과 성경, 교회와 인간 역사와 종국적인 미래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온전한 성경은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화해를 이루시는 그리스도 아래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하기 위해 하나님의 선교를 계시한다. 자신의 선교를 성취하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죄와 악으로 파괴된 창조 세계를 더 이상 죄나 저주가 없는 새 창조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이 땅의 모든 열방들을 축복하신다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흩어진 분열된 열방들을, 모든 종족과 열방과 방언과 언어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구세주를 찬양하려고 모이게 될 새로운 인류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생명과 공의와 평화의 영원한 통치를 하시려 다시 오실 때, 죽음과 부패와 폭력의 통치를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런 다음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세상의 왕국은 우리 주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것이며 그는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다.

a) 하나님의 선교에의 참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교를 나누시려고 그의 백성들을 부르신다. 모든 열방들로부터 온 교회는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지속적인 관계를 갖는다. 그들과 더불어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부름을 받았고 열방들에 대한 축복과 빛이 될 위임을 받았다. 그들과 더불어 우리는 죄와 고통의 세상 가운데 성결함과 긍휼과 정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형성되고 교훈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구속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증거를 담지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 교회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역사 안에서 변혁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선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교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의 창조 전반을 다루며, 그 중심으로서 십자가의 구속적인 승리에 근거한다. 이것은 우리가 속해 있고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과 우리가 공유하는 선교를 함께 하는 백성들이다.

b) 우리의 선교의 대가. 예수께서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란 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가르치신 것을 친히 본으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 대부분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의 생명을 내어놓으려고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예수님의 사도들과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로서 우리의 선교적 참여의 한 형태이다. 기꺼이 고통을 받으려는 것은 우리의 선교의 진정성을 위한 고통스러운 시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교의 진보를 이루시려고 고통과 박해와 순교를 사용하실 수 있다. “순교는 특히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약속하신 증거의 한 형태이다.”

c) 우리의 선교의 청렴성. 우리의 모든 선교의 자원은 성경에 계시된 것처럼 온 세상의 구속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것이다. 우리의 복음 전도 과업은 모든 열방이 그 기쁜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선교의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즉 죄와 고통과 불의와 창조질서의 파괴로 가득 찬 세상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러한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우리를 보내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선교는 복음 전도와 세상에의 참여가 통합된 형태를 반영한다. 하나님의 복음의 온전한 성경적 계시는 복음 전도와 세상에의 참여를 명령하고 이끌어 나간다.

“복음 전도 자체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오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므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는 시각과 함께 구세주이며 주님이신 역사적이고 성경적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이다. … 복음 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 그의 교회에의 허입, 그리고 세상에서의 책임적인 봉사를 포함한다. … 우리는 복음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확증한다. 이 둘은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우리의 교리들,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인 표현들이다. … 우리가 선포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전체성 가운데 우리를 변혁시켜야만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통전적 선교(integral mission)는 복음의 선포와 복음의 증명이다. 그것은, 단순히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나란히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삶의 영역들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회개하라고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것처럼, 통전적 선교 안에서 우리의 선포는 사회적 중요성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변혁하는 은혜에 대한 증거를 담지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회참여는 복음 전도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무시한다면 세상을 섬기라고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가져갈 아무 것도 없게 된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회개, 믿음, 세례, 그리고 복종적인 제자직으로 부르시면서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복음을 모든 열방에게 알게 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긍휼이 넘치는 돌봄을 통해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쓰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왕국의 가치와 능력을 드러내 보여 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대한 응답과 그 분에 대한 우리의 넘치는 사랑의 표출을 통해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함과 기쁨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에 완전히 순종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재차 헌신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과의 이 언약을 갱신한다.  


제2부
우리가 섬기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의 행동서약

케이프타운 서약 2부는 제3차 로잔대회와 전 세계 글로벌 링크 참가자들에 의해 제시되는 특정한 요청들과 분석들을 포함할 것이다. 제2부는 2010년 11월 말에 완전히 출판될 것이다.

번역: 최형근 교수(서울신학대학, 선교학박사, 국제로잔 동아시아 지역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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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
(122.XXX.XXX.180)
2010-12-02 06:58:38
제2부의 전문도 기대합니다. ^^
감사합니다.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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