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호 권서, 첫사랑을 메고 떠난 사람들]

#무야곱 선교사
제이콥 로버트 무스 선교사는 조선에서 25년 동안 선교사로 일한 뒤 다시 조국인 미국으로 떠났다.

야곱 선교사는 1893년 결혼한 뒤 곧 미국감리교회의 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무엇보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방방곡곡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조선의 고을은 고개와 고개 사이에 펼쳐졌는데, 야곱 선교사는 고개를 오를 때면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올라야 했다. 조선말로 자전거란 ‘스스로 가는 기계’라는 뜻인데, 그는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더운 여름날 긴 경사로를 올라가본 적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 자전거 덕분에 그가 당도한 고을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구경거리를 보러 나왔는데, 그러면 모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를 보십시오. 내가 말하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모두 나에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야곱 선교사는 조선의 백성들이 짐과 쉼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랬다. 조선 사람들은 지게에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오갔다. 여인네들은 머리에 짐을 이거나, 등에 아이를 업었다. 어린 소녀들도 어린 동생을 등에 업었다. 그러니 짐을 내리고 쉬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초청을 조선인들보다 더 잘 이해할 사람들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말한 짐이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죄의 짐이라는 것, 오라고 하신 분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란 걸 설명했다.

야곱 선교사는 지난 25년 동안 조선에서 보낸 시간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했다. 푸르디푸른 시간들이 그 세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선교사로서 모든 일을 마치고 떠나기 전 그는 동역자로 함께해온 사람들과 이별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사람들이었다. 박씨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그날 밤 자신이 나누고 싶은 말의 서두를 꺼냈다.

“내가 자전거로 조선의 땅을 여행할 때마다 제 옆에는 부지런히 걸으며 함께 다니는 분이 계셨습니다. 권서 전도자들이었습니다.”

야곱 선교사는 동역자로 일한 권서의 행적을 꼼꼼하게 일기에 기록했는데, 그중 몇 곳을 펴서 읽기도 하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윤승근이라는 신도를 기억합니다. 처음 윤씨를 보았을 때 그는 신분도 보잘것없었고 무식했으며 타락한 인생을 산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윤씨가 복음을 듣자마자 받아들였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 공부해서 곧 권서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지요. 신약성경이 처음 완역되었을 때 윤씨가 그것을 받아들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책을 받자마자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큰 도포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네요. 윤씨는 말씀을 잘 읽기도 했지만 잘 기억했어요. 장과 절을 정확하게 기억해서 별명이 ‘걸어다니는 성경색인’이었어요. 윤씨와 시골을 함께 여행하며 복음을 전할 때 그가 얼마나 열심히 말씀을 전하는지, 그걸 보는 게 저의 기쁨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윤씨를 볼 때마다 그가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이 하도 진지해서 저와 많이 비교가 되었지요. 그래서 나도 더욱 분발해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는 했습니다.”

박씨는 야곱 선교사가 일기장을 넘기면서 권서 윤씨에 대해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흥의 때에 윤씨도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 무렵 그가 폐결핵으로 병석에 누워 있던 게 기억나는군요. 윤씨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저와 함께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요. 몸져누운 윤씨는 불면증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자신이 미처 고백하지 못한 죄나 뉘우치지 못한 죄가 없나 싶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느라 잠을 못 이룬다 했지요. 어느 날 또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 생각이 나더랍니다. 마땅히 베풀어야 할 사랑을 아내에게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옆방에서 잠자는 아내를 깨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남은 삶을 다하여 사랑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답니다. 그 후 윤씨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요.”

그 이야기를 듣던 정 목사가 빙그레 웃었다. 윤씨와 비슷한 회개를 한 과거 때문이었다. 그는 한때 야곱 선교사와 함께 다니며 권서로 일하다가 지금은 목사로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야곱 선교사가 정 목사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맞아요. 그러고 보니 정 목사님도 나쁜 남편이었지요? 기억나요. 사모님이 돌아가신 뒤 저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하셨지요. 아내를 위해 단 한 가지라도 해준 게 떠오르지가 않는다고, 물 한 모금 준 기억도 없다고….”

“그랬지요. 아내가 설날에 죽었는데,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못 보내게 되었다고 저주까지 했지요. 예수님을 모를 때, 제가 그런 인간이었지요.”

정 목사가 야곱 선교사의 기억을 보충하여 예수님을 알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못난 인생을 살았는지 또 고백했다. 다시 야곱 선교사가 분위기를 바꾸면서 말했다.

“여러분, 정 목사님이 양반 신분이라 언문 성경을 뿌리치고 한문 성경을 읽은 거 아세요? 그런데 정 목사님이 한때 제 조선어 선생님이셨답니다.”

이번에는 다들 ‘저런!’ 하는 투로 정 목사를 바라보는데 누군가 “조선어가 아니라 중국어를 배운 게 아니냐”고 묻자 또 웃음보가 터졌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정 목사님이 조선어는 안 가르치고 틈만 나면 기도를 하시는 바람에 애를 먹었지요. 공부시간 중에도 대화가 끊어지기라도 하면 어느새 바닥에 꿇어 엎드려 기도를 하셨다니까요. 저는 그때마다 이분이 얼마나 신실하게 가르침을 실천하는지를 알 수 있었지요.”

박씨는 야곱 선교사와 함께 전도여행을 다닌 적은 없었으므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몇 차례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때마다 박씨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복음이란 이런 것이지.’ 그러면서 복음에만 집중하자고 거듭 다짐했다. 찌뿌드드한 마음 한쪽이 비로소 개는 듯했다.
 
#바람
오월의 연둣빛 잎들이 햇살에 빛났다. 계곡을 넘으면 곧장 마을이 시작될 것이다. 계곡 위로 큰 귀룽나무가 낭창거리는 가지들을 늘어뜨렸으며, 바람이 일 때마다 빼곡한 꽃들이 일렁거렸다. 절경이다. 나지막이 말하며 박씨는 등짐을 잠시 내려놓은 뒤 계곡 물로 얼굴에 맺힌 땀을 씻어냈다.

마음에 굵은 상처가 난 듯 쓰라린 이야기를 토해내던 사내의 눈매가 떠올랐다.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섰을까? 사내는 말을 하면서 자주 어금니를 다물었다. 그때마다 눈매는 가늘어져 먼 세월을 향하는 듯하였다. 시름 깊은 세월을 살아오며 사내는 마음의 빗장을 더 단단히 여미어 완고하였다.

박씨는 성경을 사서 읽어 보시라 권했으나 사내는 오히려 우리 것을 상실한 채 뿌리 없는 나무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대를 우려하였다. 지금은 못난 우리 것이라도 지켜야 할 때라고 강조하였다. 사내의 말 속엔 지식인의 고민이 느껴졌다.

“이 민족의 자존감을 훼손하여도 좋다는 말이오? 우리가 오랜 세월 마음을 담아 지켜온 우리의 풍습을 하나씩 앗아갔소. 지금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내 것의 가치를 되찾는 것이외다. 내 것이 비록 천하고 불편하고 미개해보이더라도 그것이 단지 내 것이라는 이유로, 내 아비와 조상이 물려준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외다. 상투 하나 붙잡고 있는 것이 무슨 대수겠소마는, 그럼에도 그것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것이외다. 이는 한 인간의 기상이고, 얼이기 때문이오.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오. 모든 새 것은 그것을 하루아침에 내려놓는다 하여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외다.”
“…….”
“그만 물러가시오. 나는 선생의 이야기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직 없소이다.”

박씨는 그렇게 사내로부터 물러났다. 보름 전이었다. 사내는 박씨에게, 아니 이 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하는 듯하였다. 그리 쉽게 내어주고 놓아버린 어떤 것이 실은 누군가에게는 기상이고 얼이지 않으냐고.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제 입장에서 너무 쉽게 놓아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에게 그리 소중한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쓸모없어 보이더라도 두 번, 세 번 고쳐 생각하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라고도 생각했다.

그럴수록 더욱 복음에 집중하였다. 복음이라면 그들의 상실감과 상처까지 품어낼 것이라고 믿었다. 박씨는 지난 며칠 동안 깊은 묵상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에 이르렀다. ‘복음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이야말로 만국의 인간을 품는 참 어미의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우리를 보고, 상처 난 데를 싸매야 한다.’

구독안내

이 기사는 유료회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 온라인구독 회원은 로그인을 해주시고 인증 절차를 거치면 유료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월 1만 원 이상), 온라인구독(1년 5만 원) 회원이 아니시면 이번 기회에 〈복음과상황〉을 후원, 구독 해보세요.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