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카카오의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수발신 장애를 경험하면서 카톡을 통해 주고받았던 대화, 사진, 영상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한한 사이버공간’이 아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의 한 건물에 그 많은 자료들이 보관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지요. 사건과 추억들, 그 무한한 감정의 맥락들이 물건처럼 보관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IT 전문가 나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나오는 표현처럼 ‘기억을 아웃소싱’하는 시대를 살아왔구나 실감합니다. 그는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자아의 깊이는 물론 문화의 깊이 또한 시들어간다”고 경고한 바 있지요.

우리 뇌의 저장소처럼 작동하던 카톡 저장 공간의 상실과 그에 따른 소통의 불편에 기대어,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뇌 기능과 감각을 살려보는 것은 망각에 맞서는 의미 있는 도전이겠습니다.

11월호 준비 기간의 출근길에는 러끌레르끄의 소책자 《게으름의 찬양》을 읽었습니다. 약 6년 전 커버스토리(2015년 3월호) 기획 ‘멈춤이 필요한 시간’의 단초를 제공한 책이었지요. 당시 5면에 걸쳐 이 책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그때와는 다른 표현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하느님 음성을 듣는 인간들이 예전에 비해 퍽 드물어졌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야말로 바벨의 소음이 오관을 모두 뚫고 쳐들어오는 판에 … 온갖 소리와 빛깔과 모습과 느낌과 생각이 뒤범벅이 되어 사람들을 뒤덮고…”라는 대목에서 소셜미디어의 범람, 아니 삼평동의 한 건물이 떠올랐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때는 1937년이었습니다.)

니콜라스 카의 말을 빌리자면 ‘데이터는 얻었지만, 의미는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이런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런 성찰은 기다림의 시간에 찾아옵니다. 러끌레르끄는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시간 낭비’를 하며 자리를 지켰기에 7일 만에야 거룩한 음성을 들었다고 상기합니다.

거듭되는 대형 참사 앞에서 우리의 기억 능력에 책임을 묻게 됩니다. 니콜라스 카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인터넷을 개인적인 기억의 대안물로 사용하면서 내부적인 강화 과정을 건너뛴다면” 우리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기에 처할 거라고 경고해왔습니다. 생물학적인 기억 장치에 정보를 저장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우리는 더 얕고 옅게 사고하게 될 거라고 말이지요.

우리의 몸과 영혼에, 부디 이 아픔을 아로새길 공간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고한 생명의 죽음과 유족들의 울부짖음이, 망각을 부추기는 북새틈의 세상에서 결코 잊히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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