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호 표지]

‘보신’(保身)은 말 그대로 ‘자기 몸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는 뜻입니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는 옳고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보신’에서 나온 ‘보신주의’(保身主義)라는 말은 완전히 부정적인 뜻으로 역변합니다. “개인의 지위나 명예, 무사안일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적인 경향이나 태도.”(<표준국어대사전>)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점증하는 테러 위협, 예측불가한 환경 변화, 깊어지는 빈부격차, 공고화해가는 양극화 등 요즘 같은 세상에선 저마다 제 한 몸 ‘보신’하는 것도 벅차게 여겨집니다. 이기적인 ‘보신주의’가 두루 퍼져가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커버스토리 주제를 놓고 씨름하던 기획회의 테이블에서 ‘자기 영역에서 스스로 보신을 잘하면서 다른 이들 또한 잘 보신하도록 북돋는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마침 한여름을 지나는 시기라 편집팀도 ‘보신’(補身)하는 의미에서, 무겁지 않고 기운 얻을 만한 이야기를 찾아보자 한 뜻도 있었지요.

흥미로운 건 커버스토리 필자 네 분 가운데 세 분이 자기만의 영역을 일구어가는 여성 리더(설립 단체의 현직 대표)로,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즐겨 일하는 이들이라는 점입니다. 애써 찾지 않았음에도 맞춤한 필진이 술술 꾸려지는 일이 흔치는 않기에, 이럴 땐 “이거 재밌는데 정말!”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잘 노는 게 힘”이라는 신조를 지닌 박진숙 에코팜므 대표는, ‘1년에 한 달 안식월(유급)’ 제도를 통해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직원들도 더불어 보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최근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는 책이 나와 잔잔한 충격을 주고 있다. 막상 이렇게 직설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시민단체 간사들은 많지 않다. 대표든 직원이든 고마운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오래 일하려면 충분히 놀 시간을 주어야 한다.”(28쪽)

고등학교 진학 전 1년의 ‘안식년’을 통해 큰아이뿐 아니라 온 가족이 보신한 이수진 꽃다운친구들 대표 이야기는,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씨름하고 고심하는 모든 부모들이 귀 기울일 만합니다. ‘참된 보신이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전쟁도 불사하려는 국가주의의 결기를 내려놓고 세상의 모든 연결된 존재를 위한 평화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문아영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대표의 글은 정치권의 졸속 사드 배치 논란 상황에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벌써 수개 월 째 급여를 제대로 못챙긴 상황에서도 작은 공연·전시 공간이 필요한 문화예술인들과 연대하려는 김지언 카페바인 대표는 ‘자기 보신’보다 ‘타자 보신’ 혹은 ‘상호 보신’을 더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줘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커버스토리를 비롯해 이 달에 차려낸 보신용(保身用) ‘글차림’이 모든 벗들에게 보신(補身)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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