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우연히 성사된 작은 독자모임에서 복상이 ‘기후위기와 에너지’를 다룬다고 하자, 편집위원을 역임한 바 있는 오랜 독자가 한숨을 쉬며 한마디 거듭니다.

“제발 강박이나 죄책감을 심어주는 이야기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도 이미 기후위기나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거든요. 즐겁게 동참하도록 끌어주기만 해도 좋겠어요.”

지구는 이제 끝났다, 이대로 가면 종말이다, 식단부터 바꿔라, 일부 강압적인 운동을 접하면서 오히려 반감이 생겼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개인의 양심과 선택에 호소하는 접근도, 제도와 체제의 개혁을 외치는 접근도 극단에 이르면 한 개인이나 사회에 상처를 남긴다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상황을 진단하며 어떻게 즐거운 참여를 독려할 것인가. 아마 많은 운동가들이 오랜 시간 붙잡고 있는 고민이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이번 커버스토리가 명확한 해답이 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겁니다. 다만, 그동안 기후위기와 관련해 강박과 죄책감을 느꼈던 독자들이 균형을 잡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인터뷰이와 필자들의 이야기는 강요나 당위가 아닌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비관적인 상황에서 즐거운 동참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호 청계 노포 이야기(공간&공감)와 해방신학을 소개한 글(한 몸 다른 모습)로부터 힌트를 얻었는데요. 특히 큰 울림이 있었던 해방신학자 성정모의 책 《시장, 종교, 욕망》의 한 문단을 이곳에 옮겨봅니다.

“‘드림의 은사’를 지닌 채 사랑으로써 자유롭게 투쟁하는 자는 승리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로 투쟁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투쟁을 위한 중요한 동기가 승리의 약속이 아니라 연대감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것을 희생, 의무라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있어 투쟁과 인생의 가혹함을 보상받을 방법은 오직 승리와 그에 대한 대가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가 승리를 획득하지 못하면, 고통에 대해 아무 대가가 없는 희생으로 인해 절망만이 남는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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