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호 사람과 상황] ‘성 이야기’ 하는 사람 심에스더 성교육 강사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구조의 문제다. 텔레그램 ‘n번방’이 온 나라를 달군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당수가 미성년자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 n번방을 만든 ‘갓갓’ 또한 범행 당시 미성년자였으리라 추측된다. 최근 인터넷 채팅 메신저 ‘디스코드’에서 아동 성착취물을 유포한 이들 대다수가 미성년 남성이었고 채널 운영자 가운데 한 명은 범행 당시 초등학생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들의 성착취물 제작·유통·소비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였던 ‘웰컴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와 단톡방에 불법촬영물을 올리고 소비했던 유명 연예인들의 범죄와 맥을 같이한다. 이는 미성년자들만의 문제도, 어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 사회의 총체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다. 여성의 신체를 자본화하는 시장, 사실상 성착취를 방치하는 디지털 플랫폼의 운영방침, 플랫폼과 디지털 장의사 간에 이루어지는 은밀한 공모, 법 제도의 미비, 이를 개선하려는 정치 집단의 의지 부족. 이 모든 것이 n번방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의 주요 원인이다. 

이에 못지않게 우리 사회가 시급하고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실제적인 성교육 부재에서 기인한 ‘왜곡된 성인지 감수성’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음지에서 일탈적으로 다뤄지는 성의 접근은 많은데 비해, 공교육 차원에서조차 성에 대해 실제적이고 입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수한 성적,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춘 채 부차적으로만 다뤄지는 인성 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n번방’ 관련 후속 보도가 이어지던 지난 3월말, 10여 년째 수많은 학부모·학생들과 소통하며 ‘성 이야기’를 전해온 성교육 전문가 심에스더 씨를 만나 n번방 사건과 성교육 현실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일방적 전달의 느낌이 있는 ‘성교육’이라는 표현보다 소통의 의미를 담은 ‘성 이야기’라는 표현을 선호하여 자신을 ‘성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소개해왔다. “성은 ‘일상’의 문제이며 성을 왜곡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 이야기는 ‘일상’에서 자꾸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작년말 그간의 성교육을 바탕으로 유쾌한 성 이야기를 담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공저·오마이북)을 펴냈다. 인터뷰는 3월 31일 사당역 인근에서 있었다.

   
▲ ⓒ복음과상황 정민호


‘n번방 사건’을 처음 접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일단 가장 먼저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났어요.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디까지 사람을 이용하고 도구화할 수 있을까 싶었죠. 저는 이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기 전부터 관련 기사나 보도로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구역질이 났어요. 그 일을 겪었을 여성들과 동일시되는 부분도 있어서 힘들었어요. 언론 보도를 보기조차 싫었지만, 이 현실을 마주하는 것도 연대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기사들을 다 읽었죠. 관련 다큐멘터리도 보고. 

플랫폼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사건들이 너무 많이 있었는데요. 
이번 일을 ‘n번방’ 사건으로만 보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얼굴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정신적, 정서적 존재로서 말 한마디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쿨하게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또 인간은 도구가 아니고 돈이나 다른 물질로 맞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교육이 필요해요. 

‘악마의 삶을 청산하게 해주어 감사한다’는 조주빈의 말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피해자들이 아닌 유명인들에게 사과를 했잖아요.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남성, 힘이 있는 사람들을 거론해서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의식하든 못하든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특별한 사람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영웅이고, 자기의 서사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 같은 거죠. 좀 웃기기도 하더라고요.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도 함께 올렸는데, 실제로 성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심지어 그런 정보를 조작해서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죠. 
실제적인 게 더 자극적이니까요. 지금의 성은 쉬쉬하고 터부시되는 대상인데, 그럴수록 더 자극적으로 그려지죠. 평범하고 일상적인, 다양한 성의 모습들을 접할 기회가 없으니, 일탈적인 걸 보여주면 그게 기본 값이 되는 거예요. 나중엔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요. 포르노라든가 섹시한 몸짓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연기구나 가짜구나 생각이 드니까, 내 옆에 있는 실제적인 걸 보고 싶은 거죠. 더 리얼한 것이 더 야한 것이라는 편견을 주변을 통해 쌓기도 하고요. 성관계 불법 촬영물의 경우, 상대방을 믿고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낸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자기의 성적 욕구와 만족을 위해서 소비해버리는 거죠. 

   
▲ "이번 일을 ‘n번방’ 사건으로만 보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얼굴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정신적, 정서적 존재로서 말 한마디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쿨하게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또 인간은 도구가 아니고 돈이나 다른 물질로 맞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교육이 필요해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체포되기 전 어느 인터뷰에서 “나한텐 이게 사업 모델”이라는 말을 했죠. 실제로 n번방이 폭파되자 “돈을 내고 콘텐츠를 이용한 건데 억울하다”는 n번방 이용자의 글도 읽었는데요. 
성 인식과 성 담론의 부재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돈이 인간보다 가치 있어지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가지려는 마음, 이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이 뒤엉켜서 인간이 인간을 서로 착취하고 있잖아요. 그 속에선 당연히 약자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고요. 여성의 몸은 성차별과 성적 대상화가 전제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돈을 버는 수단으로 취급당하기 쉽죠. 그러다 보니 여성과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를 두고서도 ‘돈을 내고 이용하는 콘텐츠’라는 식의 사고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도 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채팅방에 자극적인 영상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을 영웅시하는 문화가 있었죠. n번방을 두고 ‘실현될 수 없는 극대화된 남성성이 구현된 공간’이라는 논평도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성성이 뭘까? 그게 진짜 남성성일까? 힘 있는 사람들이 환상을 심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마치 남성성이 가져야 할 액세서리나 값비싼 명품처럼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남성들에게 묻고 싶어요. 그런 남성성을 취하고 싶은 건지, 취하고 싶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갖춰야 한다고 배우는 ‘여성성’ ‘남성성’이 사실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가 근래 많이 나왔잖아요. ‘성별다움’은 이 사회에서 무리 없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고 생각해요. 이전까지 여성은 여성다워야, 남성은 남성다워야 사회에서 무리 없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죠. 그러나 앞으로는 지금 사회의 흐름처럼 고민을 해야죠.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정말 세상에 딱 이 두 개밖에 없는지. 이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실현될 수 없는 극대화된 남성성은 실현될 수 없는 게 맞고, 그러니까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 그 남성성은 틀렸다는 거죠.

그런 남성성을 갈망하는 심리는 뭘까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바틀비)를 쓴 박신영 작가가 출판 인터뷰에서 그런 얘길 했어요. 불법촬영물을 찍고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공유하고 낄낄거리는 사람들은 성적인 행동이나 자극적인 섹스의 경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으로 생각한다고.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전리품처럼 다루면서 자기 힘을 과시한다는 거죠. 예전엔 말로만 떠들어대며 과시했는데 지금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로 근거를 남길 수 있게 된 거예요. 기술의 발전은 준비되지 않은 인격을 지닌 인간에겐 재앙이죠. 슬픈 얘긴데,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어요. 여성들의 시체가 쌓인 언덕 위에 남성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요. 

   
▲ "이전까지 여성은 여성다워야, 남성은 남성다워야 사회에서 무리 없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죠. 그러나 앞으로는 지금 사회의 흐름처럼 고민을 해야죠.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정말 세상에 딱 이 두 개밖에 없는지. 이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실현될 수 없는 극대화된 남성성은 실현될 수 없는 게 맞고, 그러니까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 그 남성성은 틀렸다는 거죠." ⓒ복음과상황 정민호

실제로 박신영 작가는 종종 남성 신체를 찍은 사진을 받는 것으로 협박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남성의 성은 누군가를 겁줄 수 있지만 여성의 성은 그것을 빌미로 협박을 당할 수 있죠.  
맞아요. 신체를 드러내도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존재하죠. 그건 밤거리를 활보할 수 있고 두려워하지 않고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힘과 연결이 되고요. 20대 남성들이 ‘역차별이다’ 하는 얘기도 기성 남성 권력자들이 분배하지 않은 힘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성별 싸움 프레임’에 갇혔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남성들은 적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잖아요. 저는 아들들에게도 통금을 얘기하라고 부모님들께 말해요. 여자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말이죠. 약자들에게 더 불편한 세상을 만들면 안 되잖아요. 피해에 노출된 사람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지, 가해자의 위치에 자주 서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되는 세상은 굉장히 게으르고 악한 세상이죠. 

‘내가 그랬냐? 모든 남성에 대한 가해자 몰이 하지 말라’는 선긋기식 반응도 적지는 않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악마와 자기를 동일시했던 조주빈처럼, 의외로 남성들이 ‘모든 남성=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문제를 성별 싸움으로 가져가는 건 남성들이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교회에서 성 강의를 할 때 이런 예시를 들어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인식이 안 좋은데, 그들이 ‘개독교’라고 비판할 때 성도님들은 “난 그런 기독교인 아닌데 왜 나한테 그래?” 하시냐고.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겠습니다” 하잖아요. 그런데 왜 성범죄 문제에서는 선긋기를 할까요? 그런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어떤 부분에서 자기를 분리하지 못하고 어떤 부분이 겹치고 자꾸 찔리길래 강한 부정을 하는 것일까, 되묻고 싶어요. 물론 실제로 여성들도 가해자가 될 수 있죠. 그런데 ‘성범죄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고, 대부분의 가해자가 남성인 걸 보니 여성들이 참 두렵겠다. 남성인 나도 내면화된 부분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종류의 성폭력에 노출이 되니까 안심할 수가 없는 건데 말이에요. 
우리가 크게 한번 놀란 경험이 있으면 그 비슷한 것만 봐도 놀라게 돼요. 트라우마죠. “대다수 여성들이 성범죄 피해의 경험이 있고 나도 그래. 그리고 26만 명 혹은 그 이상의 남성들이 이런 걸 봤대. 내 주변 남성들이 그럴 것 같아서 두려워”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비빔밥 먹다가 체한 적이 있어서 비빔밥 먹기가 좀 그래” 하는데 “이 비빔밥은 그 비빔밥이 아니야!”하는 것과 같은 거죠. 왜 그런 식으로 선긋기를 하는 걸까요? 우리는 두려움이, 트라우마가 있으니 배려해 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이건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저는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거리를 두고 보면 타인에 대해서 여유 있게 공감할 수 있어요.

중복 합산한 결과 텔레그램 이용자 수가 26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요. 
그 정도 수치로도 보편화, 일반화해서 얘기할 수 없다면 대체 몇 명 정도 돼야 많은 남성들이 그렇다는 걸 받아들일까요? 여성을 대상으로 성추행이나 성차별 경험을 물어보면 80% 이상 남성에 의한 피해 경험이 있다고 말해요. 대다수 남성이 가해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다수 여성이 남성에 의한 피해 경험이 있다는 얘기죠. 나 한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다수가 그런 경험을 했다면 함께 아파하면서, 남성이라는 사실에 경각심을 느끼고 성 불평등한 가치관으로 인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 아닐까요? 그 정도 상식만 있어도 ‘역차별’ 운운 하면서 편협함을 드러내진 않을 텐데요. 밥 굶는 사람을 보면 가슴 아파하면서, 왜 코앞에 명확히 드러나는 성범죄, 성차별 문제는 자꾸 꼬리 자르기하거나 성별 싸움으로 몰아가는지…. 그게 참 아쉽고 안타까워요. 그렇게 얘기할수록 그들의 편협함이 드러나는 거죠.

   
▲ "교회에서 성 강의를 할 때 이런 예시를 들어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인식이 안 좋은데, 그들이 ‘개독교’라고 비판할 때 성도님들은 “난 그런 기독교인 아닌데 왜 나한테 그래?” 하시냐고.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겠습니다” 하잖아요. 그런데 왜 성범죄 문제에서는 선긋기를 할까요? 그런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자신은 여성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여성을 도구화한다, 차별한다는 얘기를 자꾸 들으면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개개인으로 들어가면 층위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힘 있는 사람들이 발언권을 갖고 법을 만들고 영향을 끼치잖아요. 역사적으로 그 존재가 남성이라는 거죠.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좋아하고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라고 봐요. 힘 있는 사람은 그런 걸 인식할 필요가 없죠. 물론 그들도 힘든 게 있을 거예요. 이 사회가 남성에게 요구하는 더 과도한 경제적 책임과 삶의 무게가 있어왔으니까요. 하지만 임금 차별 없이 성 평등한 세상이 온다면 여성이 남성을 책임지고 살아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여성의 신체가 상품화될 일도, 여성의 몸으로 돈을 벌 이유도 사라질 것 같아요. 
여성의 신체를 자원화하고 거기에 가치를 매기는 사회니까 ‘일탈계’(SNS에 자신의 신체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계정)도 생겨나는 거죠. 수요가 있고 힘의 논리가 들어가는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몸과 성이 상품이 되고 돈이 된다는 것도 내면화했고요. 거기에 사진을 올린 아이들이 문제가 있고 당할 만했다는 관점을 접하면서 어디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싶어요. 왜 그 아이들이 자기 몸을 드러내서 돈을 벌려하고 애정을 구하게 되었는지는 고민하지 않잖아요. 찬사와 애정, 다른 이익을 위해서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협박과 강간을 당하고 비인간적으로 유린당하는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인가요? 서로 엄연히 다르다는 걸 구별할 수 있어야 해요.

‘내 딸이라면 그 근처에도 못 가게 제대로 교육했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는데요.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는 고치지 않으면서 정작 착취당하는 대상들이 조심해야 한다, 교육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현실 자체가 누구에게 힘이 있는지 보여주는 거죠. 내 딸이면 제대로 교육하겠다는 건 이 땅의 모든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걸 인정하는 말이에요. ‘난 그런 남자 아니야’ 하면서도 ‘남자는 다 늑대야’ 말하는 건, 자기 외에 그런 남자가 많다는 얘기잖아요.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고 인정하는 셈이죠. ‘세상에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는 문화가 만연하니까 일단은 조심하자. 그런 세상이 이어지게 만든 아빠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렇게 사과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교육이 먼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바꾸기 위해서 정말 이를 악물고 애써야 해요. 

젠더 폭력 문제에서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말하거나 그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성과 관련된 문제는 잘잘못을 가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쉽사리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사자에 대한 편견과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잘못된 통념이 있어요. 그래서 쉽게 피해자 탓을 하죠. 특히 우리 부모 세대는 그렇게 배우고 자랐기 때문에 더 그런 경향이 있어요. 인정받지 못하고 묵살당하는 경험 속에서 살아와서, 편견과 상식이 모두 뒤섞여 있어요. 그런 잘못된 통념, 뒤섞인 사고를 구분할 수 있는 회칼 같은 날카로운 인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먼저는 가해자의 죄와 처벌에 최대한 집중을 해야 하고, 피해자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일들의 구조적 원인을 찾고, 문화나 법 제도를 통해서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지금 우리 수준은 제대로 된 처벌조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무게를 더 싣고 있지만, 이게 양날의 검처럼 피해자의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도 미쳐요. 그 피해 사실이 주홍글씨가 되어 손가락질당하거나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는다든가 하잖아요.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통념을 어떻게 걷어내야 할지 고민해야죠. 너무 어려운 과제이지만요. 범죄 자체에는 무게를 싣되, 피해자의 삶에는 짐을 덜어주는 작업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금 우리 수준은 제대로 된 처벌조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무게를 더 싣고 있지만, 이게 양날의 검처럼 피해자의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도 미쳐요. 그 피해 사실이 주홍글씨가 되어 손가락질당하거나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는다든가 하잖아요.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통념을 어떻게 걷어내야 할지 고민해야죠. 너무 어려운 과제이지만요. 범죄 자체에는 무게를 싣되, 피해자의 삶에는 짐을 덜어주는 작업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n번방 같은 디지털 성착취를 비롯한 온오프라인 성범죄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여기에 성교육도 들어간다고 보시는지요? 
급한 불이 너무 많아요. 무엇보다 성착취가 일어나는 플랫폼을 폐쇄해야겠죠. 가담했던 가해자들의 엄중한 처벌은 물론, 사회 제도와 법도 개선되어야 하고요. 그리고 공교육에서 성평등과 인성적인 가치관, 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왜곡된 성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요. 일단 우리 교육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없어요. 생물 수업에 가깝고요. 솔직하고 실제적인 그리고 입체적인 성교육이 정말로 필요한데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교육의 양극화가 더 잘 보여요. 소위 깨어있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은 저 같은 강사를 따로 불러요. 아이들을 소그룹으로 묶어서요. 거기에도 격차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공교육이 너무 중요한데, 정부기관에서 나간 성교육 강사들은 섹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해요. 보수적인 기독교계나 많은 교회에서도 불편해하고요. 

섹스와 성관계, 차이가 있나요?(웃음) 
더 선정적으로 들린다는 거죠. 직접적인 단어를 쓰지 못하니 사랑을 나눈다, 관계를 가진다 이런 식으로 전달하는 것 같더라고요. 섹스를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드러나는 거죠. 구체적이고 솔직한, 어른들은 민망해하는 단어들을 담담하게 말하면 어린아이들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요.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정확하고 솔직하게 알려주어야, 아이들이 왜곡된 성을 마주했을 때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어요.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지도 않을 뿐더러 스스로 자립하고 즐거운 성생활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왜곡된 성을 마주했을 때 이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교육받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모두에게 있다고 하지만, 결정권을 준다면 결정 능력 역시 키워주어야 해요. 생각하고 판단해서 무엇이 자기를 지킬 수 있고 무엇이 안전한지 생각할 수 있도록요.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섬세한 법 마련도 필요하고, 솔직한 성교육과 일상에서 성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이 음지에서만 얘기 되어서 왜곡된 가치관을 정립하고 여성을 도구화하지 않도록 말이죠.

개인적 차원으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범죄가 범죄라는 것을 알고, 가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설령 포르노를 소비할지라도 적어도 불법촬영물은 보지 않는 식으로요. 대부분의 포르노는 모두 여성을 대상화하고 착취하지만, n번방 같은 플랫폼에는 가입하지 않으며 불법촬영물은 소비하지 않겠다는 자기 결심이 필요해요. 포르노 산업이 너무 거대하고 유혹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보지 말라고 하진 않아요. 하지만 포르노를 보더라도 비판적으로 봐야겠죠. ‘저건 현실과 다른 강간 시나리오고 저기서 여성은 굉장히 도구화되어있다, 그러니 실제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그건 범죄가 된다’는 관점이 필요하죠. 

누군가 불법촬영물을 공유할 때 같은 남성이 이를 비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 곁에서 단톡방을 통해 누군가 그것을 만들거나 소비하고 또 이야기할 때, 이를 불편해하는 표현을 하는 게 필요하죠. 최소한 거기에 동조하지 않고 탈퇴하거나 불편해하는 기색을 비치는 거죠. 용기가 있다면 이건 잘못이라고 말해야죠. 자신이 직접 얘기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도 중요하고요. 그런 연대가 모이면 사회의 가치관이 되고 법과 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저희가 같이 경험하고 있잖아요. 또 왜곡된 남성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과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겠죠. 

교회에서도 성교육을 하시잖아요. 교회 바깥에서 하시는 경우와 좀 다른가요? 
다르죠. 많은 교회는, 교회가 말하고 싶은 걸 강사가 앵무새처럼 말하기 바라죠. ‘혼전순결 지켜라, 결혼 관계 안에서만 성관계는 가능하다. 그 나머지는 모두 죄다.’ 다양한 맥락과 서사를 무시한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를 부르시는 분들은 교회에서 자리를 걸고 부르시죠. 

교회에서 하는 강의에 자유가 더 주어진다면 어떻게 진행하고 싶으세요?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면 혼전순결에 대해 말할 수 있겠죠. ‘순결이란 무엇이고 결혼이란 무엇인가? 순결이라는 것은 꼭 섹스로 결정되는 것인가? 교회가 생각하는 혼전순결에 모두가 동의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순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가장 단순하게 본인이 생각하는 섹스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요. 하지만 교회는 일방적으로 ‘혼전순결 지켜라, 안 지키면 죄다’ 하죠. 어겼는지 지켰는지도 혼란스러워요. 사정만 안 하면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키스만 해도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건 성도들이라고 생각해요. 

   
▲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심에스더·최은경 지음
/ 오마이북 펴냄

교회에서 말하는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정죄당하고 상처받아서 공동체와 멀어진 이들도 있어요. 
다양한 가치관을 하나로 꼭 모아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해요. 지도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규칙을 제시했을 때 그것은 다 옳고 지켜져야 하나요? 목사님 개인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지 의심해볼 필요는 없을까요? 가치관이 명확하지 않은데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는 건 아닌지도요. 다양성을 고민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혼전순결 지키라고 하는 건 너무 손쉽게 성도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것 같아요. 교회 안에서 성교육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념이나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작업부터 하려고 해요.

‘성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성 이야기’에 야한 것만 있을 거라는 통념과 씨름하기 위해서예요. 물론 야하다는 것은 성이 가진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부분만 극대화하고 일탈이나 금기라는 콘셉트를 가져오면서, 우리 사회가 ‘야하다’는 단어를 오염시킨 것 같아요. 또 교육이라고 하면 어떤 권위자가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저는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다양한 관점이 가능한 ‘이야기’로서 성을 대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런 소개를 고수하고 있죠.

이번 사건 이후 무력감을 토로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는데요. 희망을 잃지 않고 연대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공감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도움을 요청할 때 누군가 함께 싸워주기를 바랄 것 같거든요. 또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해요. 사안을 가볍게 만들어버리자는 게 아니라, 어떤 건 가볍게 봤을 때 감정에 짓눌리지 않고 일어서서 더 잘 볼 수 있어요. 무기력이 드러내는 것도 있죠. 얼마나 세상이 변하기가 어려우면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이 무기력을 느낄까 싶잖아요. 또 무기력이란 감정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를 정비하고 에너지를 모으는 순간이라고 느껴지거든요. 무기력해도 한마디씩 툭 던져주면서 ‘너희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죠. 각자의 에너지와 상황에 따라서 힘을 보충해가면서 이런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한꺼번에 할 순 없지만, 다행히 사람은 많으니까요.(웃음) 

평소 자녀들과도 ‘성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나요? 
많이 해요. 드라마를 보다가 스킨십 장면이 나오면 자연스레 얘기하는 거죠. “둘이 정말 사랑하나봐” 하면서 “나중에 커서 너희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하게 돼. 그런데 너희가 싫은데 저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하면 절대 안 돼”라고 하는 식이죠. 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물어봐요. “네가 생각할 때 넌 여자인 것 같아?” 물으면 “난 이래서 여자인 것 같아” 해요. “그렇구나. 엄마도 그래. 그런데 자기 몸은 여자여도 마음이 안 그런 사람도 있어” 하고 덧붙이기도 하죠. 밑바닥에 스며들어 있는 것들도 뉘앙스를 알려줘요. 동화책을 읽어줄 때라든지, 아니면 남편과의 대화에서 제 기분이 상했던 일을 통해서라든지. 아이들이 다 알아들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요.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간섭의 느낌은 주지 않되 관심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죠. 뭘 보는지 물어보고, 어떤 것은 너흰 아직 미성년자여서 스스로를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아직은 엄마가 너흴 보호해야 해, 하면서요.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만약 실수든 호기심이든 몸 사진을 어디에 올렸는데 그걸 보고 누가 협박하면 얘기하라고 했어요. 엄마는 화내거나 혼내지 않을 거라고. 나쁜 건 나쁜 짓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왜곡된 성 인식이 문제죠. 성과 관련된 문제니까 피해자들도 얘기를 못한 거잖아요.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까지 얘기했어요. 여성의 신체 사진이 오픈되는 걸로 인생 망가지는 것처럼 협박하고 능욕하는 사람들이 문제고, 그런 걸 두려워하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요. 능욕하고 희롱하는 사람들을 처벌함과 동시에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죠. 섹스 장면이 오픈되었다고 해서 네 인생이 망가지지 않아, 더 중요한 건 네 인생이고 네 생각이야. 네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야, 라고 말했죠. 

만약 자녀들이 딸이 아니었다면 성 이야기의 방향이 조금은 달랐을까요? 
안타깝게도 현재의 사회 구조 안에서는 내면화되는 가치가 다르니까, 다른 얘기를 하는 부분이 있겠죠. 하지만 이야기의 주된 내용과 방향이 달라지진 않았을 거예요. 다른 무엇보다 공감의 중요성, 그리고 불평등한 성이 만연한 이 사회 구조를 틈만 나면 알려주었을 테니까요. 조금 다른 얘긴데, 제가 이창동 감독의 〈시〉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봤어요. 밀양에서 여중생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죠. 주인공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미자’인데, 자기 손자가 가해자 중 한 명이에요. 가해자들은 서로 증언도 안 하고 그 아버지들은 어떻게 합의를 할 것인지 논의하는 장면이 나와요. 미자는 영화 속에서 시 쓰는 것을 배우는데, 정말 진지하게 꽃 속에서도 바람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었겠군요. 
주인공은 가해자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말을 하지 않아요. 그냥 그 여자아이 사진을 가지고 와서 손자 책상 위에 올려놓아요. 또 계속 아름다움을 찾고 고민하다가 시를 완성해요. 그리고 형사에게 손자를 신고하고 사라지죠. 그걸 보면서 이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 추악한 것을 모른 척하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그걸 보면서 결심했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잘못한 일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구나. 오히려 이 둘이 같이 갈 때 온전히 아름다고 사랑하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지면에 담지 못한 인터뷰의 행간을 유튜브 영상과 팟캐스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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