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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 할머니, 그리고 오늘 우리
[329호 동교동삼거리]
[329호] 2018년 03월 26일 (월) 11:43:22 옥명호 편집장 goscon@goscon.co.kr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무명천 할머니’(표지사진) 생가를 가보신 적 있나요?

3만 명이 희생당한 제주4·3 와중에 35세의 진아영 씨는 턱에 총탄을 맞고 쓰러집니다. 그날의 총격으로 55년 남은 생애 동안 턱이 유실된 얼굴을 무명천으로 싸매고 살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아영 씨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지요. 이웃집에서 커피를 타줘도 잔을 들고 나가 혼자 마셨다지요. 홀로 사는 집은 100미터 앞 친척집을 갈 때도 방문과 바깥문까지 열쇠로 잠갔다지요. 누가 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겨우 부지하는 목숨조차 강탈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꼭꼭 걸어잠갔다지요.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는 그렇게 스스로 ‘섬’이 되게 했습니다.

총탄에 잃어버린 게 신체 일부뿐이었을까요. 모진 목숨 이어가는 삶은 또 어떠했을까요. 말을 할 수 없게 돼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졌고, 씹을 수 없으니 소화불량에 영양실조를 달고 살았답니다. 온몸에 찾아오는 고통을 눅이려 병원과 약국 가는 일 외에는 딱히 외출도 없었고요. 날품을 팔거나 바다에서 톳을 채취하거나 마당에 키우는 선인장 열매를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지요.

고향 마을인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를 근 50년 만에 찾아갔을 때는 그 끔찍했던 순간이 떠올랐던 지, 알아들을 수 없으되 깊고 오랜 고통에 찬 절규가 터져나왔습니다. 공포에 찬 기억을 온몸으로 쏟아내더니 굳어가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했습니다.

2004년 9월 8일, 할머니는 향년 90세로 그 혹독한 생을 마감합니다. 생가에는 온갖 약들과 함께 일평생 4·3의 상처를 감추던 무명천이 남아 있습니다. 긴긴 세월 할머니는 왜 그토록 깊은 육체적 고통과 생의 궁핍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을까요? 유폐당한 삶처럼 그토록 외롭고도 척박하게 살아야 했을까요? 할머니에게 제주4·3은, 미군정 발표처럼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이었을까요? “제주도민 90%가 좌익”이었을까요? 무명천 할머니를 떠올리면 한 인간의 생애와 그를 둘러싼 시대와 역사는 과연 어떤 의미인지 묻고 또 묻게 됩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제주4·3을 우리는 오랫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제주는 제3의 세계가 아니며, 4·3은 오늘 우리와 무관한 역사가 아닙니다. 진아영 할머니의 생애를 비극에 빠뜨린 역사이며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마 16:26)의 참혹한 죽음을 보며 하나님도 피눈물 흘리신 역사이자 우리가 새기고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은(창 8:1; 9:15) 지난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라 하셨습니다.(출 13:3)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미래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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