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호 백투더클래식]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시작해서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을 지낸 특이한 이력의 작가 정현민의 사극 <정도전>이 몇 달간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다. 이 드라마가 많은 인기를 누린 데에는 “정치엔 선물이란 없네, 나중을 위해 주는 뇌물만 있을 뿐” 등의 촌철살인과 같은 대사가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도전’이라는 정치가에게서 나는 사람 냄새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배 시절 사상적 벗이자 스승인 삼봉 정몽주에게 받은 《맹자》를 읽으며 개혁을 꿈꾸던 정도전은 서민들이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일생일대의 대전환을 맞는다. 그리고 그는 이성계와 함께 민초들이 살갗으로 느낄 수 있는 토지문제, 즉 인권에 본의를 두고 새 나라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민본’(民本)이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에게 있으며, 나라를 통치하는 힘은 권력을 가진 소수가 아닌 모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민본 사상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2항에 명시되어 있듯이 오늘날 대한민국도 이런 민본 사상 위에 세워졌다. 영화 <변호인>의 유명한 대사처럼 국가란 국민이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복음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이사야 61장 1절의 말씀처럼 복음은 가난하고, 상하고, 포로 되고, 갇힌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기쁜 소식이다. 약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 선포된 복음, 그리고 한반도에 뿌려지고 싹튼 복음은 가지지 못한 자, 배우지 못한 자, 헐벗은 자 등 모든 이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한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이며, 소수의 지배층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차별 없이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된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그 백성들을 통치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샬롬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민본 사상과 통하는 면이 있다. 한국 교회가 낳은 탁월한 교육자이며 기독교 사상가인 김교신(1901-1945)은 이와 같은 ‘민본 복음’을 이 땅에 온 몸으로 꽃피우려 한 사람이었다. 김교신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정도전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민본 기독교’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김교신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어 그러한 삶을 통해 형성된 신앙관을 조명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각별한 유산을 헤아려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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