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호 시사 프리즘]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
녹아내린 전화박스와 사물함, 매연으로 시커멓게 그을린 벽, 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속을 답답하게 하던 독한 매연가스, 그리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여기저기 앉아있던 유가족들, 벽과 바닥을 온통 덮어놓았던 망자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들. 그것은 2003년 2월 18일, 화재가 발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에서 본 중앙로역의 모습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참사 현장이 텔레비전 뉴스로 보도되는 것을 보고 무작정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대구 중앙로역을 찾아갔었다. 역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사랑하는 이를 보내버린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들로 빼곡히 덮여있었다. 그 사연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 가던 중 갑자기 벽 한가운데서 툭 튀어 나온 듯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두 단어가 있었다. 

“600원짜리 화장터.”

당시 대구 지하철 승차권 가격이 600원이었는데, “600원짜리 화장터”라는 두 단어가 던져주는 거대한 중압감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다른 한편에 붙어 있는 자못 성격이 다른 대자보를 보게 되었다. 거기엔 “대구 시민 두 번 죽이는 조해녕 시장 물러나라~ 물러나라~”라는 내용의 글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과격해 보이는 내용이었다. 

순간 그 어느 때보다 시장과 시민들의 손발이 가장 잘 맞아야 할 때에 왜 이런 대자보가 붙었는가 의문들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역 주변을 둘러본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그것은 유골 확인이 채 마무리 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성급히 화재 현장을 물청소하고 유해 작업을 마무리했던 대구광역시 당국의 무성의를 넘어선 비인간적인 처사 때문이었다. 더욱이 시 당국에 의한 대대적인 물청소는 바로 고위 공직자의 대구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직 누가 죽었는지 실종된 가족의 시신도 찾지 못했는데, 고위 공직자가 방문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가족의 것일 수 있는 그 재들을, 뼈들을 물로 다 치웠다는 것이다.

“대구 시민 두 번 죽이는 조해녕 시장 물러나라”는 붉은 글씨로 쓰인 과격한 대자보의 사연에 대해서 알고 나니, 중앙로역 여기저기가 다르게 보였다. 그 전까지는 “딸아 사랑해~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해!” “보고 싶은 엄마! 부디 편하게 쉬세요”라는 심금을 울리는 사연만 보였다면, 이제는 여기저기에 전시되어 있는 중앙로역 물청소 현장 사진과, 이후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사체들과 유골, 유품들의 사진들도 눈에 들어왔다.

만약 그 지하철에 시장의 부인이나 딸이 타고 있었다면, 아마 모든 경찰과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유골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상처 입은 유족들, 시민들을 치유해도 모자랄 지도자와 그가 섬겨야 할 시민들 간 ‘소통의 부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과 대구시민들의 가슴에 또 한 번의 상처를 던진 것은 아닐까. 

굳이 12년 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회 문제에 관심은 많았지만 그때까지 삶의 반경이 집-학교-교회가 대부분이던 “성실한 교회 리더 언니이자 누나”였던 내가, 책을 통해서가 아닌 사회 속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관념적으로만 알던 나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에서 만난 “600원짜리 화장터”라는 문구를 통해 비로소 사회문제와 접속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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