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호 커버스토리]

한국 기독교 재구성에 대한 공감대
2009년 8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출범하기 반 년 전 치러진 ‘성서한국 전국대회’는 느헤미야 출범에 중요한 모멘텀이었다. 당시 개혁주의 신학교라 자부하던 모 신학교의 재단이사장이 바뀌면서 이상 조짐이 있었고, 그 신학교 재직 교수들을 중심으로 성서한국 전국대회의 주강사가 꾸려지던 시점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복음주의권에 신선한 충격과 도전이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신학자 그룹을 묶을 기회가 필요했다.

교단에 매이지 않는 신학교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새로운 형태의 신학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지는 충만했다. 그해 늦가을부터 이런 논의가 급속도로 전개되어, 같은 해 11월 13일 박득훈, 김동춘, 권연경, 김형원, 김근주, 전성민, 구교형, 고상환 등이 (가칭)대안신학연구원 설립을 위한 집담회를 통해 명칭과 구체적인 준비를 하여 박득훈 목사를 준비위원장으로 하는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확인한 것은, 기존 신학교가 교단이나 특정 권력에 매여 운영됨으로써 바른 신학을 가르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목회자 양성만을 위한 신학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자유로운 학문 활동을 위해 교수들이 외부 인사들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구조를 갖추고, 일반 성도들에 대한 교육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 이름을 느헤미야라는 상징성 있는 성경 인물로 명명하기로 했다. 그에 더해 기존 아카데미와는 달리 일정 기간 정해진 공부 과정을 이수하는 학교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래서 첫 과정으로 수업 연한 2년인 ‘기독교학 입문과정’이 2010년 3월에 시작되었다.

느헤미야 출범 당시 한국 기독교 상황에 대한 진단을 놓고 과연 리모델링 수준으로 개혁해서 살릴 수 있을지 설왕설래가 있었다. 우리 준비위원 모두는 그 수준에서 더 나아가 아예 재구성(Re-construction) 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21세기 이후 한국 기독교는 사회적으로 존경은커녕 비난받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 결과가 급격한 기독교인 수 감소와 교회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젠 응급조치 정도가 아니라 교인들의 근본적인 의식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고, 이를 위한 새로운 신학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는 교수들과 운동가들의 결합으로 느헤미야가 설립됐다. 절묘하게도 이는 시대적인 부름이었고, 느헤미야는 비전을 ‘하나님나라 구현과 한국 기독교의 재구성’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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