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호 커버스토리]

   
▲ "지금 주어진 일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지 싶다." (사진: 성낙희 제공)

지난 여름, 배낭 하나에 허리 높이 크기의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갔다. 이스라엘 행이었다. 자원봉사 비자를 받아 이스라엘 스데보케르(Sde-Boker)에서 지냈다. 주위에는 온통 광야뿐이라 끝없는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해질녘 광야를 걷다 보면, 거대한 빌딩숲과 원색의 간판들이 떠올랐다. 한국의 그것들은 광야와 대비되어 아른거렸다. 직장 적응에 실패하고 취업이 좌절된 그때, 빌딩과 간판 들조차 나를 주눅 들게 했었다.

광야 언덕에 올라서서 지는 해를 보고 있으면, 한국에서의 그 자의식을 잊을 수 있었다. 사회적 위치나 지적 경제적 자격지심 따위에서 자유로웠다. 눈을 들면 드넓은 광야가 보였고, 바위에 앉아 망중한을 누릴 수 있었다.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일하며 제한된 기간보다 더 지낼 수 있는지 관리자에게 몇 번을 물어봤다. 가능하다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오랫동안 거기 머물고 싶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8시간 일하고 밤에는 숙소에서 성경을 읽었다. 주말에는 예루살렘을 자주 다녔다. 성분묘교회 앞에 있는 2단짜리 계단에 앉아 빵을 뜯어먹거나, 그곳을 드나드는 순례자들을 관찰했다. 10분 사이 100명 넘는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그들은 나에게 직업이 뭔지, 돈은 많이 버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묻지 않았다.

이스라엘 행을 결정하기까지 신문사, 공장, 전자상가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전자상가에선 배달을 했다. 겨울날 눈을 맞으며 수레를 끌다 보면, 눈 녹은 물에 발이 젖어서 아프게 걸을 때면, 지난날 조금 배부르던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됐다. 얼마나 더 소외 노동을 해야 하는지, 평생 이런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오가다 멍해지곤 했었다. 누구나 잘 먹고살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고,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뉴스에서는 종종 정치인, 기업인 자녀의 부당취업 소란이 보도되곤 했다. 이상하게도 부럽기보다 별 느낌이 없었다.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몰입하여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오히려 부러웠고, 그저 ‘좋은 자리’를 얻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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