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호 3인 3책] 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지음 / 코난북스 펴냄 / 16,000원

영화〈1987〉을 보고 나니 시간이 엉킨 느낌이다. 분명 2018년인데, 온오프라인에 1987년이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다. 저마다 ‘나’와 ‘1987년’을 애틋하게 소환하는 가운데 ‘최루탄 던지는 대학생 언니오빠’들을 까닭 없이 미워했던 나조차도 그 6월의 광장에 함께 있었다고 우기고 싶을 정도로 1987년은 대단했다. 그렇다면 나의 동생 세대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들에게도  그저 ‘사극’ 같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1987년은 정확히 30년 후 2017년에 다시 펼쳐지기 때문이다. 다시 군부 독재를 맞이하며 미완의 승리로 끝났던 1987년은 2017년에 와서야 비로소 ‘위대한 역사’로 완결된다.

지난 30년 동안 두 번이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낸 ‘우리’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30년 동안 ‘우리’는 나아진 건가? 삐딱한 질문을 하게 된다. 1987년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성장했다. 일시적으로 군사정권이 연장되긴 했으나,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어갔다. 사회문화의 성장도 눈부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는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94년과 1995년에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라는 건물들이, 1997년에는 경제가 붕괴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아들이며 사회문화는 말할 것도 없이 일상마저 신자유주의체제로 빠르게 편입되었다. 2007년에 세계금융위기마저 겪으며 그 체제는 견고해졌다. 민주주의는 ‘경제 대통령’과 ‘독재자의 딸’을 앞세운 정권을 맞이하며 결정타를 입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지난 30년 동안 이어진 ‘87체제’가 꾸준하게 붕괴 또는 침몰해 온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987〉과 언젠가는 영화로 제작될지도 모를 〈2017〉의 ‘승리’가 과연 승리로만 기록되고 기억될 일일까? 그렇다면 그 승리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며 《IMF 키즈의 생애》를 읽었다. ‘IMF 키즈’란, 80년대에 태어나 IMF 외환위기 당시 10대를 보낸 2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는 세대를 일컫는다. 따지자면 87세대의 자식들이다. 이 책은 IMF 키즈 당사자이기도 한 저자가 비슷한 세대 7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엮었다. IMF라는 공통의 사회적 경험이 이들에게 어떻게 체화되었는지 생애를 탐구했다.

왜 이들의 생애를 주목해야 할까? 인터뷰 대상자 중 한 명인 김재욱은 IMF를 소재로 쓴 자신의 소설에 이렇게 썼다. “1997년의 해법은 여전히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이 말처럼, 1997년이라는 분기점은 그 이후 세대의 삶과 미래를 바꾸어 “움직이는 방식뿐 아니라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마저, 가능성을 셈하는 시야마저 규정하고 내면화시켰”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앞서 서술한 ‘1987년’과 ‘2017년’을 관통하는 승리의 기억과는 배치된다. 이를 단지 세대 차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 어긋남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책이 “시대감각을 나누는 기능”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2017년에 우리는 분명 위대한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1987년과 2017년을 그저 승리로‘만’ 기억하고 이후로 어떤 사회를 이루어갈 것인가에 관한 고민과 감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 승리는 결국 ‘정신승리’ 이상의 역할을 못 할 것이다. 87체제가 두 번 광장의 승리를 경험하는 사이 ‘88만원 세대’는 어느새 ‘77만원 세대’가 되었고, ‘IMF 세대’의 동생들은 ‘세월호 세대’가 되어 불가능성을 체화하고 침몰을 내면화했다. 그 다음은 어떤 ‘세대’가 기다리고 있을까?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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