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호 에디터가 고른 책]

영성 없는 진보 / 김상봉 지음 / 온뜰 펴냄 / 12,000원
영성 없는 진보 / 김상봉 지음 / 온뜰 펴냄 / 12,000원

책 제목 때문에 기분 나빠하거나, 혹은 통쾌해할 이유는 없다. 저자가 밝히듯, 이 책은 일차적으로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저자 소개에 따르면, 김상봉은 독일 마인츠 대학교에서 철학, 고전문헌학, 신학을 공부하고 귀국 후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에서 가르치다가 해직됐다. 현재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굿바이 삼성》(공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네가 나라다》 등을 쓴 진보 지식인이다. 그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영성 없음을 매섭게 들여다보는 책인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이성의 실패’이다. 이성은 타인의 고통에 연결되는 데 실패하며, 결국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을 가로막는다.

“나와 이 세계가 결코 분리된 타자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존재라는 것을, 나는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다.”

저들의 고통은 나와 이어져있고, 내가 세계의 고통과 이어져있다는 믿음 없이 세계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영성이 발견되는가? 타인의 고통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역사 속에서 상처받고 죽어 가는 자들이 그 수난 속에서도 기꺼이, 기뻐하며, 미래의 역사를 위해 자기를 던질 수 있는 것은 한낱 개별자인 자신이 세계와 역사, 아니 존재 전체와 하나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처럼, 《네가 나라다》(부제: 세월호 세대를 위한 정치철학)에도 짧은 헌정의 글을 실었는데, 고인이 된 고호석 선생에게 하는 말이었다.

“폭력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사랑 공화국’을 꿈꾸던 벗이여, 다만 사랑의 나라를 꿈꾼 죄로 네가 고문당할 때, 같이 꿈만 꾸었던 나는 네 곁에 없었으니, 부끄러움이 아니었으면 내겐 고향의 추억 같은 것도 없었으리.”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4월, 두 책은 나 같은 냉담자의 가슴에도 고향이 있음을 일러준다.

이범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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