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호 커버스토리]

더 수치를 당하고 견뎌야 할 때
1년 여 전 어느 공중파 방송의 유명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제법 영향력이 큰 그 프로그램 담당자는 여러 경로로 출연 압박(?)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로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저와 친분 있는 분들을 통해 은근히 권면해오기도 했습니다.

여러 차례 거절을 하니까 프로그램 담당자는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말로 저를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 큰 교회 목사님들이 사고치는 이 때 그렇지 않은 목사님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면 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때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나 같은 피라미가? 그것도 한국교회 선교에 도움이 된다고?’ 여러 모로 애쓰시는 그 담당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다시 정중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수치를 당할 때입니다. 목사 한 사람이 나가서 칭찬 들을지는 모르지만, 이 수치를 역전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수치를 견디고 기다리면, 나중 우리 자녀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다시 부흥의 기회를 주실지도 모르지요.”

당시 제가 그 방송 프로그램에 나갔다면, 저희 교회는 성도가 더 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무너짐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 한 사람이 칭찬을 들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체 개신교인을 향한 비난과 비판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지금 한국교회 전체가 당하는 이 수치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 수치를 당하고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섣불리 나서지 말고 재를 뒤집어 써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갱신이든 부흥이든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겼습니다.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의 지탄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은 듯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견뎌야 하는 수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아픈 이야기지만 더 수치를 당하고 견뎌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중요한 전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부흥과 성장의 시기를 경험한 이들이 그 열매를 독차지하고, ‘아 옛날이여~’를 말하며 이제는 자기들만의 기득권에 갇혀 버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가시적인 부흥의 열매가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갱신하는 동력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개념도 모호한 신본주의 타령에 머무는 수준인 교회는 가시적인 성장의 열매를 움켜쥐고 이를 복음인양 결사 수호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 사이 복음의 진리는 내팽겨쳐 바닥에 나뒹굴며 짓밟히고 있습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이 가져온 부작용인 생명경시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가 교회 안으로 별다른 저항없이 들어와 그대로 자리를 잡아갑니다.

따라야 할 진리의 말씀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 부끄럽다는 수치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부끄러움은커녕 적대감을 품습니다. 내부의 문제를 외부의 문제로 둔갑시키고 도리어 그들을 비난합니다. 교회의 문제에 왜 세상이 개입하느냐고 언성을 높입니다. 적대감은 더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어찌 현상황이 속히 나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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