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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로 그려지지 않기 위하여
악어 프로젝트 / 토마 마티외 글·그림 / 맹슬기 옮김 / 푸른지식 펴냄 / 2016
[329호] 2018년 03월 28일 (수) 11:05:10 오수경 goscon@goscon.co.kr
   
 

서지현 검사의 고발을 계기로 연극계를 비롯한 예술계, 영화계, 언론계, 학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미투(#MeToo)’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종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천주교 신부가 여신도를 성폭행했다는 고발이 나왔고 개신교에서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주관으로 ‘교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진행했다. 누군가는 이어달리기하듯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는 고발에 새삼 놀라겠지만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의 당사자이자 목격자인 여성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현실이다. 없던 일이 생겨난 게 아니라 이미 차고 넘쳐 터진 것이다. 이런 여성들의 용기가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종교) 권력 관계 안에서, (남성의 생물학적) ‘본능’에 의해 구축된 카르텔을 부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하며 《악어 프로젝트》를 읽었다. 프랑스 만화가 토마 마티외가 친구들과 네티즌에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관한 경험담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고, 그 경험담을 그림으로 그린 그림책이다. 거리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 직장, 집 등 일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수치와 모욕과 위험을 감내하며 사는지 군더더기 없이 담았다. 읽다 보면 그림이 묘사한 상황이 익숙해서 놀라기도 하지만 우리가 동경하는 유럽도 한국 상황과 다르지는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생면부지 해외 여성들에게 묘한 연대 의식이 생기기도 한다. 이 책은 “세상이 이렇게 위험하다”는 현실을 환기하는 데 머물지 않고 ‘대응 전략’까지 꼼꼼하게 담았다.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목격자나 당사자의 친구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사건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세심하게 조언한다. 이 대응 매뉴얼은 언제든 써먹기 위해 반복해 읽었다.

이 책에서 곱씹을 또 하나의 특징은 남성을 ‘악어’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남자는 다 흉악한 짐승이란 거냐?!”며 불쾌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주로 남성이 힘이나 권력을 가진 ‘포식자’로 존재할 때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을 상기하자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은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는 중립적 태도 대신 다양한 인간의 얼굴을 한 피해자, 여성의 입장에서 읽기를 권한다. 특히 성폭력 문제에서 중립은 문제 자체를 무력화할 뿐 아니라 가해자의 얼굴을 감추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이 ‘빼박’ 악어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악어’는 탈피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악어’로 묘사된 남성에 관해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이렇게 해석했다. “남자의 얼굴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악어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여자의 얼굴 속에서 남자를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여자들은 남자의 얼굴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아왔다. 그러니 남자도 여자의 얼굴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지 못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미투운동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폭력적 일상을 부수고 더 나은 세상을 구축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여성들의 폭로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악어’를 탈피하고 함께 세상을 바꾸고자 ‘인간’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동료가 될 수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쏟아지는 폭로를 경청하거나 《악어 프로젝트》와 같은 책을 읽으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그래야 용기를 낸 이들에게 “그때 왜 싫다고 안 했어?” 따위 헛소리는 적어도 안 할 수 있을 테니까. 내게 이 책의 주제는 미투운동과 의미가 같다. 우리 모두 인간의 얼굴을 갖자는 것.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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