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호 권서, 첫 사랑을 메고 떠난 사람들]

서른여덟 살의 박정찬(朴禎燦)은 오갈 데도, 물러서거나 내려앉을 데도 없는 처지였다. 마치 야곱의 얍복 나루 같은 자리에 처했다. 부유하던 집안은 ‘족징’(族徵), 곧 관원이던 일가붙이가 횡령을 하는 바람에 그 피해를 대신 물게 됨으로써 급속히 기울었다. 비록 말단이었으나 젊은 나이에 관직도 가진 그였으나 그 모든 것이 한때의 춘몽으로 스러졌다. 설상가상 가족이 괴질에 걸려 죽어간 데다, 아비를 부당하게 구금한 관원을 피습하고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 바닥 같은 자리에서 박정찬은 하나님을 만났다.

박정찬은 마포삼열(사무엘 마펫)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뒤 평양 남문밖교회 교인으로 곧 권서의 일을 시작했다. 평양 서북지역들 그러니까 순안, 숙천, 안주, 박천, 영변, 맹산, 강동, 은산, 순천 등지에서 2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성경과 복음서를 팔았다. 1907년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박정찬은 1945년 광복을 얼마 앞두지 않은 때에 삶을 마감하기까지 청주 서울 마산 대구에서 목회하였고, 시베리아 선교사로 두 차례나 다녀왔으며, 나중에는 만주의 용정과 길림에서 목회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난 해 가을에는 독립운동을 도운 일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서른여덟 살에 복음을 받은 이후 46년 동안의 인생 후반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사람이다. 그 46년 삶의 시작은 권서의 일이었고, 평생의 삶 또한 권서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평생 권서의 마음으로 살았단 사람 박정찬. 그가 살아낸 권서의 마음이란 대체 어떤 빛깔, 어떤 향기를 지닌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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