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유명한 책 제목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있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자가격리 일주일. 여덟 살, 네 살 아이와 함께라서 너무 힘겨웠습니다. 매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고집을 부리는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내며 윽박질렀습니다. 고요한 밤이 되면, 왜 교양 있게 타이르지 못했을까 자책하였지요.

집 안에 갇혀 분노와 자책을 수십 번 반복하다가 일주일 만에 출근을 하니, 정말 기뻤습니다.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 사무실에 있으니 다시 교양인이 된 것 같아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양 있게 책상에 앉아 ‘어린이’가 주제인 커버스토리 원고들을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용납되지 않고 있는지를 시작으로(임명연), “어린이주일인데 어른들이 우리를 위해 발표회를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묻는 아이(김하나)에겐 딱히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등록번호가 없어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아이(김영준), 촉법소년의 유년 시절로 들어가 웅크려 울고 있는 순백한 아이(주원규)를 만났습니다. 어느 틈엔가 교양을 유지한 채 앉아있는 제 자리가 불편해졌습니다.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던 저의 민낯과 마주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아이들한테는 항상 보드랍게 자세히 설명해주라고 했습니다. ‘보드랍게’라고 했어요. 아무리 어려도 신기하게 다 알아들어요. 이것이 어린이 해방으로 가는 길입니다. 항상 대등한 관계에서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주기를 바랍니다.”(사람과 상황)

독자님들께 건네는 5월의 인사가 반성문이 될지는 몰랐습니다. 그럭저럭 아이들을 대하는 감수성이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말이지요. “새 사람이기에 어른보다 높으며, 항상 독립된 시민으로 대접하라”는 방정환 선생님의 관점에서 보면, 저는 어린이 해방을 가로막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이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곳인지 돌아봅니다. 당장에 아이들과 함께 식당이나 카페를 이용할 때 환대받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눈치를 많이 보게 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드물게, 아이들이 환대를 받고 특별한 대우를 누린 곳은 비행기와 교회였습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는 이달, 어린이 해방 정신이 세계 곳곳 난민 신세가 된 어린이들에게도 깜짝 선물로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는 소소한 일로 아이와 다투고 겨루며 허우적거리겠지만, ‘작심삼일도 10번 하면 한 달, 100번 하면 1년’이라는 말에 기대어 포탄이 빗발치는 곳의 어린이들에게도 교회의 따스한 손길이 닿기를 기도하려고 합니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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